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 어느 교도소 목사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
카리나 베리펠트.짐 브라질 지음, 최인하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사심 가득한 리뷰입니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카리나 베리펠트, 짐 브라질/ 다산초당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목사님, 잘하셨어요’라고 박수를 보낼 순 없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391)
나의 관심은 죽음 근처에 머물러 맴을 돈다. 특히 지난겨울부터 죽음과 애도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은 걸 보면 요즘 그 관심이 더 깊어진 것 같다. 이미 죽은 이의 삶, 죽음을 앞둔 삶, 그리고 죽은 이들을 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 우리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뉴스에서 들리는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부터, 가족과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고 결국엔 스스로도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는 사실만 잊고 살 뿐.
그러니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했다. 276명의 죽음을 지켜본 목사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극적으로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교도소에서 마감하는 범상치 않은 죽음으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어떻게 끌어내고 전달할지 궁금했다. 꽤나 자극적인 소재였기에. 죽음의 숫자도 많지만,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책의 초반부에서 짐 브라질 목사는 말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을 때 책이 출간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는 왜 책 출간을 망설이며 이런 말을 했을까?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는 짐 브라질 목사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스웨덴 국적의 기자 카리나는 「죽음과 함께 한 일주일」이란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와 사형을 일주일 남겨둔 사형수와 그의 주변인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짐 브라질 목사를 만난다. 그와 짧은 인터뷰를 하고 헤어진 후 스웨덴에서 생활하던 중 다시 짐 목사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왜 항상 어두운 현실에 관심을 두고 피해자를 찾아다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카리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을 용서하고 그 죽음을 침착하게 지켜본 짐 목사에게 연락하고 그렇게 인터뷰가 이어진다.
카리나 앞에서 짐은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현재 암 투병을 하며 생활하는 일상까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죽음의 문턱을 넘고 목회자의 삶을 결심하게 된 경위부터 첫 번째 아내와 만나고 갈등을 겪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병원 원목실 목사로, 교도소 형목으로, 그리고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시간 동안 많은 죽음의 현장에 있었다.
짐은 강조한다. 자신은 영웅도 아니고 뛰어난 목회자도 아니라는 것을. 실수를 반복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며 살아온 사람임을. 자신으로 인해 가족에게 큰 아픔을 주었음을. 목사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종교적인 신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을. 노년의 백인 남성으로서의 인식도 가지고 있음을 내보였다.
그렇게 짐이 내보여주는 이야기 속에는 짐이 만난 다양한 죽음과 삶들이 있었다. 어린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있었고, 무도한 살인자에 의한 죽임이 있었고, 사형대 위해서의 죽음이 있었다. 그렇게 떠나간 뒤에 남겨진 삶들이 있었다.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의 삶이 있었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식의 삶이 있었고, 피해자의 유족이 있었고, 살인자의 가족이 있었고, 그 과정을 행해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생명이 끝나는 죽음의 순간에 남겨진 이들의 감정에는 새순이 돋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카리나의 삶이 그것이다. 짐과 대화하는 중간중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며 정리하는 카리나였다. 짐도 카리나의 날카로운 지적에 자신의 인식을 교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간을 성관계라고 지적해 주는 것을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대화를 통해 서로 통찰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읽어나가는 경험이 좋았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라는 말은 한 사형수가 짐에게 한 말이었다. 짐은 말한다. "오늘은 살기 좋은 날이기 합니다"라고. 상처와 결핍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잔잔한 울림이 되어줄 수 있는 책,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를 권해 본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살기 좋은 날이면서 죽기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게 제게 일종의 철학이 되었어요. 하루하루는 제가 만들어가는 거예요. 나쁜 일이 있다면 그건 제가 나쁜 날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죽어가고 있는 지금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얼은 자신이 죽는 날을 긍정적인 날로 만들기로 결정했잖아요. 그렇게 그날은 죽기 좋은 날이 되었죠. 저는 그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날을 죽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훌륭하네요.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일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살기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 P223
"사형 집행을 300건 가깝게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생사는 찰나에 갈린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언젠간 죽겠죠. 그때는 제가 사형수들에게 말해줬던 교훈을 마음속에 품고 갈 겁니다. 저는 당신이 이 교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축복입니다. 허비하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좋은 일을 하고, 무엇이든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한 후에는 넘어가세요. 이번 생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말이죠." - P17
사형집행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회복력이 강한 존재인지 알게 됐어요. - P286
지금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공간을 긍정적인 감정들이 채우게 될 거예요. 만약 아빠를 용서한다면 그건 아빠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거죠. 저는 중재 회의에 참여할 때마다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요. 누구든 몸에서 모든 증오와 분노를 배출해 버리면 그 독을 용서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유로워지는 거죠. ( - P297
피해자가 되면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그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자꾸만 그때 느꼈던 고통과 분노, 그 악마 같은 가해자가 생각나죠. 그것들은 늘 그 자리에 있어요. 피해자의 삶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잊으려고 애써도 분노가 남아 있는 한, 다시 과거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되죠. - P310
설령 밖으로 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생존자의 삶은 여전히 그 범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피곤함에 지치고, 번뇌에 지치고, 우울증에 지치고, 자기 연민에 지칩니다. - P312.
전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적극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가장 어두운 구석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마침내 앞으로 나아갈 열쇠를 찾아냅니다.-중략- 우선 용서를 해야 전사가 될 수 있어요. 죄책감과 분노, 용서를 다룰 수 있어야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그게 괜찮았다는 뜻이 아니에요. 더 이상 그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죠. 용서를 하면 이제 그 사람은 당신에게 과거처럼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돼요. -중략-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죠. 용서는 가장 아픈 상처가 있는, 마음속 제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결단만 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용서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더해져야 해요. 시간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예요. - P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