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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아무런 소리없이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허기를 면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글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들어야만 할까?
과연, 슬픔 속에서 헤어나올 수는 있을런지_
내 앞에 <영란>이 놓여있다.
여름날 풀내를 맡으며 여유롭게 산을 오르내리고 있을 무렵, 사랑하는 내 아이가 죽었다.
그리고 어둠이 모든 것을 가져가버릴 듯한 어느 겨울 날 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장미 향기 가득하던 그 곳에서 '나'만 홀로 잔인하게 붉어져버린 장미를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설 <영란> 속의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냈다.
아무런 소리없이, 흔적없이, 예고없이...
자신 앞에 갑작스레 놓여진 슬픔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남은 건 함께 공유하던 추억과 웃음과 말소리와 남편이 남긴 얼마간의 빚과 검붉게 피어있는 장미 뿐이다.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을 것이다.
동네 슈퍼에서 노인에게 막걸리와 빵을 사와서 삶이 허기질 때, 기억이 솟아나고 눈물이 흐를 때마다 먹곤 했다.
그리고 남편의 출판사에서 밀린 인세를 전하지 못한 작가에게 연락을 한다.
"한상준이 돈을 안 주고 죽어버렸잖아요."라는 말과 함께_
이정섭은 그녀를 만나던 날,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듣고 함께 목포행 버스를 탄다.
그렇게 그녀는 목포라는 도시와 마주한다.
낯선 시간이 주는 두려움도 그녀의 슬픔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목포에서 예고 없는 '이별'대신 예고 없이 '희망'을 만나게 된다.
오래된 영란여관에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수옥이를 만나고, 나를 보면 가슴이 미쳐 터져버릴 것 같다고 수줍게 말하는 완규를, 형이 죽음 앞에서 남기고 간 여덟살배기 그의 조카 수환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사는 억센 여자 인자를 만난다.
목포, 그리고 사람, 그녀에게는 그런 모든 것들이 더이상 체기 같은 마른 울음 때문에 목구멍이 따갑지 않아도 되게하고, 울면서 밥대신 막걸리와 빵을 먹지 않아도 되게 하며, 가끔씩은 옅은 미소도 지을 수 있게한다.
그리고 아픈 이별 앞에서도 주어진 자신의 삶은, 당당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한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영란여관의 '영란'이란 이름이 그녀에게 썩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새롭지도 않고 늘 그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라서 그랬을지도, 그 이름을 갖고 있으면 그녀의 아픈 상처도 조금은 메마를 수 있을거라 믿고만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이별이 두렵다.
낯선 곳에 혼자 놓여지는 것도 싫고, 혼자 밥먹는 것도 싫다.
유쾌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나눌 사람들이 좋고 그립다.
그래서 이별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도 글 속의 나처럼 어느 순간 생의 이별과 마주해야 할 시간들이 분명 있을것이다.
그 이별 앞에는 꼭 '긴 시간'이라는 명제가 붙겠지만 그런 시간을 생각하는 것도 슬프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울었고, 슬퍼했고, 가슴이 아팠고, 그리고 웃었다.
이제 '영란'도 웃었으면 좋겠다.
소리내어 아주 크게,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을 수 있도록 호탕하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