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우 여우비
이성강 원작, 하은경 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사춘기 시절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을 간직하는 것 같다. 항상 첫 번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두 번째 세 번째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첫 번째 기억만큼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백 살이나 먹은 암컷 새끼 여우가 있다. 백 살짜리 여우를 새끼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여우들이 천 살까지 산다고 하니 백 살짜리 여우는 인간의 나이로 환산하면 열 살 가량이기 때문이다. 엄마 여우는 꼬리를 아홉 개 가지고 있는 구미호(九尾狐)이고 어린 여우는 아직 꼬리가 다섯 개뿐이 없는 어린 여우이다. 그러니 이 여우는 오미호(五尾狐)인 것이다. 이 오미호의 이름이 바로 이 책 <천년여우 여우비> (예담.2007년)의 주인공인 ‘여우비’인 것이다.

아직 어린 것 같은 오미호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몸을 여러 가지 동물로 변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가장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여우비의 집이 있는 산 아래에 있는 폐교에서 방학을 맞아 캠프가 열린다. 바로 왕따들을 위한 캠프였다. 또래 집단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열린 것이다. ‘여우비’는 이 캠프에 인간 소녀의 모습으로 변신해 참가하게 된다.

그 캠프에서 ‘여우비’는 마음에 드는 남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금이’였는데, 금이를 만날 때마다 여우비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얼굴이 붉어지는 등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을 느낀다. 즉 10살이란 나이의 소녀인 여우비는 사춘기에 도달한 소녀였던 것이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여우비는 그러나 사람되기를 포기한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듯이 구미호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간을 먹어야 했던 것처럼 여우비도 한 사람의 영혼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영혼을 빼앗긴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생명이 끝이나는 것인데...여우비는 사람으로 변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금이와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를 위해서는 영혼을 가져야 하는데,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보다 오히려 더욱 휴머니즘을 가진 그녀의 모습에 인간으로서 부끄러움까지 느껴진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따스하고 떨리는 만남, 또 친구들과의 대립과 경쟁 등... 이미 이러한 시절을 지나 세상을 많이 살아와 이미 이러한 가슴 설레는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어진 세대가 이 책을 읽어본다면 첫사랑 시절로 돌아가 여우비와 금이에게 감정이입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른들이 이미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세계는 읽는 이에게 가슴 떨림과 미소를 줄 수 있다.

이 책의 소재는 ‘전설의 고향’ 같은 TV드라마에 많이 소개된 것과 같으나 그 풀어내는 것은 아주 다르다. 환상적이고 순수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푸근한 미소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곧 이 책을 내용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가야겠다. 아이들과 그들의 세계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 점점 기억을 잃어버려, 그러다가 자기 모습까지도 잊어버리게 되지. 그래서 어리고 예쁠 때 거울을 많이 봐두려고 해” 라는 대화는 내게 정말로 미소 짓게 했다. 여자들이, 특히 젊은 여자들이 시시때때로 거울을 보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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