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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 시 소련군에 붙잡혀 소련군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에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데 투입되었다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6월5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 해안에서” 한 장의 사진에 붙어있는 설명서에 이렇게 써있었다. 그리고 한 소설가는 이 사진을 설명한 글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오! 하느님>(문학동네.2007년>이다.
‘신길만’은 고향에서 일본군에 징집되고, 관동군에 배치되어 만주 몽골 국경부근의 전쟁터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된다. 일본군들에게는 보통 전쟁에서 패전 시 포로가 되지 말 것을 지시한다.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자결을 선택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일본인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보려는 일념으로 살아남아 포로가 된다. 포로 생활을 하던 조선인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 소련군은 그들을 소련군으로 편입시킨다. 그래야만 그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설득하면서 말이다. 그들에게는 어느 나라 군복을 입는다는 것은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명을 보전하여 고향의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소련군의 군복을 입은 그들은 독일과의 전쟁터에 투입된다. 독일의 모스크바 진입 시도 서 그 조선인들은 또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참,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다시 독일군에 편입된 그들은 유럽대륙의 맨 왼쪽인 대서양 부근의 해안에 배치된다. 그 해안의 이름은 바로 ‘노르망디’였다. 2차 세계대전의 역사에서 승패를 가른 분기점이 된 그 전쟁터였다. 그곳에서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된다. 정말 ‘오! 하느님’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가? 보통 전쟁은 나의 조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야만 그들은 적이라는 이름의 상대방을 죽이는데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참전한 것에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적인 일본을 위해 전쟁터에 나간다. 자신이 원해서 군인이 되어 참전했다면 전쟁을 통해서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볼 때 남자가 신분의 상승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전쟁과 혼란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정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징집이 되어,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의미 없는 전쟁터에 가게된 것이다. 그들의 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입은 군복과 다른 군복의 사람들과 전쟁을 하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전투의 승리보다도 자신의 생명의 안전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생김새가 다른 몇 벌의 군복을 입었던 것이었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의미는 ‘제국주의’도 ‘이데올로기’도 없는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놓은 총질에 불과했다.
이 책은 내게 과연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차이점은 자유의지인데, 그들의 생존과 미래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타자들에 의해 좌우된다. 역사의 소용돌이치는 바퀴살에 튀어나가는 작은 돌부리처럼 그들의 삶은 타자의 의사에 철저히 종속된 채 자신의 가치는 전혀 없는 미미한 존재였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 대부분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정의도 도덕도 존엄도 그 어떤 가치 있는 단어도 그들의 삶에는 투영되어있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생존에 급급한 한 마리의 야생동물의 모습과 지극히도 비슷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위대함이 그들에게 있었던가? 그저 장마 후 쓸려 내려간 토사와 같이 그들은 전쟁이라는 큰 빗속에 산산이 해체돼 자신이 있었던 곳에서 쫓겨나간 하나의 모래와 자갈에 불과했다. 그들이 있었던 자리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존재가치는 거의 영에 가깝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기에 독자들의 그들의 삶에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으며, 그 측은함에 깊은 동병상련을 느낀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작가의 상상에 의해 쓰인 이 책은 과연 역사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라는 철학적인 의문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으며, 슬픈 코리아의 20세기 초반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정말 그곳에서 죽었을까?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독일군복을 입는 있는 슬픈 코리안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