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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게스트하우스
가쿠타 미쓰요 지음, 맹보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도쿄 게스트 하우스 / 가쿠타 미츠요
그건 그렇더라도 쿠레바야시 씨한테 쿠레바야시 씨의 생활이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여행 중에 만났고 여행 중이라고 하면 누구나 일상과 격리된 곳에서 우두커니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여햇에서 돌아와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보내고 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거실에서 안경을 쓰고 성인비디오를 보고 있는 여자는 내가 알고 있던 쿠레바야시 씨가 아닌 것처럼 생각됐다.
-P.49-
1.
여행을 하다보면 숙소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하게 됩니다. 편안하고 아늑한 미니호텔이냐, 불편하고 시끄럽지만 많은 정보를 얻을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냐 베낭여행족에게 숙소에 대한 보기는 보통 이 두가지로 압축됩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묶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머니가 가벼운 베낭여행자들 입니다. 여행할 때 친구와 함께라면 부담없이 숙소를 잡겠지만, 혼자 여행을 할 때 호텔은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외롭기도 하구요. 반면 게스트 하우스는 베낭여행자들로 시끌벅적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히 술도 들어가고 한국에서는 하지 못할 비밀스러운 고민들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사실 <도쿄 게스트 하우스>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책이였습니다.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서인지 '게스트 하우스'라는 단어에 먼저 손이 가더군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비일상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기분은 언제나 극복하기 어려우니까요. 아마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던 젊은이들도 대부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태국의 북쪽에 위치한 첸마이라도 좋고 아니면 인도에서 가까운 네팔의 포카라라도 좋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향하는 중계지점에 위치하고 이동에 지친 여행자가 잠시나마 오랫동안 체류하는, 피난처 같은 게스트하우스는 어디에도 있다.
그런 여관은 틀림없이 그 특유의 지친 모습을 하고있다. 여행자는 현실감이라곤 거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헐렁해빠진 차림새를 하고 너저분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고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아무 계획도 없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유유히 누워있다.
-P.69-
2.
책의 주인공 아키오는 반 년 동안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대책없는 그에겐 머물곳도, 돈도 없지요. 설상가상 애인에게는 새로운 남자가 생겼습니다. 결국 그는 여행중에 알게된 쿠레바야시에게 전화를 걸고, 그녀의 낡은 집에서 하룻밤 300엔의 저렴한 가격에 머물게 됩니다. 쿠레바야시의 집은 과거 할머니가 하숙을 목적으로 지은 집이라 방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전히 여행의 비일상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청춘들이 머물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여전히 새로운 모습 그대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섹스를 하고, 식료품을 도둑질 합니다. 하지만 아키오는 그들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아키오에게 다정합니다. 아키오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없이 혼자 지내게 될 일상이 두렵습니다. 지긋지긋하고, 뻔하디 뻔한 일상이 말이죠.
하지만 이 완벽할 것 같던 세상도 '여행의 제왕'이라는 남자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망가집니다. 여행에 배테랑인척 하는 중년의 남자는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 독불 장군이지요. '제왕'의 등장으로 아키오는 '게스트 하우스'역시 중계지점에 불과한 결국 떠나야 하는 곳이라는걸 깨닫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인 쿠레바야시는 이를 당연스럽게 인식하며 자유롭게 베낭을 쌉니다. 아키오는 그 순간 무언가 변하지 않는 진실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동산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는 주저하였다. 내게 있어 불쾌한 인간관계가 소용돌이치는 그 집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기분은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혼자서 방을 빌린다면 어떤 생활이 될까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혼자 일어나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정식을 먹고 혼자서 귀가해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든다. 그런 독거노인 같은 생활을 상상하니 부동산의 문을 여는 일은 아무래도 할 수 없었다. 으시으시한 코뮌놀이라고 마리코는 말했지만 나는 역시 여행의 여운이 남은 그 집에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들이나, 매일 밤 개에게 먹이를 주는 무뚝뚝한 남자나, 성인비디오의 광고 카피를 쓰는 여자와 같이 있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P.127-
3.
현실의 세상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아키오가 없는 세상속에서도 일상은 나름대로의 형태로 돌아가지요. 그 속에서 여행자들은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찾고 싶은걸지도 모릅니다. 이 반복되는 현실속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 나는 이런 경험을 하고 왔어 라는걸 자랑하고 싶은거지요. 하지만 세상의 이목은 그렇게 그들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수 많은 여행자들이 비슷한 여행을 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비일상을 경험하다 옵니다. 결국 비일상이라 칭해지는 것들도 하나의 일상처럼 느껴지는거지요.
여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행에서 얻은 순도 100%의 무언가는 본인 스스로 인식하고 성장해야 하는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알리려 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겁니다. 아키오는 마지막 이런 진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이 아닌 본인 스스로 느끼는것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을요. 마지막 조금 애매한 마무리는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기가 잘맞아 더욱 와닿았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치부를 들킨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도 들지만, 의외로 즐거웠습니다. 나는 현실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걸까요. 순도 100%의 무언가를 과연 느껴본적 있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