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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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 미야베 미유키

 

새빨간 빛은 덧문 틈새로 흘러 들어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온 작업실에 퍼져 모든 것을 빨갛게 물들여 버렸다.

끌을 쥔 팔을 번쩍 치켜들었던 마사키치는 빨간 아침놀에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 비칠거리다가 미닫이문에 몸을 부딪혔다. 끌을 쥔 오른손이 허우적대다가 밑으로 늘어졌다.

 

-P.20-

 

1.

 

 아름다움의 기준은 뭘까요. <미인>이라는 제목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 참된 '美'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시대에 상관없이 '비너스' 신은 아름다움을 상징했습니다. 때문에 '비너스'와 관련된 예술품들을 보면 그 시대의 미의 기준을 알 수 있지요. 고대 비너스상은 오늘날 '추녀'의 기준에 가까웠습니다. 짜리몽딸하고, 펑퍼짐한 몸매는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는 노동력 즉 '다산'의 원천이였기에 과장되게 여성의 몸을 표혔하였지요. 반면 르네상스 시대 보티첼로의 그림을 보면 이 비너스의 모습이 오늘날 '미인'의 기준과 상당히 비슷해 졌음을 알수 있습니다. 조막만한 얼굴과 10등신의 완벽한 비율. 역시 다산의 상징으로 배아래 약간의 피하지방이(?)남아있긴 하지만, 인체 비례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그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가 주는 가치관에 따라 변화합니다. 외면적인 아름다움은 절대적일수 없는 것이죠.

 

2.

 

 미야베 미유키의 <미인>은 작년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뜨끈뜨끈한 신간일때 집어온 책입니다. 신간을 구간으로 만드는데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저이기에 왠만해서 신간 구입은 하지 않는데 이책은 참 탐이 나더더라구요. 먼저 읽은 <괴이>와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너무나 만족스러워 구입을 강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구입후 약 1년만에 책을 펼쳤는데 왜 이제서야 읽었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재밌었습니다. 네이버 평점은 7점대이던데 제가 점수를 후하게 주는걸 감안해도 생각보다 별점이 낮게 책정되어 있는 책인것 같아요.

 

 미미여사 시대물의 특징중 하나는 괴담을 차용하여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는 점입니다. 차용되는 이야기들은 주로 <미미부쿠로>에 실린 이야기들인데요. <미미부쿠로>란 ‘귀로 들은 이야기를 담은 주머니’라는 뜻으로 에도 시대의 신기하고 괴이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말합니다. ‘오래 살아서 사람 말을 배운 고양이’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이 실종되는 ‘가미카쿠시’ 등 일본의 괴담들이 녹아들어간 책은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 안성맞춤입니다.(배경이 벚꽃 흩날리는 계절이니까 봄에 읽어도 좋을듯..)


 

 

"화낼 것 없다. 나도 마사키치가 딸의 혼인을 진심으로 기뻐만 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러워." 로쿠조는 굵은 한숨을 토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에는 온갖 색이 섞이게 마련이니까. 경사스러운 일에 검은 기운이 섞여 있기도 하고, 슬픈 일에 기쁨이 숨어 있을 때도 있어."

 

-P.165-

 

3.

 

 이야기는 혼인을 앞둔 아름다운 처녀 오아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며 시작됩니다. 사건당시 유일한 증인인 아버지는 아침놀이 핏빛으로 하늘을 가득채운 시각 무시무시한 바람과 함께 그녀가 사라졌다는 괴이한 이야기를 하지요. 하지만 얼마뒤 그는 증언을 번벅하며 자신이 딸을 죽였다 말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비슷한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장까지 날아오게 됩니다. 처녀가 사라진 시기는 오아키가 사라진 시기와 비슷합니다. 노을이 불길할 정도로 붉은 날 괴이한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에 신비한 힘을 지닌 소녀 오하쓰는 비실비실하지만 현명한 청년 우쿄노스케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해결해달라는 청탁을 받습니다. 하나 둘 실마리가 잡혀갈수록 사건은 더욱 괴이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이것이 사람의 짓일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무언가의 짓일지 헤깔리기 시작합니다. 얼핏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또 한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 데쓰입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우쿄노스케와의 첫 만남에 그를 골려주고, 오하쓰의 올케에게 몰래 추파를 던지는 등 능글맞지만 미워할수 없는 데쓰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셋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쾌하고 흥미진진해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귀신보다 원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고. 불리한 일, 보고 싶지 않은 일, 듣고 싶지 않은 일을 기이한 이야기 속에 묻어 버린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해 거짓말로 버티지. 인간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

 

-P.464-

 

4.

 

 책의 뒷부분 역자 후기를 보면 '가미카쿠시'라는 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 행방불명을 이야기하는 이 단어는 오늘날처럼 실종의 의미가 아닌 다른 세게로의 이동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요즘이야 누군가 하굣길에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면 당연히 납치를 떠올리겠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실종'이란 한자어 대신 '가미카쿠시'란 말을 더 많이 썼다고 하네요. 인간에게 무슨일을 당했다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의해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5.

 

 책 전반적으로 색채의 이미지가 부척이나 강렬합니다. 특히 짙은 붉은색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지요. 선명한 색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불행을 불러오는 전주곡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 종이한장의 차이에 작가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대비를 보여주고자 한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모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한 여인의 이야기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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