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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셨어요." 곁에 있던
리노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꽃이 유일한 대화 상대였어요. 마당에 화분이 많죠? 그것들을 손질할 때 가장 즐거워 하셨어요. 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것은 꽃들일 거예요."
-P.61-
1.
몽환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꿈과 환상이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요. 몽환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컨텐츠는 호기심에라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소설 <몽환화>역시 제목에서부터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이세상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꽃. 표지의 현란한 색감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이런 작품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것 같아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역사물을 기획하고 만들었다고 하지만 역사물의 느낌은
전혀 느낄수 없었던 작품이였는데요.
오히려 원자력 이야기와 식물학과 관련된 내용들이 과학분야의 전공지식을 바탕으로하는 미스터리에 가까웠습니다. 이렇듯 과학적인 내용을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기라고 생각드는데요. <몽환화>는 이런 그의 장기를 잘 살린 간만에 재대로된 '히가시노
게이고'표 미스터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나팔꽃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의
영향이야. 삼촌이 다양한 변화
나팔꽃을 피우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나도 흥미가 생겼지. 하지만 삼촌은 어느 날 내게 말했어. 어떤 꽃을 피워도 좋지만 노란 나팔꽃만은 쫓지
마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몽환화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몽환화?"
"몽환夢幻의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뒤를 쫒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P.220-
2.
책은 두편의 프롤로그로 임팩트있게 시작됩니다.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망가진 한 가정의 이야기와, 사랑했던 소녀가 아무런 이유없이 떠나가버린 후 남겨진 소년의
이야기. 두편의 이야기는 전혀 연관되지 않을 것 같은 본편의 이야기와 합쳐지며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됩니다. 물론 독자가
그 프롤로그의 실마리를 이해하게 되는건 작품의 종반부에 이르러서지만 말이죠.
은퇴 후 조용히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이 누군가에게
살해되는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노인의 사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노인의
손녀딸 리노. 전직 수영선수였던
그녀는 이유없는 공황으로 수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고 할아버지에게서 안정을 찾습니다. 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죠. 그녀는 사건현장에서 노란 꽃을
피운 화분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좇기 시작합니다.

"응." 리노는 충혈이 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우리,
어딘가 닮았어요. 열심히 자기가 믿은 길을 선택했는데 어느새 미아가 되어버렸네요."
"정말이네." 소타가 대답했다.
-P.296-
3.
노란색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황금,
번영, 여름, 봄, 명랑, 환희의 긍정의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날카로움, 경고등 위험을 암시하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지요. 작품 속 인물들이
찾아가는 '노란 나팔꽃'의 의미는 이 노란색의 의미와 맞닫아 있습니다. 무척이나 희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그 꽃을 쫒았을 때는 불행이
따릅니다. 이 몽환적인 빛깔의 꽃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소설속 유일하게 역사적 색채가 드러난 부분일텐데요. 이부분은 어느정도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에도시대에는 노란 나팔꽃이 흔했지만, 오늘날은 노란 나팔꽃을 찾아볼 수 없으니까 말이죠. 작가는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써나갔습니다.
사실 작품은 떡밥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일본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원자력과, 인간의
욕심, 현대인의 공황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재들을 이리저리 써먹고 있기 때문이죠. 안타까운 점은 그 떡밥들이 종반부에 완벽하게 수습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도 원자력과 관련된 작품처럼 홍보했지만 관련된 내용은 주인공
소타가 원자력을 전공하고 있다는 점 뿐이랄까요. 뭐 이런 몇가지 단점들을 제외한다면 책은 재밌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답게 가독성도 뛰어나고
말이죠. 휴가철 편하게 읽어나가기에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