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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숲 / 할런 코벤
그것은 내가 정치적 정당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샤미크가 백인 밀집지역인 리빙스턴 출신에 금발머리를 가진 학생회 부회장이었다면, 그리고 그 두 남학생이 흑인이었다면 아마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P.64-
1.
한밤중의 숲에 방문해 본 적이 있습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속, 이름모를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성인이 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 무서운 기억입니다. 명절날 파주에 있는 시골에 내려가면, 가장 먼저 찾는게 옆집에 사는 S군 이였습니다. 사촌들과는 위로도 아래로도 너무 차이가 많이나 어울리기 힘들었고, 나이가 같은 S군만이 심심한 시골에서 나를 구해줄 시켜줄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역시 또래의 친구가 필요했던 S군은 저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줬습니다. 뒷산에 올라 먹을 수 있는 버섯들과, 열매들을 알려주며, 산에대한 많은 지식들을 가르쳐줬죠. 그렇게 날이 저물어 갈즘 S군은 제게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한밤중에 산에 올라가면 토끼와 다람쥐는 물론,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멧돼지도 볼 수 있다고 말이죠. 한낮에도 안보이는 동물들이 껌껌한 밤중에 보일리가 없지만 당시에 저는 이야기를 믿을만큼 멍청했었습니다. 혼자서 토끼를 잡아 어른들에게 자랑해야겠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 강했고 결국 혼자 숲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몇 발자국 지나오지 않았는데 랜턴빛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이 깔려있었고,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더이상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동물은 보지 못한채 엉엉 울음만 내지른채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잠자던 부모님은 겁도 없이 미쳤다며, 회초리를 드셨고 그날의 감각은 제게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전의 아이들은 엄청난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어둠 속에 어떤 불운이 숨어 있는지 몰랐다. 그들 중에는 여름캠프에 참가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시 캠프장 관리인들은 아이들의 안전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밤마다 아이들은 캠프장 주변 숲으로 들어갔고, 그중 몇몇은 거기서 살아나오지 못했다.
-P.160-
2.
'할런 코벤'의 <숲> 전반부를 보며, 전 제가 경험한 기억을 다시끔 떠올렸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온갖 짐승들이 울어대는 그 숲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실종되고, 죽은 채 발견됩니다. 캠프를 떠난 4명의 아이들이였습니다. 숲으로 간 아이들 중 2명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나머지 2명은 실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넓은 숲 어딘가에 실종된 아이들이 묻혀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20년이 지난 뒤 실종된 아이로 추청되는 인물이 죽은지 얼마 안된 시체로 발견됩니다. 또 다른 실종자의 오빠 '폴 코플랜드'는 시체의 신원이 당시 실종된 '길 페레즈'임을 확신하지만 정작 '길 페레즈'의 부모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뭔가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하나 둘 발견되고, '폴'은 동생 '카밀'이 어쩌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지금까지 읽은 '할런 코벤'의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 없을것 같은 이야기들이 날줄과 씨줄처럼 엮이며, 결말부에 이르러 완벽한 하나의 조각이 되어 완성되었었는데요. 이번 작품 <숲>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검사인 '폴 코플랜드'가 맡고있는 강간사건과, 그가 어릴적 경험한 끔찍한 사건이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종반부에 이르러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완성됩니다. 그 전개 과정이 억지로 끼워 맞춘것 같지 않고 딱 맞아 떨어지는것이 이 책이 '할런 코벤'의 작품이라구나 라는걸 새삼 깨닫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었다. 웨인 스튜벤스가 카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마고 그린에게 했던 것처럼 몸을 꽁꽁 묶어놓고 겁을 주지는 않았는지. 더그 빌링엄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몸부림치다가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지. 인디애나와 버지니아의 피해자들처럼 그가 카밀을 산 채로 매장했는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지. 얼마나 겁이 났을지.
-P.469-
3.
어쩌면 제가 혼자 갔던 그 숲에는 북한에서 넘어온 무장 간첩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정말 멧돼지가 있어 어렸던 저를 뿔로 받아 잡아먹었을지도 모르구요.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은 때론 무지에 가깝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요. 아마 이야기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때 사람들은 그것을 묻고 싶어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숲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비밀은 안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숲에 묻고 나오고 싶었지만, 그 비밀이 너무 무거운 탓에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죠.
두꺼운 분량의 책이지만 정말 쉬지않고 읽어 나간것 같습니다. 그만큼 '할런 코벤'의 작품은 몰입도가 뛰어난데요. <숲>은 그의 작품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였습니다. 어쩌면 제가 경험한 '숲'의 이미지가, 책속에 등장한 '숲'의 이미지로 연상되어 더욱 인상적인게 아니였나 싶네요. '숲'에 숨기고 싶은 그들의 충격적인 비밀이 무척이나 서글프게 느껴졌던 책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