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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BOOn 4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그렇다. 누군가 홀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큰 소리로
울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물기가 그녀의 마을에서 번지는 슬픔이라면 아직 괜찮다. 안심해도 좋다. 그곳에서는 비도 눈물도 반드시 우산을 받쳐
든 손과 함께 오니까. 그렇게 그 우산 속에서 꽃은 만발하고 꽃향기는 '그들'의 주위를 감돌 테니까.
-P.15, 작가를 읽다_에쿠니 가오리
中-
1.
만화건 소설이건 완결이 나지 않은 작품은 잘 보지
않습니다. 아니 못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네요. 중간에 짤린 듯한 기분이 싫기도 하거니와, 다음화가
나온후 짧은 기억력으로 전화를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는 점에서 전 항상 완결이 난 작품을 찾아봅니다. 이렇듯 끈기 부족한 제가 요즘 푹 빠져있는 연재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격월로 출간되는 잡지
<BOON>에 실린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이죠.
히구치 유스케의 연재소설인 작품은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익화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시대에서 복지와 분배가 아닌 성장에 초점을 맞춘 일본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지만 그 이면엔
청년들의 저임금 노동이 존재합니다.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과 노인의 시각을 번갈아가며 서술하고 있는데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작품의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매번 구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설녀는 한없이 인간을 위협하는 섬뜩한 본성을
나타내는 존재인 요괴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녹아 없어지는 눈의 이미지와 아이를 둘러싼 모성을 통하여 인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함과 안타까움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즉 이것은 일본의 전통적인 이류혼인담 양식의 답습이 나닌,
사람과 이류의 존재인 요괴와의 또 다른 차원에서의 이류혼인담이고,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요괴로서의 설녀, 그리고 모성과 팜므파탈적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중적 성질의 설녀로서, 이전의 설녀 이야기와는 전혀 색다른 모습과 특성을 나타내는 라프카디오 헌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148, 일본의 요괴문화 中-
2.
이렇듯 연재소설이 주가 되어 잡지를 구독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흥미를 끄는 알찬 기사들이 너무나 많이 실려있습니다. 이번호의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였는데요. 처음 일본 소설을 접한 것이 바로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였던지라 더욱 인상깊게 관련 글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 번역된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남자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선이 많았던지라
챙겨보진 않았었는데요. 전문가들의 서평을 읽다보니 내가 놓쳤던 부분들이 이런 부분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최근 작품들 (<하느님의
보트>,
<수박향기>
등)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인상적이였던 섹션은 이번호부터 새로이 기획연재된 '일본의
요괴 문화' 파트였는데요. 일본의
여성 요괴인 '설녀(雪女)'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설녀 이야기는 지방에 내려오던 설화를 '라프카디오 헌'이 각색하여 만든 이야기인데요. 그 근원이 되는 이야기들과
함께, 설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를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래 전 란포가 그랬던 것처럼 미하라당의 바삭바삭한
소금센베를 씹으며 어슬렁어슬렁 이케부쿠로를 걸어 란포의 기묘한 서고로 들러보는 건 어떨가. 눈과 혀로 란포의 취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고서를 좋아했던 란포는 헌책의 거리 '진보초'로 나가 고서점을 돌아다니기를 즐겼는데, 헌 책에 관심이 있는 산책자라면, 란포가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출출해질 때마다 들르곤 했던 '하치마키'(진보초 서점 도쿄당 옆)에서 새우덮밥을 드셔보시길. 3대째 이어져오는 이 가게 구석에 앉아
시원한 맥주에 새우덮밥을 시켜놓고 운명처럼 다가온 그날의 고서들을 뒤적이는 란포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P.163, 문학산책_ 란포와 함께 함부로 걷기
中-
3.
9월 초 여자친구와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BOON>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문화적 지식뿐 아니라 일본 유명
작가들의 흔적을 쫓아 볼 수 있는 관광 코스까지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죠.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 작품 <D 언덕의 살인사건>의 배경이자 실제 란포가 거주했던 지역의
'단고언덕'은 도쿄를 여행할 때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였는데요. 그가 자주가던 식당과 그의 이름을 딴 카페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 이동하면서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하나 하나 알찬 내용들로 채워져있어 9,000원이라는 금액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일본 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좀 더 심층적으로 볼 수 있는 문학잡지 <BOON>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