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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의 진실 - 유전공학이 풀어낸 생명의 암호
정연보 지음 / 김영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타일러 스미스는 동서로는 태평양 연안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인도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의 아시아주민들을 대상으로 Y염색체 분포를 조사했다. 대상자는 16개 집단의 2,123명이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한 가지 Y염색체와 이와 매우 유사한 Y염색체들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매우 높은 빈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일러 스미스는 그 Y염색체를 '스타 DNA‘로 명명했다. 분자시계(molecular clock)이론으로 스타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대략 1,000년 전에 탄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고, 그 대상자를 탐색해본 결과, 칭기스칸과 그의 혈족에 의해서 오늘날 아시아 각 지역에 무려 1,600만 명의 남자를 후손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칭기스칸은 생물학적으로도 대단한 영웅이고 정복자였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DNA의 진실>(김영사.2008년)에 나오는 하나의 사례로, DNA를 통해서 현재의 분자생물학 기술은 이렇듯 오래된 사람들과 현재의 우리를 연결해주고 있다. 이뿐 아니라 DNA를 가지고 범인을 검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아주 널리 알려져 있다.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에 의해 발견된 DNA는 점차 관련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범죄 수사에서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대형 사고가 발생하여 사망자의 시신이 많이 손상되어 있을 때에도 그 신원 파악에 활용이 된다. 또 친자확인 및 고대 인류의 이동경로에 대한 단서를 주기도 한다.
범죄 수사에 활용된 예 가운데 아마 가장 유명한 사건은 미식 축구선수 였던 O.J. 심슨 재판이었을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심슨은 이혼한 아내와 아내의 애인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사 측에서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심슨의 DNA를 찾아내서 그를 살인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드림팀으로 구성된 변호인 측에서는 ‘증거물이 심슨의 것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바로 심슨이 살인자라는 뜻이 아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를 테면 3자에 의해서 심슨의 혈액이 증거물에 묻었을 수도 있으며, 채취된 샘플의 라벨이 바뀌거나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기에 심슨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종 판결은 ‘무죄’였다. 이는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미국식의 법적 배려에 기인하고 있기도 하다. 즉,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어서 안 된다’는 인권을 존중하는 법적 정신을 충실을 이행한 것이다. 이 경우에서는 DNA를 이용한 범인 찾기가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형사재판에서 이처럼 심슨은 무죄로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어진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막대한 금액을 배상하도록 판결하였다. 형사재판에서는 ‘심슨의 목숨’이 달려있었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심슨의 재산’이 달려 있었기에, 민사재판에서는 DNA 증거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출간되는 과학책의 대부분은 번역서이다. 이는 국내 저자가 그만큼 없다는 뜻인데, 이 책은 한국인이 저술한 것이다. 저자인 정연보는 생물학박사로 한국인의 유전적 다형성을 조사 연구했으며, 기업을 설립하여 지문에서 DNA를 얻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책 속에 수록된 사례들은 매우 재미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칭호를 받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이 줄루 족의 후예이기에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 것을 두고 저자는 ’미토콘트리아 DNA'검사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가족이 살해된 후 매장된 곳에서 발견된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이를 확인하는 부분과 미국 대통령이었던 제퍼슨이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서 후손이 있다는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DNA를 파악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기술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이 부분을 건너뛰고 읽어도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