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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살아만 있어줘 / 조창인
희망도 계획도 없이 맞이하는 시간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조차 사치처럼 여겨지는 하루하루가 두렵고 끔찍했다. 패배자였고, 궁지에 몰린 생쥐 꼴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삶이라면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정직하게 말해, 억지로 산다고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나 할까. 죽은 게 낫다고 봤다.
-P.89-
1.
어릴 적 <가시고기>라는 책을 읽으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희생적인 아버지의 부성애를 다룬 책은, 독자들의 감성을 건들이며 눈물샘을 자극시켰습니다. 당시 드라마로도 만들어 졌을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은 '조창인'이라는 작가를 깊이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곧이어 출간된 <등대지기>역시 모성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죄의식을 건들이며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조창인' 작가의 소설은 인간이 어느 부분에서 슬플을 느끼는지 탁월하게 나타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불치병,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인 등 분명 눈물이 날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들입니다.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내용들은 한계점을 지닙니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가면 갈수록 질려버리고, 뒷부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만큼 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알면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작가의 신간 <살아만 있어줘>역시 뻔하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 입니다.

내 사랑이 서글프다면, 사랑을 시작하는 법만 배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랑하는 게 죄 짓는 일이라면,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려야 할 때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 서글픔은 사랑을 멈추는 법을 알지 못한 탓이었다.
소설 속 남자의, 사랑하였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의 독백이었다. 바보 같은 남자였다. 한심한 사랑이었다.
-P.169-
2.
'나, 이제, 죽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첫 문장은 무척이나 강렬합니다. 성수대교. 앳되보이는 두 여인이 다리의 난간에 서 있습니다. 죽고 싶어 만난 두 여인의 사연은 기구합니다. 오빠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해 버린 '미주'와, 부모를 잃고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해나' 둘은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답니다. 하지만 삶은 기구하게 그녀를 살려놓았습니다. 병원에서 깨어난 해나는 동반자살에서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목숨을 건졌지만, 여전히 삶에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해나'는 죽음만을 생각합니다.
베스트 셀러 작가 '은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 입니다. 한때 해나의 어머니 인희와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녀는 은재의 친구 기호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렇게 친구와, 사랑했던 사람을 모두 떠나 보낸 후 평생을 혼자 살아온 은재에게 '해나'의 존재는 무척이나 각별합니다. 사랑했던 인희의 모습을 보는 듯한 해나에게 은재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나약해서 죽으려던 게 아니다. 의지가 너무 강해 죽음을 머릿속에만 묶어두지 못했고 몸으로 옮겼으리라. 누군가 빗나간 항로만 바로잡아 준다면 능히 스스로 풍랑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P.271-
3.
사실 옛날만큼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살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공감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짜증이 났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만큽 힘들었던 걸까요. 더 힘든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배부른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보호자를 자청하는 '은재'의 모습 역시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결국 모든것이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인데, 그 장치들이 너무 많아 역효과를 준 것 같습니다. 확실히 눈물샘을 자극할 만큼 슬프지만, 너무나 뻔한 신파입니다. 사실 이번 신작이 나왔다고 했을때, 기존의 억지 눈물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었는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웃긴건 이렇게 신파라 욕하면서도, 다시한번 눈물이 필요할때면 책을 펼치게 된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우리는 뻔한 이야기에 눈물 흘리는 걸까요. 아마 '조창인'이라는 작가가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점점 각박해져가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무뎌지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정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름만으로도 눈물이나는 부모님과 같이 말이죠. 그 끝이 너무 슬프지만은 않아서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