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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지음, 허형은 옮김 / 부글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이자 생물학, 물리학, 화학, 음악에 까지 넘나드는 멀티사이언티스트 칼 포퍼. 우리에게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2006년)는 포퍼의 강연과 기고한 글이 실린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부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고찰’은 칼 포퍼의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글들이고, 제2부는 포퍼의 과학철학 즉, 과학적 방법론이 주제인 글들의 모음이다. 글들이 발표된 시기와 강연 내용이 다르다 보니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있는 글들이지만, 그 안에는 뚜렷한 줄기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과학에 대한 입장이다.
제1부에 소개된 글들을 통해서 보자면 그의 가치관 중에 대표적인 것은 자유주의, 낙관주의 등이다. 그런 그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나와 있는 책이 바로 위에 소개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칼 포퍼의 별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마르크스와 포로이트 살인자(The murder of Marx and Freud)'이다. 즉 포퍼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반대는 그가 실제로 경험한 마르크스의 세계에 대한 부분도 있었고, 또 마르크스의 이론이 과학방법론에 위배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운동을 마치 뉴턴의 천체 역학이 일식을 예측하듯 과학적으로 예견하고 논거를 제시하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도덕적으로 중대한 위험 요소를 앉고 있다….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청년이 사회주의의 역사적 당위성에 설득 당하면, 그 젊은이는 자신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에 사로잡힌다.”(64~65쪽) 라고 포퍼는 한때 마르크스의 추종자였다가 마르크스의 사상과 결별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정확한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이론은 경험과학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검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는 앞서 예로 들었던 백신 접종 이론과 상반되며, 무엇보다 모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이론들과 대조된다”(189쪽)라고 말하며 프로이트의 이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보고 있다. 이런 포퍼의 태도를 보면 자신이 주장하는 과학철학에 대한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독자들은 알 수 있다.
제2부는 포퍼의 과학적 방법론이 주제로 그러니까 그가 주장하는 과학 철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학적 방법의 절차는
“첫 번째 단계, 기존의 문제
두 번째 단계, 시험적 가설들 세우기
세 번째 단계, 실험적 검증을 포함한, 비판적 논의를 통한 제거의 시도들
네 번째 단계, 가설의 비판적 논의에서 도출되는 새로운 문제들” (183쪽)
이 절차가 그의 과학 철학의 핵심 내용으로 보여진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2006년)이란 책을 읽었더니 다산이 지식을 추구한 방법과 아주 유사한 데에 놀랐다. 포퍼는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거나 단계를 뛰어 넘어가면 그것은 사이비 과학이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과학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본질적으로 동적이며,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는 시점이란 없다.”(185쪽)
이 부분을 읽고는 수전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사이언스북스.2005년)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일생 동안 뇌를 연구한 학자도 많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느끼곤 한다. 이것은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다시 일곱 개의 머리가 자라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 히드라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렇기에 포퍼는 자신의 연구 결과 조차도 의심해야 하며 또 겸손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인 추세는 과학이 중세 시대의 종교의 권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과학 만능주의에 빠져있는데 이를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포퍼의 과학철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진화론적 인식론’, ‘진화론적 지식론’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진화론을 그의 이론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이 책의 원 제목도 이지만 ‘모든 생명체는 문제 해결 중에 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히 포퍼의 뜻에 따르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글 제목인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도 어느 정도 통하지만 내가 보기엔 제가 제시한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포퍼가 가진 진화론 지식은 '유전자 결정론'돠 같이 보여지는 면도 있다.
나에겐 전체적으로 어려웠던 책이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넘나드는 포퍼의 광범위한 지식에 독자들은 아마 대단히 놀랄 것이다. 나도 그 독자 중의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