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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여행 - 사진가 14인의 매혹의 세계여행
정진국 지음 / 포토넷 / 2012년 9월
평점 :

사진가의 여행 / 정진국
사진가는 아무나 가기 어려운 곳을 찾아다녔다. 거의 갈 수 없는 곳까지 탐했다. 누구보다 한 발 먼저 찾아가 그 이미지를 전하려 했다. 연필과 노트 대신 카메라로 한 세상을 담으려는 의욕에 부풀었다. 그렇게 찍어온 사진은 낯설고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만 준 것은 아니다. 말로만 듣던 것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믿음직해 보이는 사진에서 사람들은 깊은 인상과 충격을 받았다.
-P.6-
1.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준비하는 물건은 아마 '카메라'일 겁니다. 여행길에서 느끼는 순간의 감정들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지만, 사람의 머리로 그 모든 기억을 담아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흐름속에서 아름다웠던 추억은 단편적인 조각으로 자리할 수 밖에 없거든요.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자신들의 순간을, 그리고 내가 보고 느낀 이 시간을을 오랜시간 기억하고 싶어서요. 적어도 저에게 사진은 그런 소중한 추억 제조기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사진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겁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혹은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뽐내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들로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시대. 몇몇 사람들은 사진의 매력을 찾아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의 사진 장비를 들고 그들이 떠난 여행은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담아낸 사진은 어떤 모습일까요?

리는 그토록 힘겨운 행군의 막바지에 진이 빠질 만도 했을 텐데,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부쩍 성숙했다. 성모의 눈길처럼 온화하게 폐허와 인간을 주시했다. 재미와 환상을 쫓아, 바람난 유부녀로서 치맛자락과 스카프를 펄럭이며 들떠 있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난의 행군 끝에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포착했다. 강렬한 윤곽만 두드러지고 세부는 명암대비 속에 파묻혀 생략된다. 하지만 역광이 그 모든 것을 밝힌다.
-P.158-
2.
미술평론가 정진국의 <사진가의 여행>은 아마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을 겁니다. 여행과, 사진이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두 매개체를 통해 진행되는 사진가들의 이야기는 사진에 대해 잘 몰라도 재미있습니다. 책은 단순히 사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루한 서적들과는 다릅니다. 사진가의 여행 속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와 그들이 느낀 감정을 관련 문헌을 통해 검증된 사실을 독자에게 전해줍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은 마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그 자리에 있는것 마냥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책은 총 14명의 사진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한반도까지 그들은 무거운 장비를 둘러메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혹자는 전쟁의 참혹함이 채 가시지 않은 전장으로, 혹자는 문명이 시작된 기원지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여행지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얻어가는 사진과, 그속에 담긴 여러 감정들도 다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을 여행한 사진가 '레몽 드파드동'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와닿았습니다. 아마 제가 얼마전 같은 지역을 비슷한 코스로 돌아보고 와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국토와 해변뒤에 숨겨진 전쟁의 허무함과 잔혹함.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담아낸 사진들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였습니다.
각기 다른 성격의 여성사진가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와, '리 밀러'의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였는데요. 전쟁의 참상을 담아낸 두 사람의 작품은 닮은듯 다릅니다.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의 사진이 남성적이고 투박해 보이는 반면 '리 밀러'의 사진은 여성적이고 섬세해 보였습니다. 앞뒤목차로 나누어진 두 사진가의 이야기를 비교해가며 읽는 과정도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레몽은 자타가 공인하는 파파라치의 원조다. 인기인의 꽁무니를 쫓아 다니며 사생활을 캐거나 보상금을 노리고 두더지처럼 잠복하는 '얼치기' 파파라치가 아니다. 세상 사람이 정당하게 알아야 할 권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 권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은폐한 사실을 추적하고 폭로한다. 괜찮은 사진가다.
-P.268-
3.
사진은 항상 발명품의 혜택을 받아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오늘날 한국 대부분의 가정에서 카메라 한대쯤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은 사진을 찍을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셔터만 눌러 풍경을 담기 바쁘다면 그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책에 나와있는 작가들의 사진에는 모두 감정이 담겨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도덕성이라 볼수있는 개인의 신념이 사진속에 녹아들어가 그것을 좋은 사진으로 보이게 만들어 준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진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그러한 사진들의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해 놓치는 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다시 바라본 사진들은 처음 봤던 사진들보다 더 풍성하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의미있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앞으로는 사진을 찍을때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하며 담아내려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