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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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제목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도 두렵고 가슴 떨렸던 '처음'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스무살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새로 받아들고 부모님 곁을 떠나왔던 첫 객지생활, 고마운 사람을 하늘 나라로 떠나 보냈던 가슴 아팠던 첫 기억, 누군가에게내 마음을 내어줘야 생각했었던 첫 사랑, 명함을 받아들었던 첫 직장, 무섭고 두려웠지만 너무 예뻤던 내 아이를 안던 첫 순간.

잊고 있었구나 싶었다.

거창할 것 없이 소소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렇게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처음'이 주는 가슴 떨림을.

책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은 헤밍웨이, 카프카, 제인 오스틴, 이상 등등 유명한 작가들의 책에 담긴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기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 모두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예술가입니다. 소설과 다른 점은 생활하는 동안 첫 문장을 여러 번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등교, 첫 출근, 첫 연애, 첫 여행... 이 첫 순간에 우리들은 늘 긴장하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배 혹은 선생님,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첫 시작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소설가라면 어떨까요? 사는 곳이며 활동했던 시기, 처해진 상황이 저마다 달랐던 여러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발견한 작고 투명한 앎의 순간들이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이 바로 첫 시작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사실 나는 책을 볼 때, 첫 문장보다 제목을 많이 살피는 습관이 있다. 뭔가 내 상황에 맞는 듯한 제목이면 무조건 집어들고 보고 숨겨진 내 감성을 콕콕 찌르는 듯 하면 살펴본다. 물론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라면 한 번은 쳐다보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첫 문장에 대한 책을 마주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첫 문장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한창훈 작가의 [나는 여기가 좋다] 책.

내가 살아온 바다를 배경으로 한 책이고 제목 또한 와닿았던 책, 내용은 나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지라 참 좋아하는 책이다. 그 책의 첫 문장은 '저쪽에는 좀 남았구나 싶던 붉은 기운이 순간 사라지자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시작한다. 첫 문장에 대한 이해도 약하고 멋대로의 해석도 쉽지 않았던 나는 첫 문장을 의식하지 못한 채 책을 읽었는데 지나고 보니 '섬'을 떠올리게 하는 첫 문장이 주는 느낌이 상당했구나 싶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눈먼 부엉이/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책 속에서 처음 들어 본 작가지만 최고의 중동작가라 손꼽히는 사데크 헤다야트. 그의 첫 문장은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작가의 글들도 자신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에 빗대어 쓰여진 것이고 첫 문장 역시 그렇게 완성 된 것이지만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첫 문장 중에서 이 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 [눈먼 부엉이] 속에는 화가가 있다. 갤러리에 걸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필통에 색칠을 해서 밥벌이로 살아가는 그런 화가. 그런 글을 쓴 작가의 상황도 화가와 비슷했다. 그러던 어느날 작가에게 국가에서 지급되는 장학금을 받고 공학을 배워 엔지니어가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살아온 곳과 다른 유럽의 기후, 예술가의 삶을 살던 그에게는 낯선 공학, 그리고 자살.

그런 일련의 경험들이 책 속의 '화가'를 만들어 냈고 염세적인 소설의 첫 문장을 완성했던 것이다.

책 [내가 사랑한 첫 문장]과 마주하고 나서 책을 읽는 즐거움 하나가 더 늘었다.

책을 마주할 때 제일 먼저 작가의 말, 작가의 글을 보는 습관은 그대로지만 책의 첫 문장을 스치듯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처음'이 작가에게는 새로운 책과 동시에 항상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싶었다.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첫 문장이 어떤 것인지도 잘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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