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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아버스 -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퍼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다이앤 아버스>(세미콜론.2007년)을 읽기 전 사진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다이앤 아버스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물론 내가 20세기의 모든 유명한 사진가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 표지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우수에 찬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나에게 이 책을 꼭 읽게 만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고, 이 책을 읽는 것은 20세기 최고의 사진가와의 만남으로 이끌었다.
뉴욕에서 부유한 유대계 가정의 둘째로 태어난 다이앤 네메로브는 어려서부터 주변으로부터 총명하고 또 예술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며 자란다. 그녀는 남편 앨런 아버스와 14살에 만난다. 그녀의 부모도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것처럼, 그녀도 불과 18살에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 부모는 그녀가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그녀의 선택에 있어서 돈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돈에 대한 그녀의 관념은 나중에 유명한 사진가가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돈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예술가가 된 이유를 보면, 예술이란 그것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고, 예술은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거기서 뭔가를 배우게 하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중요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다이앤이라는 그녀의 이름은 영화 <제7의 천국>의 원작인 브로드웨이 공연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다이앤의 어머니인 거트루드가 다이앤을 임신했을 때 이 공연을 봤는데, ‘너무나 상처받기 쉽고 동시에 강인한 처녀 다이앤’의 캐릭터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러한 이름 덕분에 그녀의 성격도 이와 비슷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사진가로서의 출발은 패션 사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금지된 세계’, 특별한 사람들을 모델로 그들의 음습한 세계를 대상으로 한데에 있다. 쌍둥이, 기형인, 복장 도착자, 거인, 장애인, 나체주의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수자들의 모습을 주로 찍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찬사와 함께 비판에도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모든 독창적인 예술은 처음에는 비위에 거슬리다가 나중에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 고 작가 거투루드 스타인이 피카소에게 훈계했던 내용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앤은 천재적인 사진가로 된 것은 그녀에게 많은 멘토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앨런을 비롯해 알렉스 엘리엇, 리젯 모델, 마빈 이스라엘 등, 알렉스 엘리엇이 괴테의 말을 인용해 그녀에게 이야기해준 ‘제대로 보면 모든 형태가 아름답다’는 말은 그녀의 사진에 들어있는 기괴한 모델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것 같다. “전에 본 것이 보이면 셔터를 누르지 마라”라는 아트 케인의 격언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녀는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다(Diane Arbus is the wizard of ‘odds’”라고 불렸다. 다이앤 아버스의 유산 상속자인 큰 딸 둔 아버스는 “어머니가 진정으로 사진으로 찍고 싶어한 것은 ‘악한 것’이 아니라 ‘금지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그녀는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세계를 인화지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고, 이것이 그녀를 천재적인 사진가로 만든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천재적인 사진가로서 평가를 받는 것 중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진의 주인공이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에 찍힐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다이앤의 능력에 있었다. 그녀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느낌이 바로 사진가와 촬영 대상자 사이에 강렬한 협력이 존재할 만큼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작품 세계를 만든 무서운 힘의 근원이었다는 것이다.
다이앤 아버스의 첫 사랑이자 남편과 헤어지고 그녀는 더 이상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그녀는 섹스에 탐닉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있어서 섹스는 일생 동안 경험한 수백 가지의 일 중 단순한 하나였던 것이다. 그녀가 섹스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는 감정적인 것이지 도덕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고, ‘한 사람의 벽을 허무는 가장 빠르고 순수한 방법은 바로 성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섹스는 작품의 세계를 완성하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천재적인 예술가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데 그런 성향이 그들을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고 또 그들을 죽게 하는지 의문이다. 그녀의 친정인 네메로브 집안의 분위기에는 우울증이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녀의 유전자에는 예술적인 천재성과 아울러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우울증 유전자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 두 개의 유전자는 뇌의 같은 부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인 퍼트리샤 보스워스는 다이앤의 모델이었다. 모델을 거쳐 나중에 작가가 되어 영화 평론과 전기를 쓴 사람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인터뷰를 통해서 다이앤의 일생을 다시금 그려내서 그것을 우리들이 읽고 있는 것인데,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없고, 다만 그녀가 찍은 사진 속에서 그녀를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환생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이 책의 ‘띠지’에도 나와 있듯이 이지적인 여배우 니콜 키드만이 그녀의 역을 맡은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니 니콜 키드만을 통해서 우리는 다이앤의 아름다움, 예술성, 감수성과 어쩌면 잔인함(?)까지도 확인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매 페이지의 가장자리는 검게 칠해져 독특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다이앤 아버스가 그녀의 사진을 인화하는 방식으로 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보이는데 이 책의 의미를 살려주는 멋진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녀가 찍은 유명한 사진이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실망스러웠다. 아마 다이앤 아버스 사진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테지만, 독자들은 아마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버스가 찍은 유명한 사진들이 나와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다이앤 아버스라는 사람이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라는 말을 듣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