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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 보면 무언의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런 생각들을 달리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1인칭의 관점으로 책을 마주하다보면 울고 웃는 기복의 반복이 심해지게 되는 것만 같다. 묵묵하게 3인칭의 관점에서 관망하다보면 나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어젯밤>은 1인칭도, 3인칭도 될 수 없었다.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 속 문장들이 너무 정직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을 자아 내는 문장들이 이렇게 도발적일 수 있을까?
사람을 대할 때나 어떤 사물을 대할 때만 편견이 나타나는 줄 알았는데 글 또한 다르지 않았다. 딱딱하고 건조해 보이는 문장은 그다지 매력이 없을거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제임스 설터의 글은 지독하게 관능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듯 했다.
나는 <어젯밤>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글을 접하게 됐다.
이름이 생소했지만 동료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작가라고 하니 묘한 끌림이 있었던 듯 싶다.
책 속 10편의 이야기는 당황 스럽고 약간은 불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얄팍한 동정이나 공감이 더해지기도 했다.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함께 살지만 때로는 완벽하게 차단되는 듯한 관계를 담은 것 같은 이야기<혜성>.
시간을 담은 경험이나 책,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것만 같지만 결국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은 <포기>.
젊고 생기넘치는 여인의 마음과 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갖지 못한 사랑, 욕망, 그리고 배신을 담은 <귀고리>.
병든 아내와의 마지막 만찬 후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다른 여자와 함께 밤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어젯밤>.
그 집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삶을 꼭 닮은 장황한 소설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 어느 날 아침 돌연 끝나버리는.
여러 이야기 중 책 속 문장이 전해주는 느낌이 가장 두렵게 다가왔던 것은 <어젯밤>을 읽을 때였다.
병을 얻게 된 아내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그녀를 위해 생을 마감하게끔 도와주는 남편. 이야기 초반의 그는 세상 어떤 남편보다도 자상하고 아내만을 위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남성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던 밤, 다른 여자와의 밀애를 즐긴다.
아내가 잠들어 있는 아래층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그녀와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핏기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 놀란다.
삶에 대한 끈을 놓고자 했지만 놓지 못해 비틀거리는 아내와 그녀의 눈에 비쳐진 남편과 또 다른 여인의 헐벗은 모습.
여느 이야기보다 충격적인 결말이었고 인간에 대한 배신과 욕망에 대해 진지해지는 순간이었던 듯 싶다.
<어젯밤>은 책 속 이야기 중 하나의 제목 뿐만 아니라 책 전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대변하는 것만 같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의 연속적인 의미인 것 같기도 하고.
새삼 인간의 욕망과 서로에 대한 믿음, 배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듯 싶다. 짧지만 강렬하고 강하지만 웬지 아련한 메시지가 전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