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하지만 그 인기는 3년을 넘기지 못헀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기 하락이 아니라 예정된 죽음이었다. 이단강, 오정모, 최브레인 이 세 배우들 모두 예외가 없었다.

 사람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는 전설의 스타로 남고 싶은가, 아니면 죽은 후의 영광은 소용없으니 현실 속에서 관객들과 함께 사는 배우로 남겠는가?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하는가? 아니, 당신은 과연 어느 쪽 배우를 오래 기억할까?

 

-P.23-

 

1.

 

 모든 스토리텔링의 창작은 ‘만약에 ……라면’이라는 상황의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배웠습니다. 스타니 슬라브스키가 ‘매직 이프(Magic If)’라고 명명한 이 창작의 발상법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해가는 과정입니다. 만약 인형이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만약 내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만약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등과 같은 다양한 가정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가정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독자에게 인식 시킬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대중성을 잃어서도 안되고, 너무 뻔한 이야기로 독창성을 잃어도 안됩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어날 수 있도록 설득시키는 일. 그러기 위해선 작품 세계에 대한 단단한 사고와 배경 지식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때 작가 '조선희'는 이 '매직 이프'에 무척이나 능한 사람입니다. 만약 아랑과 장화홍련의 한을 풀어준 사또가 없었다면, 만약 인당수에서 돌아온 심청이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면, 착한 나무꾼이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금도끼였다면 등 다양한 가정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들은 한국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있는 금기들과 결합하여 고증됩니다. 독자는 이러한 고증을 통하여 위화감 없이 이 재배치된 동화에 몰입하게 됩니다.




 

 

 

 버들고리는 우리가 품고 있는 불안에 대한 답을 기약하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때 우리는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버들고리에 담은 우리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그것은 곧 우리 중에 하나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나 있었을까? 우리 스스로 소원과 친구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함정을 만들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이제 혜지가 죽고 나자 묻혀 있던 나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우리 중에 하나가 죽었어. 소원이 이뤄질지도 몰라. 신난다.

 

-P.148-

 

2.

 

 조선희 작가의 책을 두번째로 접했습니다. <모던 팥쥐전>에 이은 <모던 아랑전>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동화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보여줍니다. 작품을 읽다보면 <페로 동화집>처럼 몽환적이면서 뒷맛이 찝찝해지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아마 이러한 작품들이 모두 작가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순들을 이야기 속에 숨겨 두었기 때문일 겁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영혼을 보는 형사>에서는 평범한 삶 대신 3년이라는 한정된 수명과 성공한 삶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상풍화된 인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효녀 심청을 재해석한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에서는 세명 중 한명이 죽어야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버들고리에 소원을 비는 소녀들을 통해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까지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할미꽃>에서 드러나는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베풀어야 한다는 윤리적 인식의 배반 등 현실에서 일어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책은 이야기합니다.

 


 

 

 

 정신은 이미 저승 가는 길에 놓아버렸고 몸은 고작해야 부스러기밖에 남지 않았을 죽은 외할머니를 향해 엄마는 사과했다.

 "엄만 늘 저한테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노래를 하셨죠.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고 가족의 그림자로 살다가 이렇게 엄마처럼 하릴없이 인생을 마감하면 안 된다고. 근데 엄마, 잘 안 돼요. 다들 그렇게 사니까. 저도 별 수 없네요. 미안해요, 엄마 바람대로 살지 못해서요."

 

-P.298-

 

3.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건 작품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들입니다. 몽환적이면서 섬짓한 그림들은 냉혹하고 애절한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감정과 몰입을 배가 시킵니다. 일본의 괴담과, 유럽의 신화. 이들을 기본 콘텐츠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전통의 콘텐츠를 살린 작품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던 팥쥐전>은 한국의 전래동화와, 일상적인 금기, 잊고 살았던 전통의 면면을 버무려 한국형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그 속에 인간이 명심해야 할 교훈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랜 시간 지혜가 담긴 우리의 전래동화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면을 조금만 뒤집어 보았을 때 생기는 틈과 잔혹함은 잊지 못할 서늘함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더운 여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고 싶은 책 <모던 아랑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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