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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ㅣ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악녀를 위한 밤 / 존 버든
도대체 뭐가 문제야? 평범한 삶을 위한 공간은 네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거야? 평범한 사람들과 편안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삶,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겠지. 어짜피 넌 늘 이런 식이었는지도 몰라. 네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항상 부재중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그 이유를 성명할 수 없는 이 산속에서의 고립된 삶이 진실을 드러내주는 거겠지. 어쩌면 넌 본래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윈 생각 할 줄 모르는 인간이 아닐까?
-P.102-
1.
<658 우연히>의 히로인 '데이브 거니'가 새로운 사건으로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악녀를 위한 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부터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까지 스릴러 장르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입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진 않지만 '존 버든'의 작품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짧게 짧게 끝나는 사건의 전환 때문에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의 스릴러물을 읽다보면 챕터가 너무 길어 읽다 지쳐버리는데 <악녀를 위한 밤>의 경우에는 80개의 짧은 챕터로 나누어져 있어 사건의 전환을 이해하기 수월했습니다.
여타 스릴러의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존 버든'이 만들어낸 캐릭터는 무척이나 인간적입니다. 잔혹하게 살해된 여인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도 좋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아내와의 갈등, 아들과의 어색한 감정들을 유감없이 표현해가는것도 그런 일련의 갈등들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처음에 내가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어. 재미있는 시나리오들이 여러 개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어."
-P.245-
2.
은퇴한 형사 데이브 거니는 그녀의 부인과 도심을 벗어난 교외에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다뤄진 맬러리 사건으로 가족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 뒤 상의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하지만 사건을 피해 온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의 친구 하드윅인데요. 그에게 기묘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결혼식 날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된 신부. 용의자인 정원사는 자취를 감춘 상태입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사건이지만 좀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용의자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마치 사라진 듯 보입니다. 가족을 위해 형사 생활을 그만 두겠다 말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 앞에서 거니는 2주간의 시간을 약속합니다. 2주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안에 범인을 잡고 말겠다고 말이죠. 하지만 사건을 파면 팔수록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위험에 빠져듭니다.
언뜻 전혀 연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과정이 아마 스릴러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때 <악녀를 위한 밤>은 전편 <658 우연히>보다 덜 억지 스러우며, 충분히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사실 책은 이렇다 할 반전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여러가지 조각을 하나로 맞춰가는 과정과 완성된 작품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완벽합니다. 두꺼운 책이였지만 마지막장을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지어내. 그래서 진짜 증거를 놓쳐. 그게 문제야. 우리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니까. 사람들은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 우린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 자네 그거알아? 이야기를 믿고 싶은 바로 그 마음이 우리를 파멸시킨다는거."
-P.570-
3.
책을 읽고 난 뒤 재밌다는 느낌뒤에 조금은 두렵다라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악녀'가 되어버린 여성이 무서운 한편 안타까웠고, 결국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성폭행의 굴레가 두려웠습니다. 과연 그녀를 악녀라고 부르는게 맞는걸까요. 한국판의 제목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곰곰히 곱씹어 볼수록 책과는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문 그대로 <눈을 꼭 감아봐>라는 제목도 참 좋았을것 같은데 제목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습니다.
북미의 서늘한 스릴러가 요즘 대세라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릴러의 최고는 '존 버든'이 아닐까 소심하게 손들어 봅니다. 현지에서는 데이브 거니 시리즈 3편 <악마를 잠들게 하라>가 출간되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도 빨리 만나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