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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전 -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자화상 展 / 천빈
그래서일까? 위대한 걸작 <시녀들>속에 서 이는 벨라스케스는 기사 작위를 받은 고명한 인물로서가 아닌, 그저 궁정의 시녀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의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귀족 못지 않는 신분을 얻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역사는 그를 수많은 명화를 남긴 한 사람의 화가로 기억 할 뿐이다.
-P.114-
1.
서양미술사 수업중 자화상을 그려보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고흐와 램브란트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교수님이 자화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자신의 모습을 실제로 그려보는것이라며 내주신 과제였지요. 쉽게만 생각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였습니다. 계속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잡아낸다는것이 가만히 멈추어 있는 사물을 그릴때와는 다른 기분이였거든요. 삐뚤삐뚤 나 자신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은 졸작이였지만 나름의 뿌듯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요. 예술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생각되는 제가 이렇게 느꼈는데 과연 그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작업을 했을지 그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2.
<자화상 展>은 위와같은 궁금증에 시원한 해답과도 같은 책이였습니다. 파리 루브르와 오르세,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 우피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마드리드 프라도등 세계적인 미술관이 소장하고있는 거장들의 자화상 200여 점의 도판이 한권에 책에 수록되어 있고, 작가들의 주요 작품과 함께, 작가가 태어난 환경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등 쉽게 듣지 못하는 미술사의 정보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자화상은 외모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자기성찰을 위한 그림이다. 미술사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남긴 자화상이 있지만 자기성찰에 바탕을 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P.127-
3.
서양 미술사'에서 자화상으로 대표되는 작가는 크게 고흐와, 램브란트를 들수 있는데요. 사실 말만 들었지 그들이 자화상을 왜그리 많이 그렸는지 뒷 이야기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램브란트의 경우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자기성찰에 바탕을 두고 일생동안 자화상을 그린 화가입니다. 한 때 부와 명예를 누렸던 렘브란트는 규모 없는 생활로 1656년에 파산을 하고 맙니다. 집과 작품,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했고, 자기 그림을 맘대로 팔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던 말년의 십여 년 동안 렘브란트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는데요. 그림속 사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초년의 자화상이 두려움과, 자만심이 공존한 표정이였다면 노년의 자화상은 삶을 이해하고 그 모든것에 수긍하며 웃을수 있는 표정입니다. 이렇듯 한작가의 작품이라도 시기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게 전해지기도 합니다.
4.
미술사에서 빠지지 않는 고흐와 고갱의 이야기 역시 책속에 담겨 있습니다. 고갱이 고흐를 그려준 자화상과 고흐가 그린 본인의 자화상. 화풍이 다른 두명의 거장의 이야기는 종장에 이르러 비극적인 끝을 맞이합니다. 책은 이런 추측 위주의 가쉽거리 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정확한 정보를 얻을수 있어 좋았습니다.

살아생전에 뭉크가 겪었던 정신적 고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머지않아 세상을 등질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실제로 뭉크의 내면은 온통 죽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오직 죽음 밖에 없었다. 그러나 뭉크는 같은 시대에 활동한 다른 화가들에 비한다면 제법 장수한 화가로 꼽힌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그렸지만 그는 아주 긴 세월을 살았다. 사는 것 못지않게 죽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P.302-
5.
한권의 책으로 25명 거장의 인생을 훔쳐볼수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자화상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반영하며 독특한 향기로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있는 자화상. 멀게만 느껴졌던 그림들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올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양 미술사>를 읽고 미술사에 흥미가 생기신 분들이라면 <자화상 展>을 보는 시간 역시 즐겁게 느껴지실 겁니다. 책 한권으로 즐기는 멋진 전시회 <자화상 展>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