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마주하게 된 <꽃의 나라>는 한창훈 작가의 신간이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된 이후,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신경숙, 한창훈, 김연수 정도가 되는 것 같다.
한창훈 작가의 글은 바다와 섬이 주를 이뤄서 그런지 읽고 있노라면 고향의 모습이 생경하다.
그런 그가, 새로운 소설을 출판사 인터넷 카페에 매일 개제를 했다.
참고 참다가 책으로 출간되면 마주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많이도 늦어버렸다.
각설하고, 책은 이전의 느낌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주제도 그렇고, 배경도 그렇고, 느낌도 그랬다.
영화에서 스쳐 보게 된 광주민주화 항쟁을 소년의 눈으로 그린 <꽃의 나라>는 시대가 낳은 폭력이 배경이 된다.
꿈많은 소년이 섬을 떠나 와 육지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맞는 상경기로 시작해서 약간은 우울한 기운으로 끝을 맺는다.
사춘기의 호기도, 꿈도, 열정도, 모두가 폭력의 알 수 없는 정당화 아래 짓밟힌다.
군화에 짓밟힌 수 많은 사람들의 작은 인권들 처럼.
평범하게 꿈을 꾸던 소년은 아픈 기억을 평생 품에 안은 채, 성장을 할 것이다.
훗날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면서 그랬노라 기억하리라 생각하니 마음 속에 무언가가 자꾸만 무겁게 침전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낯선 사람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 먼 곳으로 가게 되면 한없이 싸돌아다니고 싶다는 충동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집을 떠날 수만 있다면 지뢰밭이라도 갈 수 있다고 날마다 생각했기에 지난밤에 잠을 거의 못 잤을 정도였다. 나는 문서가 불타버린 노비처럼 자꾸 기분이 좋아져서 지그재그 걸어다녔다. 살다보면 좋은 날 있을 거라는 말을 사람들이 간혹 했는데 나의 경우가 그랬다. 몇 시간 만에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책 속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집을 떠나는 것이 주는 행복감에 충만해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가족과 이별해야 한다는 아픈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더 큰 꿈을 꾸고 더 나은 삶과 마주할 수 있다는 작은 기대로 마음을 빼앗겨버렸던 그런 시간이.
주인공처럼 비약적인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적어도 그랬다. 그래서 소년의 마음이 더 깊게 와닿았다.
하지만 광주민주화 항쟁이라는 무거운 장애물이 소년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때 소년이 느껴야 할 좌절감은 어땠을까.
이 도시는 내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있고,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다 꿈꿀 수 있다고 믿었을 소년에게 폭력의 현실은 너무 잔인했다.
단순히 피가 나고 살이 찢기는 고통이 아니라, 사춘기 소년만이 품을 수 있는 꿈을 그렇게 짓밟아버렸으니.
책의 끝은 여전히 암흑이다. 한창훈 작가의 글을 읽고나면 늘 유쾌한 기운에 쌓이곤 했는데 이번 책은 정반대의 느낌이다.
처음의 시작을 보면서 소년이 도시에서 행복의 단꿈에 젖은 모습만을 상상했었는데 다소 아쉬운 마음이 파고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꽃의 나라, 그 곳은 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꿈이 집약된 그런 곳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http://cyimg36.cyworld.com/common/file_down.asp?redirect=%2F360016%2F2011%2F10%2F24%2F23%2F%B7%CE%B0%ED2%5F%2D1%2E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