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일 내가 여기서 사는 동안 늘 지나치게 감사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면, 글쎄, 그렇게 말하랄 수밖에. 어떤 사람이 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어떻게 해서 이런 행동은 하고 저런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는지, 과거를 기쁜 마음으로 돌아보는지, 아니면 평정한 마음 또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는지,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를 생각할 때조차 완벽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 아는 일이지만, 과거란 결국 매우 불안정한 거울이어서 너무 가혹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비위를 맞추어 주기 십상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과는 달리 절대 진실을 비추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특히 점점 줄어드는 여생을 생각할 때, 지금 여기에 이르러 있는 내 모습을 평가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느꼈고, 이제 그 작업을 해 보려 한다.

 

-P.13-

 

 

1.

 

 우리는 흔히 위인들은 선하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과 대치되는 입장에서 바라보았을때 그들의 평가는 정 반대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격변의 역사 속 오늘날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생각해보면 과연 그들의 행동이 선(善)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중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마우쩌둥은 문화혁명이라는 명분하에 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미국의 대통령 링컨 역시 '노예해방'이라는 명분하에 수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죠. 논쟁의 여지가 있기에 한국의 인물들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선(善)과 악(惡)의 기준으로 평가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이 든 여자와 운전병이 팔을 잡고 여자들을 하나씩 끌어내렸다. 나이 든 여자는 베란다 계단 앞에 여자들을 한 줄로 세웠다. 차려 자세로 서 있는 오노 대위는 그들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사령관이 그를 불러, 도착한 사람들(나이 든 여자를 제외하면 모두 다섯 명이었다)을 안으로 들여 검사하라고 명령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겨우 다섯 명밖에 안 된다는 것이 내게는 특이해 보였다. 우리 부대에는 거의 이백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는 앞으로 며칠 낮밤 동안 그 여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P.232-

 

 

2.

 

  이창래 작가의 '척하는 삶'은 이러한 인간의 아이러니한 속성을 기가막힌 방법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국계 일본인이었으나 세계 2차 대전에 일본군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한국인 위안부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었던 구로하타 지로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 뉴욕 근처의 베들리런으로 이민해 프랭클린 하타라는 이름으로 반평생을 살아갑니다. 70대 노인이 된 그가 들려주는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의 지난 삶을 다시금 평가하게 만듭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으로 입양보내진 하타는 2차 대전 일본군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한국인 위안부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지만 자신의 삶과 신분에 충실하며 잔인한 현실을 묵인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잘 살았다 이야기 하지만 그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선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녀를 깨워 입을 맞추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잠을 못 자 기운이 없다는 말이 기억나 그대로 두었다. 그녀에게 약간의 평화를 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했을 것이다. 그녀가 요구하는 대로 무슨 일이든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탈출이라도 도왔을 것이다. 그녀가 요청한다면, 또는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면, 다른 인간을 해치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느낌이란 얼마나 특별하고 가혹한 것인지. 얼마나 무시무시할 정도로 순수한 것인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기운이 쭉 빠진다. 만족을 얻은 남자는 평범하든 잔인하든 인간적이든 어떤 행동이라도 아주 쉽게 결심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의적인 의지로 영원히, 영원히 자신의 기억에 남을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P.361

 

3.

 

 윤리시간 성선설과, 성악설을 배우며 인간은 어느쪽에 가까울까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어떤 결론은 내렸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의 저는 인간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이념에 따라 삶을 맞추어 살아가고, 선과 악의 개념 역시 사회의 이념에 맞추어 결정된다고 말이죠.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은 인간의 이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남자의 너무나 기구한 삶이 생각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