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대여 페이백] 러브 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 황금가지 / 2024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취향이 아니었던 러브 크래프트
알라딘에서 황금가지 전자책 페이백을 하길래 매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러브 크래프트 전집을 대여했다.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던 이름이라 나의 SF/미스터리/공포 컨텐츠 소비 생활을 위해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기대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러브 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이 많고, 나는 그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봐왔었기 때문일까 새로운 느낌도 아니었다. 나는 텍스트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묘사를 자세하게 해주지 않으면 이미지로 상상하는 게 힘든 편이다. 하지만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은 묘사를 한다기 보다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나 소리 등 독자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품들이 많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상상력이 떨어지는 나는 그냥 다음 내용으로 쓱쓱 넘어가게 됐음. 물론 작품들이 가진 음울한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작가의 능력일 것이고. 하지만 이야기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어떤 소재나 분위기를 제시하는 데 그치는 작품들이 많아 완결성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발터 뫼어스와 러브 크래프트 (두 작가의 작품에 대한 스포 있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 세 개 있다. 「에리히 잔의 선율 (The Music of Erich Zann)」, 「더니치 호러 (The Dunwich Horror)」, 「인스머스의 그림자 (The Shadow Over Innsmouth)」다. 「더니치 호러」는 어느 정도 완결성을 갖춘 이야기로 느껴져 재밌게 읽었고, 「에리히 잔의 선율」과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독일 작가인 발터 뫼어스의 작품들이 떠올라 더욱 재밌게 읽었다.
◇ 발터 뫼어스와 러브 크래프트
○ 발터 뫼어스의 『잃어버린 은띠를 찾아서』에는 네벨하임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네벨하임의 안개는 어느 정도 의식을 가진 생명체인 듯 하며 그 곳의 거주민은 지하 세계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네벨하임에 들어온 외지인들을 지하세계에 제공한다.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읽으면서 네벨하임이 떠오른 이유다. 인스머스의 거주민들도 바다에 사는 생명체와 계약을 맺고 젊은 사람들을 제공하며 그에 따른 이득을 취한다.
○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도 이 네벨하임의 주민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부흐하임에서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연다. 그 음악은 생명체를 일종의 최면상태로 몰고 가고 최면상태에 빠진 주인공 미텐메츠는 필요도 없는 책들을 마구 사댄다. 또한 스마이크(『잃어버린 은띠를 찾아서』의 폴초탄 스마이크 아님)의 계략에 더 쉽게 넘어가게 된다. 「에리히 잔의 선율」도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음악을 듣는 사람이 최면 상태에 빠진다기 보다는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음악을 연주한다는 게 더 맞겠지만 음악과 오컬트적 도취가 연결된다는 지점에서 「에리히 잔의 선율」을 읽으면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러브 크래프트 작가 본인도 「우주에서 온 색채」 다음으로 가장 잘 쓴 작품이 「에리히 잔의 선율」이라고 했다고 한 만큼 작품 자체로도 기이한 분위기가 잘 느껴져 재밌게 읽었다.
○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은 「더니치 호러」 및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에 꾸준히 나오는 가상의 책이다. 발터 뫼어스의 차모니아 세계관 안에는 이와 같은 가상의 책은 없지만 꾸준히 나오는 캐릭터는 있다. 아이데트 족으로 뇌가 일곱 개인 나흐티갈러 박사다. 여기저기 홀연히 등장하여 신비로운 말과 행동을 하는 캐릭터다. 이처럼 세계관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또 러브 크래프트를 읽으면서 발터 뫼어스가 떠올랐다. 발터 뫼어스는 아예 차모니아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고, 러브 크래프트는 작품 자체가 다 연결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지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 발터 뫼어스가 러브 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만 좋아하지 작가 본인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브 크래프트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만큼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이 떠오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오는 Ancient One도 러브 크래프트에서 따온 것일까? 뭔가 차원을 이동하는 문을 지키는 느낌이라는 지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 책에 대한 후기를 안 쓰고 있다가 그냥 써보자 해서 썼는데 생각보다는 길게 썼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이기도 하고 취향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다른 작품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천천히 읽어볼 예정이다. 인종차별적인 내용도 많고, 여성 캐릭터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대에 러브 크래프트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주의하면서 러브 크래프트 자체에 몰입해서 읽기보다는 교양을 쌓고 배움을 얻는다는 느낌으로 좀더 작품을 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