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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1 - 진옥섭의 예인명인
진옥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으로 유학생활 중에서, 각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끼리의 축제가 벌어졌는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나라의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를 했는데 자신은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정말 창피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 나라와 같이 급속한 현대화가 진행되고 성공한 나라는 우리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양에서 200년이 걸린 산업화를 불과 한 두 세대 만에 해치춰버렸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을 얻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세상은 결코 공짜가 없다. 우리가 읽어버린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삶에 내재해있던 우리 선조의 정신세계이고 그들의 체취였으며, 또 애환과 기쁨이었다.
산업화 이전 우리나라는 농업이 근본인 사회였고 또 계급이 존재한 사회였다. 그러한 환경에서 우리네 전통적인 예술이 태어났던 것이었고, 이를 모두가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급속한 산업화는 우리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여유로움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예술 세계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태에서는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빨리빨리’에서 한 숨을 돌릴 여유를 갖자 우리는 주위에 많은 것들이 없어졌음을 이제서야 깨닳고 그것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그들을 인간문화재란 이름으로 대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가족에게 까지 자시의 과거를 감추려고 하고 있다. 그들의 춤이나 노래는 옛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주었지만 천한짓이었고, 그들은 천한사람이었다. 귀천이 없어진 세상이지만 아직 사람들의 마음속엔 귀천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이 책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자신의 목소리와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 명인들의 공연을 알리는 각 보도자료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은 무당, 광대, 기생, 한량이었다. 우리가 읽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만큼이나 저자인 진옥섭의 글쓰기 솜씨는 훌륭했다. 현란한 어휘 사용능력이나 언어의 유희는 독자들이 부러워할만큼 멋지다.
노름마치란 이 책 제목이 낯설다. 처음들어보는 말이었다. 이 책의 책날개에 그뜻이 이렇게 써있다. “노름마치란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곧 그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했다. 이렇게 놀음을 미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한다”. 그랬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해당분야의 고수였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갖고 있는 명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우리곁을 떠나가고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수명으로 100년 이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을고을에 춤이 흔해 전체가 예술의 전당이었을 터이다”(161쪽). 하지만 지금은 서울에 ‘예술의 전당’을 지어놓고 시늉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춤은 이제 박물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흔한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렸고, 아니 외면했는지도 모른며, 볼 기회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춤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숨쉬는 이치에 따라 조화로운 몸놀림으로 허공과 세월에 새기는 문자가 춤이다”(199쪽) 아!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전통 타악기의 소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닮아 있다. 이를 듣는 우리들은 편암함과 아울러 심장의 강렬한 박동 처럼 우리의 신명을 불러 일으킨다. 이럴때에 우리의 선조들은 어깨춤을 추며 자신의 즐거움을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젊은 사람들은 이런 어깨춤의 추임새를 할 수가 없다. 보고 듣고 배운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전자 음악을 들으며 도리도리춤을 추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것을 알려주는 이러한 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주변에서 전통예술 공연을 한다면 꼭 가봐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