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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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희들이 애 여섯을 가질 거라면 -아니, 여덟이나 열을- 아니야, 난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해리엇. 난 널 잘 알지, 안 그래? 그래 네가 이집트나 인도 같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하자. 그곳 사람은 반 이상이 교육도 못 받고 죽어. 넌 양쪽을 다 갖기를 원하지 귀족 계급 -그래, 그들은 토끼같이 애들 많이 가질 수 있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그럴 돈이 있더든. 그리고 가난한 사람도 애를 가질 수는 있겠지. 그 반은 죽을 것이고 그것도 당연하다고 여기니까. 하지만 우리같이 중간에 있는 사람은 애를 갖는 일에 신중해야 돼, 애를 잘 키우려면 말이야. 

 

-P.24-

1.

 

 우리가 기본적이고 상식적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렇게 배워왔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빠르게 변화된 사회에서 때로는 상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바뀌어버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대체 가치를 선택하지만, 내가 배워왔던 기존의 가치를 쉽게 바뀔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과 이상이 대치를 이룰때. 그것은 인간의 이상적인 꿈을 포기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과거 중산층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 아이들을 많이 낳고, 그 아이들과 자신의 친척들이 어울려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주택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 외에도 수 많은 개인적 욕구가 있겠지만 <다섯째 아이>의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생각했던 이상은 바로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상징되는 가치들였습니다. 남들이 보면 고리타분하다 생각할수 있을만큼 전통적인 가치관 이지만, 그들에게는 어린시절부터 꿈꿔온 하나의 이상이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릅니다. 다섯번째 아이인 '벤'이 태어나면서 그들이 꿈꿔온 모든 이상은 산산히 부숴집니다.

 

 

그녀는 벽을 따라 수많은 침상과 어린이용 침대가 있는 기다란 병동의 한쪽 끝에 있었다. 어린이용 침대에는 괴물이 있었다. 다른 쪽 끝에 있는 문을 향하여 병동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면서, 그녀는 모든 침대와 침상에서 정상인의 틀에서 때로는 끔찍하게 때로는 약간 뒤틀려나온 형체의 유아와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처럼 가느다란 몸뚱이에 축 늘어진 거대한 머리를 가진 아기..... 그리고 빳빳해서 무서질 것 같은 사지에다 거대한 눈이 툭 불거져나온 꼬챙이벌레 같은 아이..... 살이 녹아내려 몽땅 일그러진 작은 소녀

...

 

줄지어 누워서 거의 잠든 채 침묵하고 있는 기형아들. 그들은 말 그대로 약물로 정신이 마비되어 있었다. 그래, 거의 고요하게. 양 옆을 담요로 방패막이를 한 창살 침대에서는 슬픈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P.110-

2.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성 개념이 문란해진 현대에 보기 드문 젊은이들 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발견하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들은 곧 결혼을 하고, 자신들이 원했던 빅토리아 풍의 멋진 대저택을 구입합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그들이 꿈꿔온 이상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 보입니다. 북적북적한 친지들과, 네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다섯번째 아이인 '벤'이 태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행복한 것 처럼 보입니다.

 

 '해리엇'의 배 안에서부터 그녀를 힘들게 했던 '벤'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기이한 느낌을 뿜어냅니다. 아이는 엄마의 젖을 난폭하게 빨며 그녀가 고통받는것을 즐기듯이 쳐다보고, 아이라고 믿기지 않는 힘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단순히 힘이 세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있던 동물들이 알 수 없이 죽어갔으며, 부모조차도 왠지 모를 어두움에 아이를 꺼리게 됩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이상은 '벤'의 탄생과 함께 무너져 갑니다. 발디들 틈 없이 꽉 찼던 부부의 넓은 집은 모두가 꺼리어 텅텅 비었으며, 자식들조차 집을 떠나 기숙학교에 가길 희망합니다.

 

 '벤'은 부모가 꿈꾸던 든든한 아들이 아니라 가족의 화합을 파괴하며, 모든 식구들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비추어 집니다. 가족들을 위해 또다른 가족 구성원 '벤'을 버려야 한다는 선택은 다소 모순적입니다. 그것은 처음 부부가 생각했던 가정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 아이를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는 육체의 껍질이 한겹 벗겨진 것 같았다. 물론 진짜 표피는 아니지만, 아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전혀 의심해 보지도 못하는 형이상학적인 본질이.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제까지 해왔던 식으로 일하느라 가정적인 남자로서의 자아를 잃어버렸다.

...

 

이제 그는 자신이 한때 결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제임스는 더 이상 이 가족을 도와주지 않았고 단지 루크 뒷바라지만 해주었다. 자신에 대한 완고한 신뢰에서 오는 솔직함과 개방성이 데이비드에게서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자만심이 자리잡았다. 해리헛은 만약 자신이 데이비드를 이제 처음으로 만난다면 그를 딱딱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았다.

 

-P.152-

3.

 

 생각해보면 그들의 이상은 '벤'이 태어나기 전부터 어긋나 있었습니다. 친척들은 아이를 네명이나 낳은 부부에 대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라며 계속해서 압박을 했고, 모임을 위한 돈도 부자인 '데이비드'의 양 아버지가 아니였다면 구할수 없었습니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전통적 가치관에 얽매여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라는 문제에 계속해서 부딛치고 그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벤'은 피해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귀여움을 받아야 할 막내였지만, 뱃속에서부터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존재가 기형적이고, 고립된 인물로 태어난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책의 시점은 공포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벤'을 악마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변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더욱 악마같다 생각한것은 저뿐일까요. 2000년 발표된 후속작 <세상속의 벤>에서는 벤의 이후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희미하게 끝나버린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후일담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가족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허상을 소름돋는 문체로 그려낸 <다섯번째 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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