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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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롤리타>는 그 내용 때문에 쉽게 출판할 수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가 주류였던 1950년대에 소아성애를 다룬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섯 개 출판사에서 거절을 받은 <롤리타>는 프랑스에서 처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파리 올랭피아 출판사의 모리스 제로디아스는 <로리타>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었다.

나보코프는 <롤리타>가 출간되고, 초판본에 그레이엄 그린에게 헌사를 써서 증정한다. 이런 책을 수택본(手澤本, association books) 이라고 하는데, 즉 저자가 또 다른 명사에게 보내는 헌사를 써놓은 책을 말하는 것이다. 나보코프는 헌사와 함께 나비 그림을 그려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보코프는 인시류(나비와 나방류) 아마추어 연구가였다. 나비그림이 그려 있었으니 귀하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멋이 있었을까.

이 수택본을 이 책의 저자인 릭 게코스키는 그레이엄 그린으로부터 4천 파운드에 구입한다. 그리고는 9천 파운드에 판매를 한다. 배가 넘는 장사인 것이다. 이렇게 릭 게코스키는 이런 휘귀본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어쨌든 아도 롤리타로 약간의 재미를 본 셈이지만, 나보코프나 지로디아스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나보코프는 이 책의 인세 덕에 강사 자리를 그만두고 집필과 나비 수집에만 몰두 할 수 있었다. 지로디아스는 어땠을까. 돈벼락을 맞은 그는 파리식 나이트클럽 두 개, 레스토랑 하나, 술집 세 개, 극장 하나를 열었다. 그리고 5년 만에 파산했다.”

 

이렇게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 책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2007년)는 시작이 된다.

영문학박사학위를 가지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릭 게코스키가 대학을 떠나 위대한 작가들의 희귀본들을 거래하면서 이에 얽혀 있는 숨은 이야기와 그 작가들의 많은 사생활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톨킨의 가운과 위대한 저자와 희귀본의 이야기’다.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의 가운 이라니........그렇다 희귀본 거래업자들은 유명한 저자의 원고나 편지, 심지어는 그들이 입던 물건까지도 거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윌리엄 골딩에게 노벨상을 받게 한 작품인 <파리대왕>은 스물 두 군데 출판사에서 퇴자를 맞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들에게 가장 잘 팔릴 책을 잘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출판업자들도 이러한 세계적인 작품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 우스웠다.

 

이처럼 이 책에는 20명의 20세기 최고의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사생활 또 그 작품들의 출판과 현재 거래상황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상당히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런 작품들이 거래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거래가 되고 있지만 내가 모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마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거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사람의 아들> 초판본에 저자인 이문열이 헌사를 써서 최인호에게 증정했다고 해보자. 정말 희귀하고 가치있는 책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나도 저자 사인회에 찾아다니면서 사인을 받던지, 아니면 저자가 내게 사인을 한 책을 보낼 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렵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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