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중판
한인섭 지음 / 박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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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원래 법학이나 법철학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개최하는 독서경시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법철학에 관련한 책을 읽게 되었다. 법철학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법이 보수적이기 때문이었다. 왜 보수적이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특히 형법은 복지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복지 정책에 관심이 많은 나는 형법에는 관심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형법 또한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일과 굉장히 연관되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공리주의를 얘기한 벤담도 이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로웠고 법에 대해 무엇이 옳을지 이런저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이 유명한 이유는 사형과 고문 폐지를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전부터 많이 접해보았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새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내게는 새로운 질문이었던, 범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 '의도'인가 '결과'인가를 중점적으로 얘기해보려고 한다.


의도와 결과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범죄의 유일 타당한 척도는 사회에 끼친 해악이다. 범죄의 진정한 척도가 범죄자의 의사에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한 개인의 의사는 그의 정신적 기질, 그리고 대상이 그의 감각에 끼친 실제적 인상에 달려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한 사람에 있어서도 그 사상, 감정,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 의사를 범죄의 척도로 삼는 방식 하에서는, 개인별로 별개의 법전을 만들어내야 하며, 각 범죄마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인간은 최선의 의사를 가지고도 사회에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 가장 사악한 의사를 가지고 하는 행위가 사회에 최대의 복지를 가져올 경우도 없지 않다.

 이 책에서 체사레 벡카리아는 범죄의 기준을 의도가 아닌 결과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도덕적 주의주의자이기 때문에 범죄의 기준에도 당연하게 의도가 포함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 한국의 법 집행에서도 그 의도를 감안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벡카리아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이가 행위를 하여 얻은 이득보다 더 큰 정도의 손해를 형벌로써 주는 것만이 사회 공공의 이익에 적합하다고 한다. 그리고 행위자의 의도는 시시각각 변하고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타인의 의도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측정할 수 없는 행위자의 의도보다는 그가 만들어낸 측정 가능한 결과를 기준으로 범죄를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나는 범죄의 기준에 의도를 포함시켜야 하는가, 라는 질문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형벌의 목적, 인간의 능력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다. 결과를 기준으로 범죄를 판단하고 형벌을 내리는 것이 좀더 객관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나는 '밥을 안 준다고 아내를 죽인 남편'보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죽인 아내'가 계획적이었다는 이유로 더 많은 형을 받는 게 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보다는 결과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었다.


행위

유능한 마법사가 나에게 꼭두각시 마법을 걸어 내 손발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한 뒤에 나로 하여금 맞은편 사람의 뺨을 때리도록 만든다고 해 보자. 맞은 사람은 당장 나에게 화를 내고 어쩌면 나를 고소하려 들겠지만, 이 사태의 전모가 규명된다면 마법사의 못된 마법에 걸리는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불운한 사실 이외에 나에게 귀속될 비난이나 법적 책임은 없을 것이다.

고인석, 「인공물이 행위주체가 될 수 있을 조건」, 과학철학 23권 1호 (2020) pp. 1-34

 하지만 벡카리아의 주장에 동의하던 중, 전기가오리를 통해 「인공물이 행위주체가 될 수 있을 조건」이라는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행위'를 규정하고 그 '행위'를 '행위자(agent)'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는 의도이다. 그리고 행위자에게 행위가 귀속됐을 때만 행위자에게 그 책임, 다시 말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내가 의도하지 않게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 책임은 내가 아니라 그 범죄를 저지를 의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져야 한다.

 이 부분을 접하게 되고 나서는 왜 한국의 법이 결과뿐만 아니라 의도 또한 범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결과만으로 범죄를 판단하고 형벌이 결정된다면 진짜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는 크게 억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형벌은 비록 온건하더라도 확실하기만 하면 형면제의 희망이라는 요행수와 결부된 무시무시한 처벌의 공포감보다 훨씬 더 큰 인상을 심어줄 것이 틀림없다.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확실히는 알지 못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벡카리아의 시대에는 종교의 힘이 강해서 불경의 '의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에 처해졌던 경우도 있었던 같다. 그러한 형벌을 없애기 위해 벡카리아는 의도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했던 같다.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은 의도냐 결과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을 만들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규칙인 만큼 그것을 제정하는 있어 깊고 많은 고민이 필요할 하다. 나도 책을 통해 관심이 생겼으니 지금보다 더욱 입법과 사법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살펴볼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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