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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ㅣ 미스터리 야!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주영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1920년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학교 앞에서 스물 남짓한 학생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줄맞춰 서 있다. 첫째 중 중앙에는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앉고 양옆으로 반장과 부반장이 앉았다. 아야카는 첫째 줄 끝에 앉아 있다. 둘째 줄은 서 있고 셋째 줄은 단 위로 올라갔다. 건물이 낡았고 시골 학교라서 그런지 아이들 얼굴에도 촌티가 철철 흐른다. 컬러사진이지만 50년 전 졸업 사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P.21-
(스포 有)
1.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운동장에 타임캡슐을 묻었던 기억이 납니다. 담임선생님의 주도하에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 네모난 통안에 담아 묻어두었죠. 교정에 묻어두었던 편지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요. 언제 만나서 이걸 다시 연다는 말이 있었던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타임캡슐을 묻었던 기억도 정말 아련하게 남아있어서 과연 그게 정말 내가 묻은 것인지, 아니면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인지조차 불분명 합니다. 초등학교때 친구가 연락이 된다면 물어보겠지만, 몇 번의 이사로 그때의 인연은 모두 끊겼습니다. 과연 그때 내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요.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을까요?
타임캡슐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낭만적입니다.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추억할만한 거리를 담아 기억한다는 행위가, 시간이 지난뒤 바라보면 그때의 미성숙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추억거리일테니 말이죠. 오래된 일기장을 뒤져볼때의 부끄러움과, 이렇게 많이 컸구나 싶은 뿌듯함까지.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오리하라 이치'의 <타임 캡슐>은 바로 이 타임캡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오래전 묻어 두었던 타임캡슐과 그 안에 숨겨진 동창생들의 비밀. 그 안에는 단순히 아름다운 추억만 담겨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숨기고 싶은 과거와, 잊고 있었던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렇듯 화기애애하고 따사로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극한의 겨울로 되돌아가 버린 것 같다. 운동장에서 들리는 환호성이 단절되며 얼음 같은 침묵이 주위를 감쌌다. 다섯 명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억지로 봉인한 기억의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나온다.
-P.145-
2.
10년 전 중학교 졸업 기념행사로 타임캡슐을 묻었던 여섯 명의 멤버들. 시간이 지나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들에게 어느날 기묘한 편지 한통이 배달됩니다. '구리하시기타 중학교 3학년 A반 죽음을 선택받은 졸업생 여러분'이라는 소름끼치는 문구의 편지는, 당사자들 개개인에게 소름돋는 기억을 안기며 도착합니다. 한편 프리랜서 카메라 작가인 아야카는 타임캡슐을 묻은 멤버이지만, 병원신세로 인해 당일 행사에 참가하지 못했는데요. 타임캡슐을 묻은 친구들을 취재하며 자신이 없었던 시점에 다른 멤버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건을 진행캡슐을 묻은 멤버들의 기억은 진실의 퍼즐 조각입니다. 극이 진행되면서 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음 사람의 이야기로 보완되지만, 그 진실이 온전한 것인지는 믿기 힘듭니다. 과거의 사실은 기억에 의존하는 것으로 주관적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타임캡슐>은 이렇듯 다른 기억이 빚어내는 미스터리 입니다. 타임캡슐 행사에 참가했지만 얼굴을 알 수 없는 두명의 학우는 그런 미스터리를 더욱 증폭시킵니다. 과연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기억은 어떤것일까요.

졸업 전 추억 만들기는 이만하면 성공이다. 한밤중 뒷산에 들어가 동굴 속을 탐험하며 이렇게 무서운 체험을 했으니까. 이제 충분하다.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지만 피로와 공포는 충분히 맛보았다. 다섯 멤버들 역시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P.246-
3.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10년 전의 과거와 현재가 반복됩니다. 이렇듯 시점이 계속해서 교차하지만, 읽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외려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다보니,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더욱 스릴 넘치는 진행을 유도합니다. 미스터리 YA 시리즈가 영 어덜트를 대상으로 하는 시리즈여서 그런지, 기존에 봤던 미스터리 서적들과는 달리 자극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는데요. 그런 폭력성을 배제하고서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않고 이야기를 진행해 가는 작가의 능력이 놀라웠습니다.
사실 중반까지는 쉴새없이 몰입되었던 이야기가, 후반부에 가면서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엉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정말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반전은 생각 외였지만, 그다지 수긍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전에 <행방불명자>를 읽으면서도 중반까진 재밌게 읽다 마지막에 가서 김이 샜던 경험이 있는데 마무리를 잘 못짓는 작가라는 생각이 살며시 들더군요. 대표작인 <도착의 론도>를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타임캡슐'이라는 소재와 이야기는 참 좋았지만, 트릭을 끌어내는데 있어 아쉬움이 남는 작품 <타임캡슐>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