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토와코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른다. 왜 언제나 쿠로사키의 추억만 이토록 생생한 것일까. 잊히지 않는다. 과거가 되어ㅂ버리지도 않는다. 이식을 받아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심장처럼 언제나 콩닥콩닥 맥박치고 있다. 겨우 1년 반밖에 사귀지 않았는데도. 헤어지고 이미 8년이나 지났는데도.....

 

-P.7-

 

1.

 

 누마타 마호카루의 <유리고코로> 라는 책을 소개하며, 사랑의 다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의 신작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역시 그녀의 장기인 기이한 사랑과,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진 책인데요. 저에게는 몇 번이나 덮어가며,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였습니다. 책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가의 연륜만큼 농익은 문체는 번역된 글조차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세세한 감정표현에 있어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은 역겨울만치 답답합니다. 특히 여주인공 토와코는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이해가 안되는 인물이였습니다.

 

 책의 표지에서는 "이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을 아직 모른다!" 라는 카피로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했는데요. 저는 이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암흑의 밑바닥에서 오로지 이 남자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순간 머리를 스쳤다. 다음 순간, 토와코의 몸은 맹렬하게 달리는 기차를 타고 돌진하는 듯한 황홀감에 빠졌다. 말의 잔해가 뒤로 사라지고 의식이 눈사태처럼 무너졌다.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는 진지가 보였다. 진흙 속에서 춤추듯이 꿈틀거리는 시커먼 미꾸라지. 이윽고 몰려오는 절정의 순간에 손쉽게 토와코의 몸을 열고, 미즈시마가 결코 풀어주지 못했던 것을 풀어주는, 미꾸라지처럼 천박한 남자 진지.....

 

-P.158-

 

2.

 

 이야기는 '토와코'와, '진지'라는 주요 인물들의 기묘한 동거로 시작됩니다. '토와코'는 과거의 남자를 잊지못하는 여자입니다. 하루종일 DVD를 보며, 헤어진 남자를 생각하는 그녀는 무척이나 궁상맞습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쿠로사키'는 '토와코'를 실컨 이용해 먹고는 잔인하게 버립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보면 답답하리만치 뻔한 상황인데, 그녀 혼자서만 그 상황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토와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진지'입니다. 이렇게 토와코가 일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해 나가는건 모두 '진지'덕분입니다. 토와코보다 15살 연상의 진지는 하는 짓마다 어눌하고 지저분한, '토와코'말로 미꾸라지 같은 남자입니다.

 

 이 둘의 관계과 완벽하게 역전되어 있습니다. 토와코는 진지를 혐오스러워하며 무시하는 반면, 진지는 그런 토와코에게 집요하리만치 집착합니다. 그렇게 위태로운 둘의 관계는 어느 날 토와코를 찾아온 형사로 인해 더욱 심화됩니다. 토와코가 쿠로사기에게 건 전화 떄문에 찾아왔다는 형사는, 쿠로사기가 5년 전부터 실종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쩌면 쿠로사기가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무척이나 혐오하는 진지에게 말이죠.

 

 

 

진지를 사랑하는 마음-비슷한 것이- 갑자기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입가가 허무한 조소로 일그러졌다. 흉측한 미꾸라지 같은 남자인데, 광기에 사로잡힌 살인자일지도 모르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감상적인 슬픔을 느끼다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비웃었다.

 

-P.267-

3.

 

 도대체 무엇이 사랑이라는 걸까요. 토와코를 향한 진지의 감정은 집착에 가까웠고, 그런 진지를 외면하고 다른 남자만을 쫓는, 그리고 자신의 위기에만 진지를 찾는 토와코의 감정은 추악한 이기심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한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어쩌면 저는 몇 번이나 책을 덮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모습은 그 모습을 정의 내릴수 없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이것 역시 사랑이었을까요? 읽는 내내 토와코에 대한 분노를 안고 있었지만, 감상을 적어가며 문뜩 생각해봅니다. 아 정말 이렇게 찌질하고 추잡해 보이는 모습들도 결국 사랑이였을까라는 생각을요.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누마타 마호카루의 작품들은 그 사랑을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누어 질 겁니다. 전 <유리고코로>때와 달리 이해하지 못했기에 불호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감정을 잘 잡아내 읽는 내내 사람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은 무척이나 대단합니다. 표지의 외로워 보이는 한 여자의 모습이 왠지 후에 남겨질 토와코의 모습 같아서 괜시리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과연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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