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의 다윈 - 지적 설계 논쟁, 제2판
필립 E. 존슨 지음, 이승엽.이수현 옮김 / 까치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종교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답변의 기준이고, 진리의 기준이던 시기가 존재했었다. 이에 대한 도전은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처벌을 받았으며 그 처벌의 수준은 죽음에 까지 이를 정도로 종교는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전능한 위치에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 중의 하나인 호기심은 종교에서 말하는 것이 최종적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도전을 시작했다. 너무도 강해서 깨질 것 같지 않던 기독교적 세계관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에 의해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서서히 새로운 세계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래도 ‘창세기’는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창세기’를 뿌리째 흔드는 사건이 생긴다. 1859년 찰스 다윈에 의해 시작된 ‘진화론’은 ‘신에 의해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근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시대 진화론으로 인한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신이 인간을 현재의 모습대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단세포 동물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를 해왔다고 다윈은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부모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고 믿어왔던 기독교의 믿음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있는여지를 없애버렸던 것이다.

이후에 진화론은 유전학을 비롯한 분자 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그 이론의 탄탄함은 더해져 갔으며, 현재는 생물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문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치에 있는 ‘진화론’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진화론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창조론’ 혹은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화론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몇몇 주에서 공립학교 교육에서 진화론을 몰아내고 창조론을 채택하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교육이 특정 종교의 이론을 가르쳐서는 안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즉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이라는 것이 법적인 판단이었던 것이다.

이 책 <심판대의 다윈>(까치.2006년)의 저자인 필립 E. 존슨은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1987년 영국의 한 서점에서 진화론에 관련된 생물학자의 두 서적을 발견한다. 그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과 마이클 덴턴의 <진화론과 과학>이었다. 도킨스는 “진화란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유전자들 사이의 긍정적 변화들이 우연히 쌓여 벌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거꾸로 덴턴은 진화론에 반대했다. 존슨은 <눈먼 시계공>이 명석한 수학적 기교로 쓰여졌다고 판단했다. “증거는 없고, 가설로서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게 변호사들이 익숙하게 하는 일과 같았다.” 고 얘기하며 법학자로서 자신이 이 일이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존슨은 진화론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91년 이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으며,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비평한다. 그의 이론의 핵심에는 이 복잡한 우주와 생명에 대해 진화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이나 카를 포퍼의 과학에 대한 정의와 과학 방법론을 거론하며 진화론은 자연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형이상학이라고 말하고, 또 진화론은 어쩌면 종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 등 진화론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를 사용하며 진화론자측을 몰아붙인다. 물론 이러한 존슨의 견해에 스티븐 제이 굴드와 같은 저명한 진화론자들은 강력히 반발한다. 이러한 반론도 이 책의 뒷부분에 수록되어 있어, 양측의 주장을 같이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이 책은 침체에 빠져있었던 창조론자들에게는 가뭄 끝에 만난 소낙비와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으로 환영 받지 못하고 있던 창조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계속한다. 그 새로운 이름은 ‘지적 설계론’이다. 이 책은 ‘지적설계론’을 탄생시킨 책이다.

이 지적설계론은 창조론과는 달리 자연주의적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진화론이 진짜 과학인지’ 묻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이 책은 진화론의 여러 가지 문제점만을 제기했을 뿐 나름대로의 대안 이론은 전혀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낮추는 이유가 될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자신만의 공약을 발표하지는 않고, 상대방 후보의 공약에 대해 평가를 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보여진다. 그렇지만 창조론자들에게는 이 책이 구세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두 진영의 견해를 같이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는 내게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지적설계론’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여겨졌으며, 아직도 과학으로서의 모습을 전혀 갖추지 못한 불평 불만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므로 심판대의 다윈은 아직도 당당하며, 재판정에서의 다윈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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