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 인권 최전선의 변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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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창비


성소수자, 이주난민, 디지털성폭력 피해 여성,

빈민, 불안정 노동자, 재난참사 피해자...

유난히 지독한 차별 앞에 놓인 이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오늘 한국사회의 '인권'은 어디까지 왔는가?



10년 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딸을 면회하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섰던 때였다. 공원 입구에는 테이블을 놓고 서명을 부탁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궁금함과 호기심 같은 감정을 지니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긴 건 아니었다. 아마도 내 걸음은 화창한 봄날에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그 눈망울들에 끌렸던 것 같다. 테이블에 가서야 알았다. 그 사람들이 자식을 잃었다는 것을. 죽은 자식의 시신도 물 속에서 건져내지 못했다는 것을. 세간의 시선과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그 부모들 앞에서 나는 방금 전 만지고 온 따뜻한 딸의 체온이 남아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식이 아프다는 이유로 타인의 위로를 받고 있던 나였다. 난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슬픔과 아픔들을 지닌 이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어주는 볼펜을 받아들고 조용히 서명한 후 노란 리본을 받아 가방에 달았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를 읽는 열흘 동안, 10년 전과 같은 마음의 결이 흘러나왔다. 감히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사실과 경험과 감정을 다룬 이야기들에 어찌 깊이 '공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그저 놀랐고, 아팠고, 슬펐다. 먹먹해진 마음이었다가 바싹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가 치밀기도 했다. 화로 붉어진 얼굴이 이내 부끄러움의 낯색으로 바뀌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변호사 단체 '공감'에서, 지난 21년 동안 진행해온 변론들을 추려 한 권 책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에 담았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 꺾기' 고문사건/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 텔리그램 성착취 및 불법촬영 등 디지털성폭력 사건/ 미등록 이주아동 강제퇴거 사건/ 성소수자난민 인정 소송/ 비(非)수술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소송/ 캄보디아 진출 한국 은행들의 빈민 약탈 대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취업 강요 사망 사건/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처분 사건/ 10·29 이태원 참사 등 10가지 주제의 삶의 실태들이.


내가 사는 한국이란 나라에 존재하는 차별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실제보다 간추려진 이야기들이 정돈된 언어로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였기에 솟아오르는 감정을 다스려가며 끝까지 책 속에 담긴 사실들을 직시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바라보고, 사회를 바라보고, 다시 나의 생각을 더듬어가며 며칠을 보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물음들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하는 법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기준들일까. 어떤 이를 범주에 들여놓지 않는 심리는 무엇일까. 법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삶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분명한 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뿐인 듯했다. 흘러가는 물처럼 진실도 이론도 법규도 모두 변한다는 속성은 공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해가는 사회에 맞게 변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이가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같은 일을 나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겪지 않은 삶들에 진실로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난민이 아니기에, 성소수자가 아니기에, 성착취 피해자가 아니기에, 재난참사 피해 유가족이 아니기에. 그건 내가 누워만 있는 아픈 딸을 10년 넘게 돌보고 있음에도, 아직 내 자식을 떠나보낸 경험은 없는 사람인 것과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를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전해져 어떤 이가 이 책을 읽을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엮어 내어 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창비'에 감사드린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사심 가득 담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두려움은 결론에서가 아니라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비롯합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 제공과 절차권을, 또 섬세한 조력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불안의 실재를 파악하고 위협적 시도를 적발하는 것에서 공동체의 역할이 시작됩니다. 사건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사건의 결론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과정마저 엉망진창으로 남지 않게끔 완충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80)


지금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범주를 넓혀가면 인권, 즉 ‘사람’의 권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진정한 포용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혐오와 증오, 차별과 침해가 만연한 혐오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그 중심에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습니다. (112)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이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증명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 상황을 처연히 돌아보게 됩니다. (146)


영화 「너의 이름은.」을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공감과 타인에 대한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상상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제도의 빈 곳을 찾아 소수자들이 자리를 기입하고자 분투합니다. 단 한명이라도 제도 밖의 예외적 존재로 남겨두는 것은 결코 정의定意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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