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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수차관의 살인 / 아야츠키 유키토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별난, 어떤 이들은 천재라고 부르는 건출가가 지은 저택, 수차관. 웬만해서는 살기를 꺼릴 산간벽지에 지어진 이 집은 직사각형의 높은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의 높이는 5미터는 족히 되리라. 돌로 만든 중후한 외관은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영국 고성의 성벽을 연상시켰다.
-P.80-
1.
호불호가 나뉘는 <십각관의 살인>을 읽은 뒤, 관시리즈는 나랑 안맞는구나 라는 생각에 관심 외로 치부했었는데요. 한스미디어에서 개정판 표지가 무척이나 예쁘게 나오면서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일단 책은 겉모습이 쌈박해야 읽을 맛이 난다 라고 생각하는지라 더욱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빨간 바탕에 검은색 수차가 겹쳐져있는 모습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자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가면과 미소녀, 전설의 명화, 기괴한 저택 등의 고딕풍 소재는 기이한 시체와 더불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지요. 얼핏 김전일이나, 코난 같은 추리만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은 무대에서 상연되는 한편의 연극 같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책을 구성해 나가는 방식에서부터 치밀하게 계산되어있는데요. 한정된 공간을 이용하며, 주인공의 독백을 괄호로 처리하고 각각의 장을 현재와 과거로 번갈아가며 구성하는 등 그 구조에 있어 십각관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이치가 생각하건대 후지누마 잇세이는 진정한 의미의 '환시자'였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의 그림은 '마음의 눈'이 포착한 환상풍경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본 그 풍경에, 그것을 옮긴 긂에 그는 당황하고 겁을 먹은것이다.
...
"아버지처럼 나도 그 그림이 무서워. 꺼려질 만큼 오싹해. 그래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뒀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고,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P.93-
2.
비와 바람, 번개와 탁류 그리고 수차가 연주하는 괴이하고도 떠들석한 음악에 감싸인 긴 하루. 한 여자가 탑에서 떨어집니다. 곧 그림 한점이 사라졌으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한 남자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남자를 좇던 또 다른 남자가 토막난 채 소각로에서 발견됩니다.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명확해 보이는 사건에 의문을 품지 않았고 사건은 그렇게 해결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사건이 발생했던 수차관에 작년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사람이 사라진 남자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기괴한 저택에서의 연극을 계속해 나갑니다. 사람들이 저택에 모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천재 화가이자 환시자였던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들을 바로 이 저택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탐하는 사람들, 아름답고 어린 미소녀를 부인으로 삼은 가면쓴 남자. 그들의 욕망으로 가득찬 수차관에서 또 다른 살인이 발생합니다.

"저는 그날 밤에 이 저택에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와 지금 여러분이 들려주시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디까지나 외부인으로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가령 그런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아마도 저나 여러분이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뒤엎어야만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불가해한 문제에 직면하면,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상식과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해석하려 드는 법이죠. 그러니까 요는, 여러분 각자가 어떤 해석을 내렸느냐는 겁니다. 일단 후지누마 씨부터."
-P.205-
3.
신본격을 추구하는 작가의 스타일처럼 책에서의 동기는 무척이나 쉽게 드러납니다. 아 왠지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었을것 같다. 추리소설좀 읽었다 하는 분들은 그 트릭을 모른다 해도 책 전반에 묻어나는 느낌들로 대강의 그림을 추측할 수 있을겁니다. 제가 <십각관의 살인>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도 바로 너무 쉽게 드러나는 동기와, 트릭 때문이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대단한 트릭이였겠지만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그러한 트릭을 인지한 독자에게, 동기성도 떨어지는 작품은 매력이 반감되는것이 당연할 겁니다.
두 번째 읽은 '관 시리즈' <수차관의 살인>역시 어디서 한번쯤 읽어봤음직한 트릭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딕풍의 소재와, 연극을 연상케하는 구성 때문이였습니다. 본격 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지만, 그 매력적인 구성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이며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동안 작가가 흘려 온 떡밥들의 의미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암흑관의 살인>을 제외한 나머지 관시리즈가 복간된다고 하는데, 급 기대가 됩니다.
+) 이웃인 디엠님의 말처럼, 왜 굳이 제목을 수차관으로 지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목 자체는 고딕풍의 느낌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지만, 글쎄요.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인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