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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서인은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남자,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 남자. 왜 이렇게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까? 마치 꿈속의 얼굴처럼. 결코 잡을 수 없는 바람
같은…….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던 키 큰 남자의 실루엣만이 계속 떠오른다.
-P.61-
1.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가벼운 장난들이
용인되는 날이죠. 어떤이들은 이 장난 속 진심을
담아 살그머니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더군요.
상대방이 거절하더라도 만우절 장난이였다고 넘길 수 있으니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는
셈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백을 받는 상대방이 정말 만우절
장난으로 생각해 이를 웃어 넘기며 진심을 몰라주는 경우의 수도 존재하니까요.
서로에 대한 믿음은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로 시작된 고백을 상대방은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우연히 만우절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에 진실을 감추고, 쌓여가는 오해에 많은것을
잃어야했던 바보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말이죠.
삶이 고통스러운 것을 우리는 피할
수 없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고통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삶에 대한 대처 능력이 생기는 거래. 고통을 통해서 결국
고통을 줄이게 되지.
-P.131-
2.
책은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며, 미스터리와 멜로를 함께 보여줍니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장르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선과 악을 이야기하는데요.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한국 버전을 보는 기분이였습니다.
요가를 가르치는 서인은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선우를 만나게 됩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지독한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우의 이상한 행동들이
포착됩니다. 서인의 생일날 촬영을 했다는 그가
그 시각
함께 찾았던 술집에 있었다는 이야기, 대학시절 모른다 했던 여자의 애인이 선우였다는 이야기 등이 서인에게 있어 선우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실종된 여자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며 서인은 더욱 혼란스러워 집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것처럼 책은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있습니다. 서인과 선우 두 사람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유려한 문체 덕분에
뒷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듭니다. 한국 장르소설에
갖는 아쉬움 중 하나는 유치하게 느껴지는 단순한 문체였는데. 이 경계에 서있는
작품은 아름다우면서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만나야 할 운명은 언젠가는
만난다. 그렇게 믿어버리게 되는 것. 어쩌면 그런 유치한 확신 같은 게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란 텔레파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운명에 대한
맹신. 서인은 소설에서 두 연인의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조롱하고 싶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꼴이 나버렸다. 그
소설을 쓰면서 자신도 자연히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P.290-
3.
'4월의 물고기'는 서양의 관용어로
만우절날 속아넘어간 어리석은 사람을 뜻합니다. 책 속에는 사랑했기에 바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끝이 조금
뻔해 아쉽기는 했지만 숨겨왔던 진실을 꺼내놓기의 과정은 충분히 비밀스러웠고 흥미로웠습니다. 숨겨야만 하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비밀 이 사이에서
두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사랑했기에 더욱 강렬했을 겁니다. 선우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자신을
인정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괜시리 궁금해졌습니다.
때로 인생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황은 선과 악의 대립만큼이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선우가 선택했던 최선은
거짓이였고, 서인이 선택한 최선은 진실이였습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 속에서 괜시리 마음이 짠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