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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작가는 '젊음'을 담은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에게 다가가보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멀어져 가는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주는 마음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어떤 느낌일지, 어떤 마음으로 지나간 청춘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 문득 궁금했다.
'청춘'이라는 말은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한다.
정의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위태로움이 주는 두렵지만 짜릿한 전율, 누군가를 품에 두고 마음에 그리며 행복해하던 찬란한 시간들에 대한 동경_
다시 조우하고 싶었다.
내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다독이며 꿈꾸던 시간에서 멀어져 갔을 때 밀려오던 상실감을 이 소설속에서 벗어던지고만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과거의 시선과는 다르게만 느껴지는 사실, 관점, 이야기, 순간들_
책 속에서 그들은 팔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젊은 날의 청춘 속으로 되돌아간다.
정윤의 기억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명서와 미래, 단이를 만났다.
엄마를 잃은 후 자신의 방 한쪽 벽면에 검은색 도화지를 붙이고 세상의 불빛을 외면코자 했던 윤과 소리없이 눈에 띄지 않게 그녀 곁에서 함께 했던 명서, 쭈글쭈글 화상에 다친 손을 주머니에 넣고서 땅만 바라보며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던 말없던 미래, 거미를 무서워하지만 깊은 밤 두려움을 감수하고 윤과 함께 그녀의 엄마묘소를 찾아 준 단이를_
그리고 크리스토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세상의 그 어떤 신발도 맞지 않을 것만 같던 야윈 발을 가진 윤교수_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된다면,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생각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라고 생각해요.
가장 외롭고 비참한 순간은 함께 한 기억을 떠올릴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향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깔깔 웃어대던 내 동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미래를 바라보던 꿈과 웃음이 많던 또다른 얼굴을...
소설 속에서 단이의 갑작스런 죽음을 마주하면서 소중한 사람의 부재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것도 대신해줄 수 없는 순간과 시간 앞에서 무너져야 했을 윤의 마음이 젊은 날, 예고없이 찾아든 비보에 눈물지었던 내 기억의 파편과 만나면서 아팠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소리내어 울 수 밖에 없었노라 말하고 싶었다.
기억을 함께하고 청춘의 터널을 함께 통과해 온 사람들은 서로의 말이 삶의 일부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서로가 건네는 눈빛은 무수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단이의 부재를 힘들어했던 윤에게 미래의 죽음은 또 어땠을까?
명서는 미래의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조차 기억하기 힘들어 한다.
같은 사람, 시간을 공유하던 그에게 두사람의 부재는 함께 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힘겨운 싸움이었다고...
그래서 자연스레 함께 할 수 없었다고...
서로에게 곧잘 내뱉던 '언젠가...'라는 막연하기만 한 의미의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멀어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때문에 외면해야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슬픔에 빠진 그들의 기억이 마음을 아프게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함께 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헛된 것이 아니라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떠난 사람에게도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기에 너무 슬프지만은 않다고 나는 생각하고만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기억하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던 순간들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시각으로, 생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슬프고 아픈 기억들에 사로잡혀 외면하기 보다는 용기를 내어 수화기를 들 수 있기를, 팔년이 지난 후 명서와 마주한 윤이 내.가.그.쪽.으.로.갈.게. 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