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임마꿀레
임마꿀레 일리바기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섬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 중앙부에 위치한 르완다공화국은 1885년 독일의 식민지였다가 1919년 벨기에의 위임통치와 신탁통치를 거쳐 1961년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다음해 독립한 나라로, 면적은 2만 6338㎢이고, 인구는 838만 명(2003년)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그만 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영화로 책으로 르완다라는 나라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이 르완다에서 1994년 100만 명 이상의 ‘투치족’이 살해되었다. 그들은 적과의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웃에 사는 ‘후투족’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왜 후투족은 투치족을 학살했을까? 투치족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는 식민지 지배를 편하게 하려는 벨기에의 식민지 정책 때문이었다. 소수의 투치족(15%)만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정책을 실시함으로 벨기에는 식미지 지배 체제의 안정을 기할 수 있었지만, 이에 소외된 후투족들은 그 가슴속에 이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몇 번에 걸쳐 두 인종 간 큰 대립을 낳게 된 것이다.


한 마을에서 사이좋은 이웃으로, 또한 학교에서 동기, 선후배로 살아온 그들에게 이러한 불만이 과연 집단 학살을 일으킬 만한 이유가 될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기본적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라는 집단과 ‘다른 집단’을 편을 갈라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다. 그러나 본성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남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도덕률의 지배를 받는다. 그렇기에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범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동물이나 벌레를 죽이는 것이라면 이런 도덕적, 윤리적 죄책감도 없고, 또한 법원에 의한 심판을 받을 일도 아니다. 이런 상태여야만 인간은 부담 없이 주변에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벌레나 동물도 생각하면 쉽게 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르완다에서 벌어진 것이다.


후투족은 투치족 사람들을 바퀴벌레라고 칭하면 살해하도록 후투족 사람들을 부추긴다. 후투족은 일말을 거리낌 없이 정말 바퀴벌레를 소탕하듯이 100만 명 이상의 투치족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방송으로 또 주변사람들의 말에 의해 투치족을 죽이는 이 ‘집단적 광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이럴 수는 없다’라며 격분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살해자 집단인 후투족 내에서도 이러한 일에 반대하며 투치족을 보호하고자 그들을 숨겨주고 살인을 말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조차 집단의 광기 속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집단의 광기 앞에서 우리 인간의 이성은 얼마나 무너지게 쉬운 것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이 ‘집단의 광기’에 휘말려 쉽게 살인자가 될 수도 있으며,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본성 안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천사, 악마와 함께 살고 있는 현장을 독자들은 목도할 수 있다.


이 집단적인 살인의 현장에서 목사와 천사와 같은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이때의 상황을 임마꿀레는 우리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독자들은 임마꿀레가 처한 어려움을 보며 어떻게 인간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하고 분노하며, 또 임마꿀레의 삶에 대한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드라마보다도 오히려 더 드라마 같은 이 책의 전개는 한순간도 손에서 책을 떨어지지 못하게 한다.


이 책의 원 제목이 <Left to tell>이다. 즉 ‘말하기 위해 살아남다’이다. 임마꿀레는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자신이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이 책의 제목에 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인종간 갈등과 종교간 갈등은 현재에도 그대로 분쟁의 불씨로 남아있다. 언제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르완다 내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또 르완다에서의 내전은 항상 재연될 위험성이 있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저자인 임마꿀레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부질없는 보복을 막는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 용서의 신성함을 깨닫게 하는 길뿐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용서하는 마음을 얻도록 돕는 일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인생의 큰 숙제였다.”


그렇다‘용서’가 살아있다면 우리 인간사회는 정의가 승리할 것이다. 용서! 이는 아주 어렵고도 쉬운 결정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분노를 없애버리고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만드는 이 용서가 우리 인간에게는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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