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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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커다란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했고 누구보다 길게 보냈다.

검은 바다 위에서 고된 일상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밥을 먹고 부족한 잠을 자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지난한 삶.

누구보다 강해보이고 왜소했지만 커다랗게 보이던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 부터는 다른 사람같았다. 마치 커다란 사람들 사이에 비좁게 자리하고 있는 작고 약한 사람... 아버지는 늘 그렇듯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계셨지만 어느덧 아버지의 일상이 안타깝게 와닿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던 듯 싶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책의 제목만 보아도 먹먹해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아버지는 어릴 적 내 기억에서 점점 작아져 가고 있기 때문일까.

책은 여든여덟 살이던 해에 병석에 들어 아흔 두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이 아니라 책의 저자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기록같은 것이다.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담겨 있었다.

고령의 아버지가 있었다. 어느 여름날 갑자기 고열이 시작되고 죽음의 과정에 놓이게 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인데 나는 책과 마주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이었다. '죽음'이란 단어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져서 인지.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기가 어려워서 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인지 왜인지 모르겠다.

살 만큼 살았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저절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죽음이 공포의 대상인 것처럼, 늙은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죽음은 다른일들과 달리, 우리들 각자가 고독하게 홀로 대면해야 하는 맨 처음이자 마지막인 삶의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면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줄 알았다.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될 줄 알았다.

결국,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경험이자 다시 반복되지 않을 단 한 번 뿐인 경험이라는 것을 나는 또 한번 깨닫는다.

책은 고령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처음 병원에 입원하고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서글픈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느낀 이야기가 있고,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기로 결심하면서 겪게 되는 간병제도에 대한 글도 담겨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병'은 정말 무섭다. 환자와 보호자 사이의 갈등, 간병인과 보호자와의 갈등, 의료를 행하는 사람에 대한 갈등, 가족들 사이의 갈등 등등이 일어난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직접적으로 간호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전문 간병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책 속에서 현실은 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병원에 있을 경우에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가 수월하지만 집에서 직접 환자를 돌봐야하는 상황에서는 간병인을 구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도 상당했고 환자를 돌봐야하는 보호자가 받는 정신적은 고통도 환자의 '병' 못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주변의 도움 없이는 소변조차 해결하기 힘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루가 다르게 기억 속에서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저자는 사람의 긴 여로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죽음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직접적인 고통의 현장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웅장한 사상으로도, 어떤 창의적인 관념으로도, 어떤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도 그 슬프고 추한 몰락의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두렵고 아픈 슬픈 기억들을...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아버지는 늘 커다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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