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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매화
미치오 슈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광매화(光梅花) / 미치오 슈스케
곤충은 항상 빛을 같은 방향에 두고 날아가는데 그 빛이 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똑바로 날아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빛이 작으면 그러지 못해. 작은 빛을 늘 같은 방향에 두려고 하면 곤충은 그 빛으 중심으로 빙빙 돌게 돼버리거든. 그러면서 그 원이 점점 작아지지.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작은 빛에 머리를 계속 부딪치는 거란다. 주변이 박아져서 이 빛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P.84-
1.
곤충에 의해 꽃가루를 옮기는 꽃을 '충매화'라 하고, 바람에 의해 꽃가루가 옮겨지는 꽃을 '풍매화'라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유추해 보자면 '광매화'는 빛을 통해 피어나는 꽃이 될텐데요. 도대체 어떤 꽃이 동화속 상상처럼 빛을 통해 피어날까요. 광매화(光梅花)는 참으로 상징적인 제목이였는데요. 책 전반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 또 있을까, 정말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광매화>의 저자인 '미치오 슈스케'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 이름만으로 작품에 믿음이 가는 작가인데요. 이번 작품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섬세한 감성과 문체는 여전하지만, 거기에 독특한 구성 방법까지 어우러져 그 마지막에 있어 작품이 주는 감동이 배가 되었습니다. 6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단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장으로 구분되어 있음에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전 장에 등장했던 조연급의 인물이 바통터치를 하여 다음 장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식이지요. 이렇게 진행되는 구성의 끝은 무척이나 감동적입니다. (괜히 이런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게 아니였어 !!)

콧구멍을 번갈아 벌름거리며 창밖에서 실려오는 향기를 맡았다. 문득 묘한 의문이 들었다. 나와 마키가와 씨, 그의 딸, 그리고 유키는 도대체 어디가 다른 걸까?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닮았다. 닮았기 때문에 걱정도 하고, 미워도 하고, 도와도주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애정을 품기도 한다.
-P.181-
2.
각각의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나름의 어둠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장기인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도 나타나고, 아이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입장에서도 추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작품의 분위기가 어둡기만 한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희망적이다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빛이 존재합니다. 구원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어둠을 타인에 의해 내려 놓습니다. 그렇게 등장 인물들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빛이 되어 주며, 누군가의 빛에 구원받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침에 버스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교에 갈 수 있었으며, 매점 주머니와 농담을 주고 받았고, 교수님을 비롯한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에게 빛으로 다가 왔고, 어떤이는 나로 인해 빛을 전달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소설속 인물들 처럼 구원을 받고, 구원을 주는것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우리는 사회라는 '꽃밭'을 이루고 살아가게 됩니다.

생일 저녁 밥상에 비록 케이크는 없었지만 평소보다 호화로웠다. 카레에는 소고기가 들어갔고 컵에는 보리차 대신 사이다가 담겨 있었다. 샐러드는 바삭하게 튀긴 고기와 함께 버무려 나왔다. 무엇보다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집안일 하던 손을 멈추고 내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사람은 어째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만 뚜렷이 기억하고 소중한 기억들은 전부 잊어버릴까?
-P.235-
3.
개인적으로는 5장인 '풍매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와의 관계가 단절된 아들이 특정한 계기로 화해하는 과정이 '미치오 슈스케' 스럽지 않으면서,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숨바꼭질'이나 '벌레쫓기'의 경우 다른 작품에서 이미 본듯한 이미지로 그 감동이 반감된 반면, '풍매화'는 묘사의 방법이나 그 주인공들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따뜻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것 같습니다.
얼마전 출간된 <물의 관>을 읽은 후 느꼈지만, '미치오 슈스케'를 미스터리 라는 틀에 가두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광대해져 버렸다는 생각입니다. 이번에 읽은 <광매화>역시 미스터리 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달라지는 이야기 속에서 미스터리의 요소를 찾아가는것도 새로운 재미임을 깨달았습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얼마나 달라진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올지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