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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헌정사에서 나는 줄리언이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로 지목 되었지만, 그가 지은 죄를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사실 죄가 될 만한 일을 목격한 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한 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줄리언도 자신의 죄를 잊고 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한 것은
아닐까?
-P.71-
1.
'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마음속에 남아있는 구절이였습니다. '사투르누스(Saturn)'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크로노스와 동일인물로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신
입니다.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왕의 자리를 차지한 그는
'자식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게되고, 그것이 실현될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자식들을 차례로 잡아먹습니다.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란 이처럼 갑작스럽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은 우리를 비극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책의 주인공 줄리언 웰즈 역시
이렇듯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죄를 짓고마는 인물입니다. 그의 자살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친구 필립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그가 남긴 유서를
흔적삼아 자살한 이유를 찾아나가는 필립. 이야기의 끝 필립이 마주한 진실은 참혹합니다. 젊은
날 전도유망한 인물이였던 줄리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던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범죄에서 최소한의 인간성을 찾기
위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줄리언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처럼 혼자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건데, 줄리언이 본 것을 보고, 그가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갔던
곳에 가보고, 그가 자신이 연구했던 악독한 범죄자들이 되어 보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그가 되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길을 따라가는 것은 타인의 신경 회로의 급류를 건드리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줄리언의 마음속으로 조금씩 더 깊이 빠져드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P.143-
2.
젊은 시절 필립과, 줄리언은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적 갈등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파이로 몰리고 처참한 고문과, 실종, 살인이 공공연하게
발생하던 국가 아르헨티나. 그리고 그 잔혹한 시대 속에서
정의로운 청년 줄리언은 '마리솔'이라는 아르헨티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아름답고 총명했던 그녀는 필립과, 줄리언의 가이드가 되어줍니다.
고아였지만 타고난 총명함으로 대통령궁의 통역담당으로 일했던 그녀. 정치적인 성향은 찾아볼 수 없었던 그녀가 어느날 실종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이 납치되는 곳에서 마리솔의 실종은 두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남습니다.
줄리언의 죽음 이후 필립은 그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쫓아가며 죽음의 이유를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그 이유의 한 가운데엔 '마리솔'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스파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 그리고 줄리언이 그녀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 스파이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 하나 둘 풀려가는 듯 보이는
이야기는 또 다른 증인을 만나며 반전됩니다. 과연 마리솔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줄리언 웰즈를 죽음으로 몰고간 그의 죄에 그 정답이
있었습니다.
미스터리의 다양한 요소들이 퍼즐
조각들처럼 모여서 이리저리 다시 놓이다 보면 각각의 조각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전체 그림이 드러나는 순간이 꼭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내 이야기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서 최종적인 그림이 드러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림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대신 충성심과 정체성이
자꾸만 바뀌는 훨씬 더 어두운 세계, 젊고 순진했던 줄리언이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을 그 암흑의 세계와 대면하게 되었다.
-P.240-
3.
스릴러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
탓인지 읽는 내내 새로웠습니다. 마초 느낌의 형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황을 묘사하는 듯한 짧은 문장 대신 세밀하고 유려한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요. 찾아보니 토머스 H. 쿡이라는
작가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스릴러라는 장르물을 쓰지만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요 네스뵈나,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 때문일까요. 그 결말에 있어서도 여운이 남는 듯한 느낌이 아릿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감성적인 스릴러. 새로운 느낌의 스릴러를 읽어보고 싶은
분에게 강력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