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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에게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2004년)
우리 인간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고 이를 분석해 세상을 이해한다.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다. 이 감각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존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감각기관들은 수백만 년 아니 수억 년 이상이나 자연선택을 통해서 획득된 기능이기 때문이다. 또한 감각기관은 생존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식에도 필요하다.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짝이 필요하고, 좋은 짝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 감각기관들을 활용한다. 멋진 상대방을 시각적으로 바라보고, 호감이 가는 상대와 피부로 접촉하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한 상대방의 몸에서 나오는 체취를 느낀다.
그러나 자연을 떠난 인간들에게는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의 기능이 현저히 허약해 졌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포식자를 피하고 먹이 사냥을 하기 위해 모든 감각이 골고루 잘 활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인간은 콘크리트 더미에 갇혀 지내다 보니 시각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후각은 상당히 약해졌다. 그러나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후각은 상당히 중요한 감각이다.
일단 동물들은 후각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며, 또 암컷의 배란 시기를 알 수 있다. 개미는 페르몬을 통해 길을 찾으며, 또한 생식과 전투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도 페르몬이 발산되는 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페르몬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는 있으나, 아직 그 메커니즘은 증명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간도 자연 상태에서는 페르몬을 발산해 이를 통해 짝짓기가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중에는 어느 감각기관이 뛰어난 사람들도 있다. 시각적으로 많은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고도의 청각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미각이 예민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능력이 일반 사람보다 조금 더 발달했다는 의미이지 동물들처럼 아주 발달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사람의 후각이 개와 같이 발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사람이 개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만 후각이 발달한다면 어떨까. 아니 개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책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열린책들.2000년)은 동물적인 후각을 가진 사람의 아주 기이한 이야기다.
18세기 중엽 유럽의 중심인 파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시장 상인이었던 엄마가 생선을 팔던 그 자리에서 태어난 후 바로 생선 쓰레기 더미에 던져진다. 왜냐하면 그녀는 몇 차례 사산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의 출산에도 아기가 죽을 것으로 판단하고, 생선 쓰레기 속에 아이를 버린다. 그러나 용케도 아이는 살아난다. 아이를 유기한 그의 어머니는 살인 혐의로 사형 당한다. 그의 탄생은 엄마의 죽음과 맞교환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 책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다.
그루누이는 남에게 맡겨져 자라나지만 그를 길러주는 사람에게도 또 주변의 친구들로 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루누이에게는 체취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기른 유모는 ‘악마의 자식’이라고 부르기 조차했다. 그런 그가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다 맡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수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느끼는 가장 좋은 향은 바로 어린 소녀들의 체취였다. 그 향을 얻기 위해 그는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몸에 좋은 체취를 지닌 순결한 여자들을 죽여서, 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을 얻었고, 체취가 스며있는 옷과 머리카락을 수집했다. 무려 25명의 소녀가 희생이 되었다. 25명으로부터 향수의 에센스를 얻어냈지만, 그는 체포되고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독자들은 이제 소설이 끝이 난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속되는 반전. 그가 소녀들로부터 얻은 향을 가지고 만든 향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얼마나 놀라운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반전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향수>에는 18세기 프랑스의 풍경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인 쥐스킨트가 프랑스 사람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저자 약력에서 보니 독일 사람이었다. 독일 사람이 이렇게 다른 나라를 세밀하게 표현했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작가가 일본 에도 시대를 자세히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약력을 보니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나온다. 아마 역사학을 전공했기에 이런 묘현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쥐스킨트가 자신의 방 벽에 큰 프랑스 지도를 붙여 놓고 이 책을 썼다고 하니, 사실적인 표현을 위한 그의 노력을 읽어낼 수가 있다. 또한 향수의 제조에 필요한 많은 지식도 독자들은 만날 수 있는데, 쥐스킨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매력들이 버무려져 선세계 1,500만 명 이상의 독자에게 읽혀진 것이다.
잠을 잘 때 잠옷대신샤넬 No.5를 뿌리고 잔다는 마를린 몬로는 진정 후각의 중요성을 아는 여자였다. 책을 덮었지만,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를 느끼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