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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 ㅣ 기담문학 고딕총서 14
워싱턴 어빙 지음, 김동준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슬리피 할로우 / 워싱턴 어빙
때는 바야흐로 공포정치가 한창이던 때로,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죽음의 기계는 언제든 누군가의 목을 내리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냉혹한 칼날에는 고결하면서도 두려움 없는자들의 피가 마를 새 없었다. 침묵으로 잠든 도시의 한가운데 우뚝 선 기요틴은 새로운 희생양을 기다리며 그 무시무시한 자태를 드러내고 서 있었다.
-P.13-
1.
요즘 제가 관심을 두고 모으고 있는 시리즈 중 하나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기담문학 고딕총서』입니다. 무섭고 신기한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책에 실려있는 삽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한편 한편 모으고 있습니다. 원래 20권 예정으로 계획되었으나, 출판사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중단된 비운의 시리즈이기도 한데요. 고딕문학을 접하기 힘든 국내에서, 좋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출판사였는데.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슬리피 할로우>는 기담총서의 14번째 이야기 입니다. 사실 <슬리피 할로우>는 우리에게 팀버튼 감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영화의 원작이 바로 '워싱턴 어빙'의 소설입니다. 하지만 영화와 책의 이야기가 같지는 않습니다. 확실히 영화에 더 많은 스토리가 추가되었고, 변경되어있는데요. 비슷한 점은 목없는 기사가 등장한다는 점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형체는 다름 아닌 헤센 기병대원의 유령으로, 독립전쟁중 어느 이름 없는 전투에서 포탄을 맞아 머리가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어수룩한 밤이면 마치 날개라도 돋친듯 빠른 속도로 말을 타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마음 주민들에게 목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유령의 출몰현장은 골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그는 마을의 도로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교회 근처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P.31-
2.
책은 총 다섯개의 짧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신비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들 인데요. 읽는내내 우리나라 민담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국 작가의 작품집임에도 우리나라 설화의 모티프와 중복되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문화에 맞게 만들어져 광포적으로 퍼져간것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작품인 <립 반 윙클>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몰랐던' 선경설화의 내용이 거의 흡사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슬리피 할로우>와 같은 이야기는 무척이나 신선합니다. 목 없는 기사가 출몰한다는 ‘슬리피 할로우’ 지역의 기괴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미국으로의 이주가 한창이던 당시 초기 이민자들의 풍습을 낭만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데요. 네덜란드 이주민들의 풍습이라던지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어, 즐겁게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앞에 말한 삽화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데요. 작품마다 한장 정도씩 들어있는 삽화들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욱 더해줍니다.
가장 인상적이였던 이야기는 <어느 독일인 학생 이야기>였는데요. 한국의 시애설화와 비교해 볼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이 악마와 연관되며 더욱 오싹합니다. 특히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소름이 싸악 돋을 정도였는데요.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작가의 필력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가 나무를 기어오르자 독수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커다란 날개를 펼쳐 깊은 숲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톰은 앞치마를 펼쳐 내용물을 확인하곤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 속에는 사람의 심장과 간이 함께 묶여 들어 있었던 것이다!
-P.108-
3.
1800년대 쓰여진 작품들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무척이나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독립전쟁과 이주민등으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시절, 오늘날 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은 자연에 두려움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 그런 인간의 두려움이 허구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정령과, 악마 등의 형태로 변질되었기에 당시에 기기괴괴한 문학들이 더욱 많이 나왔던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출판사의 동 시리즈 <알함브라> 역시 워싱턴 어빙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고나니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 집니다. 오늘같이 차가운 겨울날 이국적인 공포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