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우리 집을 찾았다. 친정이 멀어 가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나를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했었을 나의 엄마.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서는 갓 지은 따뜻한 밥 냄새가 났다.

며칠 머물다 서둘러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여느 때보다 외롭고 쓸쓸 해 보인 것은 왜일까?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보았다.




<눈으로 하는 작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짧은 글들과 마주하면서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엄마라는 이름의 삶을 살아야했던 여자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내가 첫 등교를 할 때 놓지 않으려는 손을 애써 떼놓으면서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엄마의 손에만 의지했던 작은 아이가 자라 엄마의 말을 외면했을 때, 자식을 바라보던 엄마의 공허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문득 엄마의 뒷모습이 남기던 강한 인상이 기억났다.

유난히도 작고 초라해보이던 모습, 외톨이 같던 여린 모습이.




책 속 지은이가 본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고 낡은 트럭으로 교수가 된 딸을 학교의 후미진 곳까지 바래다 준 후 서둘러 돌아가던 모습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따라올 것 없다는 듯 서둘러 돌아서던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지난날 아버지의 돌아서던 모습을 떠올렸다.

서로의 뒷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본다는 것.

그것이 주는 의미는 ‘이별’이었다. 오래든 짧든 간에.




뱃속에 아가기 자라게 된 후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문득 엄마가 된다는 것이 ‘눈물’과 관련이 있을까 싶었다.

나의 엄마는 내게 부모가 되면 울고 싶을 때가 많아질 거라 했었다.

어린 자식이 아프다고 울 때도 엄마는 울고 싶었고 돈에 공부, 친구, 사랑에 힘들어 할 때도 엄마는 자식의 뒤에서 몰래 울고 계셨을 것이다.

아낌없이 다 주고 난 후에도 자식을 위해 흘릴 눈물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자신을 외면하는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게 자꾸만 줄어든다.

부모를 위한 정갈한 옷과 편안한 신발도, 해줄 수 있는 이야기도...




온 천지에 하얀 꽃잎이 흩날리던 봄 날 눈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하고 떠난 저자의 아버지를, 홀로 남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영원한 이별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해야 했다.

아이가 항상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벗어나 버리는 것처럼 부모와의 이별은 오랜 시간을 넘어선 순간이라고.

아이가 부모에게 건네는 이별의 암시와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 속의 이별 앞에서 나는 슬펐다. 부모든 자식의 입장이든 이별은 언제나 두렵고 아픈 경험으로 남는다.

문득 삶은 지속적인 관계 맺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 부모의 자식이 된다는 것은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처음 책과 마주했을 때는 단순한 수필, 에세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저자의 작은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 마음을 적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