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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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내 힘으로 살아야 했던 20대에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밥벌이의 지겨움' 이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고 제목 한번 기가 막히다 생각했었는데

그때부터 '밥벌이'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라면을 끓이며]는 오래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여진 책이다.

산문집이라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것이 전반적이며 화려한 문장이 아닌 담백한 김훈 작가의

문체가 더 먹먹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글들이 담겨져있다.

 

 

 

책은 라면이라는 저렴하고 배부르며 맛난 보편화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16명의 인명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어느 소방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뉴스에 한 줄 담기지도 못한...), 아들에게 이르는 사내의 한 생애에 대한 당부, 흔적없이 사라진 세월호와 고향에 대한 나름의 생각까지. 이 책은 작가의 일상이 담긴 것이기도 하지만 소박한 우리네 일상이 담긴 것도 같고 보잘 것 없이 스쳐가는 것들에 대한 생각도 담긴 것 같다.

 

제목에 담긴 '라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라면을 먹는 사람들, 라면을 끓이는 방법 등에 대한 글을 보다 보면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먹었던 라면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삶은 쉼 없는 삶이었다. 매일 눈을 뜨면 바다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자 유일한 밥벌이였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조업을 떠나고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렁이면 작은 배를 타고 뭍으로 돌아오셨다.

몇마리 잡지 못한 오징어는 라면과 함께 아버지의 주식이 되었고 우리의 맛있는 간식이 되곤 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와 마주보며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는 몇 가닥 라면의 맛은 정지된 화면처럼 그때 그 맛과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갑자기 든 생각은 그때 그 맛이 지금은 절대 나지 않는 다는 것.

 

 

 

세월호.

어디서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는 데가 없었다. 뉴스로 보았고 들었고 믿었지만 점점 불신했던 사건이었고 재앙이었고 재난이었다.

책에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원인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엇갈린 시선들까지.

무엇이 정답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부디 왜곡되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아들에 대한 작가의 당부가 그랬고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도 그랬다.

현실 속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해 문제점을 꼬집는 글과 마주할 때도 그랬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잊혀지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잊혀지는 현실도 서글픈 것 같고.

작가의 레시피대로 라면 스프를 조금 더 덜어내고 파를 듬뿍 올려 라면을 끓여먹어야겠다.

체증이 내려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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