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어쩌면 좋을까 - 삶이 괜찮지 않을 때, 나를 붙잡아준 말들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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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 남편이 두 달 가량 휴가를 가게 될 예정이라 벌써부터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며 마음이 바쁜 날들이다. 젊은 연예인들이 방문해서 인기 관광지가 된 라오스를 검색하다 남편이 발견한 기사 한 토막엔 대기업을 그만두고 청년 두 명이 라오스에서 길거리 노점을 하는 사진과 글이 있었다. 나는 꿈을 좇아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 용기가 부러워 한참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보았다. 여행하듯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은 어떨까? 원하는 것만 찾으면 아무런 고민 없는 행복한 삶이 살아질까?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하루를 보내던 찰나 책[너를 어쩌면 좋을까]와 마주했다. 이 책의 저자는 길 위의 삶을 산 지 17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책은 저자의 경험담을 담은 여행서는 아니다. ‘삶이 괜찮지 않을 때, 나를 붙잡아준 말들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오랜 시간 세상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전하는 위로와 힘이 되어 준 말들이 담겨져 있다.

 

저자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들려 준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상처받고 아픈 사람, 늘 후회하기 바쁜 사람, 사스에 걸려 생과 사를 오고 간 사람, 가족들의 아픔을 맨몸으로 안아야 했던 사람, 지금까지의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떠난 사람, 작은 체구로 인해 결핍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 노인요양원의 이야기 봉사를 하던 사람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갖고 있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을 갈구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또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바로 사람들의 따뜻한 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도 사람이 존재한다. 오랜 시간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내게도 조언이 되고 희망이 되고 고마움으로 남았다. 환자와 마주할 때 두 눈을 마주하면서 환자의 마음까지 치료해 줄 것만 같은 의사는 생과 사를 오가며 치열하게 병과 맞서본 사람이었다. 자신이 병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시간을 되짚어보면서 환자의 마음을 조금 더 어루만지게 된 것 같았다. 그는 사느라 너무 바빠서 사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환자들에게 항상 이야기 한다고 한다. 인생은 언제든 끝날 수 있으니 오늘 소풍을 가고 아이들과 더 놀아주어야 한다고. 낯선 곳에서 몸마저 아파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홀로 껴안아야 했을 때 만난 사람으로 부터의 호의, 따뜻한 말, 행동은 누군가의 하루를 더 간절하게 살게 한다는 것.

 

상처는 치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 상처와 더불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어디로도 숨을 필요가 없다. p.90

사람들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끄집어내어 자꾸만 생각하고 후회하고 아파한다. 사실 나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기억조차 희미해져가야 비로소 잊게 되곤 한다. 저자가 만난 힐러들은 그럴 필요 없이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이 진짜 상처에서 벗어나고 치유되는 해결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간조차도 값진 경험이라는 짧은 위로도 함께 전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오늘을 사는 자신의 삶과 여행자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고민하는 단락이 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상황들과 마주하면서 방황하고 후회하고 두려워했던 시간동안 누군가는 대출이자를 갚고 승진을 하는 삶을 산다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고백하는 부분에서 듣게 된 말이 인상 깊었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하고 경력을 쌓는 것은 토마토를 심는 것과 같다네. 토마토는 튼튼하고 금방 자라서, 심어만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열매를 따먹을 수가 있어. 따먹고 난 자리엔 또 금방 다른 열매가 맺히지. 그래서 토마토를 심은 이들은 배고프지 않아. 하지만 달콤한 열매를 계속 거두려면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야 해. 토마토는 항상 곁에서 지켜야 하는 작물이거든. 시간 맞춰 물을 주고 벌레도 쫓아주어야 하지.

자네들처럼 젊은 날 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건 모과나무를 심는 일이야. 묘목은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그리 크게 자라지 않는다네. 열매가 맺히기는커녕 변변한 그늘도 드리워주지 못해. 그래서 대부분 심고선 잊어버리지. 하지만 자네들이 나이 들고 지친 어느 저녁, 모과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황홀한 향기가 뜰에 가득 퍼져 문득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나무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우릴 지켜줘. 노년에 모과나무 그늘에 쉴 수 있는 축복이 자네들과 함께할 걸세.” p.303

 

노인의 말 한마디는 여행하면서 방랑자로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에 충분한 힘을 주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군가는 모과나무를, 또 다른 이는 토마토 나무를 심어 자신이 주인공인 삶에서 충분한 영역을 만들어갈 것이다.

책은 저자가 만난 인연에 대해, 그들이 나눠 준 삶의 위로와 용기, 희망을 담았다. 여행 중에 느끼는 피로감을 달래 준 이들의 인생이 담겨있었고 괜찮은 척 밝은 척 거짓 웃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남은 날들에 대한 후회가 적어지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역시 말의 힘은 놀랍다. 특히 자신의 상황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말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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