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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죄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평점 :

아버지들의 죄 / 로렌스 블록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할까? 뉴욕에서는 하루에 네다섯 번씩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작년 여름, 지독히도 더웠던 한 주에는 무려 쉰세 명이 살해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 친지, 연인 들을 죽인다. 롱아일랜드에 사는 한 남자는 자식들에게 가라데 시범을 보여 준다고 하다가 두 살배기 딸을 때려 죽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P.12-
1.
요즘 나오는 탐정 시리즈를 보면 대부분 벽돌 두께와 견주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요즘 대세인 '해리 홀레' 시리즈 <레오파드>는 800페이지에 육박하고, '데이브 거니' 시리즈 <악녀를 위한 밤>은 이것보다 조금 적은 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들고다니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두께지요. 가방속에 두꺼운 전공책만으로도 벅찬데 책이 왜이리 두껍게 나오는거냐 한탄을 하고 있을때, 제 눈에 들어온 새로운 탐정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사실 <800만가지 죽는 방법>, <무덤으로 향하다>로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시리즈 입니다. 스릴러쪽에 문외한인 저는 <아버지들의 죄>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됐지만 말이죠. <아버지들의 죄>는 200페이지 남짓한 얇은 분량입니다.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상 짧은 이야기는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책 무척이나 탄탄하고 독특합니다.

어제 신문이 나온 후로 또 몇 명의 시민이 서로 죽고 죽였다. 비번인 순찰 경관 두 명이 우드사이드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몇잔 걸치다가 업무용으로 지급받은 권총으로 서로 총질을 했다.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위중한 상태였다. 아동학대 혐의로 각각 90일 동안 형기를 마치고 나온 남자와 여자가 3년 반 동안 그 아이를 키우고 있던 양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승소해 다시 그 아이의 양육권을 찾았다. 발가벗은 10대 소년의 몸퉁이 동부 5번가에 있는 건물 지붕에서 발견됐다. 누군가 그 소년의 가슴에 X자를 새겨 놨는데 아마도 그 소년의 팔과 다리와 머리를 제거한 사람이 한 짓일 터였다.
-P.126-
2.
짧고 강렬한 인상은 아마 주인공인 '매튜 스커더'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일반적인 형사물의 주인공처럼 '선'을 상징하지 않습니다. 뇌물을 찔러주고 받을 정도로 잇속을 챙기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협박도 서슴치않는 조금은 악랄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론 교회와 성당에 헌금을 내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모습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데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탐정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는 모든것이 끝난것 같은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웬디라는 젊은 여성이 면도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임이 명백한 용의자 리처드는 수감된 뒤 곧 목을 매 자살해 버립니다. 너무나 단순한 이 사건을 경찰은 마무리를 짓지만 그녀의 양아버지는 범인이 아닌 그녀의 삶을 조사해달라고 전직형사 '매튜 스커더'에게 부탁합니다.
매튜가 웬디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대학 졸업을 몇달 앞둔 그녀가 학교를 돌연 그만둔 이유와,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사람들. 이야기는 그녀를 죽인 리처드의 평가가 더해지며 더욱 어려워 집니다. 그리고 하나둘 밝혀지는 진실은 무척이나 참혹합니다.

어쩜 이건 선악과를 가지고 사고를 친 이브의 잘못일 수도 있었다. 인류에게 선가 악을 알려준 위험한 선악과. 옳은 선택보다는 옳지 못한 선택을 더 자주 하게 하는 능력을 준 선악과.
-P.195-
3.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알수 없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보지만 그 과거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했습니다. 각자의 사정은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통렬한 한편, 무척이나 잔인하게 다가왔습니다.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며 비극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매튜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였습니다. 지켜주던가, 혹은 죽이던가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택일까요? 더 좋은 선택의 방법은 과연 없었을까요. 짧지만 무척이나 강렬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