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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아, 기억났다.
겉은 연한 빨간색이었는데 집 안은 칙칙할 정도로 붉은 벽돌이었잖아. 그게 아주 섬뜩했던
기억이……."
"게다가 좁은
것치고는 이상한 물건들이 너무 많았어."
"아마…… 작은 나무
책상과 의자, 이불이 깔리지 않은 철제침대, 그리고 커다란 선반이 있었지. 그 안에는 라벨 없는 통조림 수십 개와 너덜너덜한 의학 서적, 낚시
도구, 엄청난 숫자의 빈 유리병, 풍로, 불타버린 바늘 수십 개가 든 나무 상자, 현미경, 글자가 빼곡히 들어찬 노트가 수십
권……"
-P.132-
1.
개인적 취향으로
작품의 분위기가 좋아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을 구매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겐,
그런
몇 되지 않는 작가 중
하나가 '미쓰다 신조'인데요. 그의 작품은
일본의 전통적 괴담을
현대적 색채에 맞게 첨가하여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감각의 공포를
경험하게 합니다. 특히 텍스트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적절한 의성어의 활용은 다른 호러
문학 작가들과 '미쓰다 신조'를 구분짓는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하는데요. 대부분의 공포문학이 그 내용을 통해 공포를 전하려고 하지만. 미쓰다
신조의 경우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공포를 극대화 시킵니다. 위에 언급한 의성어 외에도
'메타픽션'등의 형식을
띄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채'에서 출간되는
'도조 겐야'시리즈의 경우 분위기는 공포스러우나 결말은 이성적인 미스터리 형식을 띄고 있는 반면, '한스미디어'에서 출간된 작가 시리즈의 경우
미스터리보다 호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재미있게 봤지만 이번에 읽은 <붉은 눈>이 제가 본
미쓰다 신조 작품
중에선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이불 속에서 몸을
떨고 있던 나는 엉겁결에 조심스레 머리를 절반 정도 내밀고 그대로 고개를 들어 창문을 올려다봤다.
창틀 너머로 손톱을
길게 기른 가느다란 손가락 다섯 개가 천천히 기어오르는 게 보였다. 손가락 배열로 오른손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창틀 아래쪽을 꽉 붙들더니
뒤이어 왼손 손가락이 나타나 기다란 손톱을 쿡 박고 창틀을 움켜쥐었다.
-P.232-
2.
8편의 단편과 작가가
직접 수집했다는 4편의 짧은 괴담. 총
12개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작품집은 단편이 갖는 아쉬움을 공포로 휘발시켜 버렸는데요. 보통 단편 수준의
짧은 분량이지만
임팩트가 강하다보니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이한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작가 본인입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다보니 분명 소설인걸 알고 있는데도 어느순간 이
이야기가 진실인양 받아들이게 됩니다. 실제로 본인이 알고 지내는 편집자의 이름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식의 구성은 현실과 허구 사이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첫번째 단편
<붉은 눈>은 그 엔딩이
무척이나 오싹했던 작품이였습니다. 새로 전학 온 신비한 느낌의
소녀와 그녀를 둘러싼
아이들의 죽음. 그리고 주인공에게까지 뻗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소녀의 묘사가 생생했기에 더욱 두려웠습니다. <괴기 사진
작가>와
<뒷골목의 상가>는 의성어가
공포를 자극했던 대표적인 작품들이었는데요. 알수없는 존재가 다가오는 과정에서의 그 소리가 무척이나 소름돋았습니다. <내려다보는
집>과
<맞거울의 지옥>은 기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소재들(언덕위의 집,
삼면경)을 이용하여 공포를
자극했고, <재나방 남자의 공포>와
<죽음이 으뜸이다;사상학 탐정>,
<한밤중의 전화>의 경우 반전이
매력적인 작품들이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중앙
통로가 오싹할 정도로 적막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물론 캡슐이 늘어선 커다란 방 쪽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화장실과 세면실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통로에서 짧은 복도로 향하는 투숙객을 한참동안 한 명도 보지 못했으니 당연하다고 할까…….
문특 이 남자와 둘이
있는 지금 상황이 매우 무서워졌다. 그러고 보면 남자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왜 오늘 밤 이 캡슐 호텔에 묵게 됐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P.248-
3.
단편집에 실린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경우는 '미치오 슈스케'의 <술래의
발소리>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작자미상>의
경우 옴니버스 형식을 취했지만 그 중 별로 흥미가 없던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이번 단편집의 경우
모두 대만족이였어요. 심지어 표지까지 딱 제스타일. 호러 분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읽어도 후회없을 책이였습니다.
바로 전에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서평을
올렸던지라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인접한 국가지만 그 공포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너무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쓰다 신조' 개인을 두고 일본 공포문학을 이야기 한다는게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참신성이 일본 공포문학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봤습니다. 으스스한
이야기가 생각나는 밤에 다시 한번 펴보게 될 것 같은 책 <붉은 눈>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