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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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 민족문학연구소 기획소설집

 

 

그는 서른 살이었다. 서른이란 상황에 따라 '무려'와도 어울리지만 '겨우'와도 어울릴 수 있는 나이 아닌가. 딱히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살기에는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마땅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죽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물론 그런 일에 적당한 나이가 따로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P.35-

 

1.

 

 사회에서 지우고 싶은게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결국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썩어빠진 정치인,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 못하는 정부, 몇달동안 고생해도 벌기 힘든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 등 생각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뜩 그것들이 사라질 세상이 과연 존속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현실보다 더 지독한것을 요구하는 또다른 제도가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것들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을 접어 두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무척이나 부조리한 것들이 많습니다. 부자인 사람들은 계속해서 부자인채 살아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가난을 되물림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감히 그 세계에 대항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사실 무엇부터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그 본질 적인 문제는 너무 거대한 힘을 가진 것들이고, 나 역시 그러한 세상안에서 달콤한 무언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이름도, 재기발랄한 명칭도 아닌 그저 '잠'이었다. 지름이 0.5밀리미터에 불과한 아주 작은 크기의 알약, 잠. 빨간색과 파란색이 절반으로 나뉘어 물결치듯 합쳐진 모양새의 그것은 태극 문양처럼 저롣 있으면서도 묘하게 부드러워 보였다. 잠이라니, 사람들은 그 이름의 단숨함에 웃었으나 그것이 가져올 효과를 궁금히 여겼다. 혈관 콜레스테롤, 고혈압과 당뇨, 위장 속쓰림, 변비, 두통, 생리통, 하체 부종까지 개선시킨다며 이런저런 수십 가지의 건강 보조 기능까지 갖춰 나온 '잠'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P.190-

2.

 

 한겨례 출판에서 새 책이 나왔습니다. 얼마전 리뷰한 <굿바이 동물원>에서 말했듯이 '한겨례 출판'의 책들은 상당히 사회 비판적입니다. 현대의 많은 문학 작품이 사회의 병폐와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겨례 출판'의 작품들은 단연 진보적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포맷하시겠습니까?>는 민족문학연구소라는 문학단체에서 선정한 8인의 젊은 작가의 작품을 묶은 책인데요. 그 내용이 무척이나 묵직합니다.

 

 젊은이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우리 아버지 세대가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다릅니다. 저희 아버지는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성세대가 상당히 보수적이며 변화를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과, 기성 세대의 작가들 간에도 작품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김미월, 김애란을 비롯한 8인의 젊은 작가들은 사회의 병폐에 대해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 젊은이들이 인식하기에는 너무 많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구요.

 

 개인적으로는 그 주제의식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김애란'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 3년 차,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지녔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늘 조금씩 모자라는 느낌은 채워지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실제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옷차림을 따라하고, 잡지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행동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요.

 

 

 

두려움에 미쳐버린 아이들은 아침마다 한 명을 골라 창밖으로 밀어냈다. 자살한 소녀의 영혼이 자기를 죽이기 전에 먼저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군가 죽어야 아이들은 안도했다. 서로의 눈을 피하다가도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내일은 쟤를 죽이자는 눈짓으로 다른 이를 가리키기 바빴다.

 

-P.246-

3.

 

 모든 젊은 작가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글을 써나가는건 아닙니다. 많은 현대의 작품들이 사랑과, 자기 내면의 고독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젊은이들에게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지만 그보다는 다른것이 주가 된 이야기들 이지요.

 

 그런 세태 속에서 이렇듯 냉철하세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작품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과거 김미월 작가의 <여덟번째 방>이라는 책을 읽으며 참 많이 공감하였던 기억이 작품을 읽으며 다시한번 되살아 났습니다. 세상은 노력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겁니다. 그들의 손에서 나온 의미있는 글들이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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