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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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색은 회색이었다.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색, 나는 그 색깔은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무뚝뚝하고 애교스런 말에 어색했던 나는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회색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게 된 것은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머리와 마음을 지배하게 됐을 때, 나는 분홍색의 매력을 실감했다.
검정색으로 자리하던 내 다이어리에는 핑크빛이 감돌기 시작했고, 어두운 색깔의 옷들은 봄빛처럼 밝아졌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내겐 <분홍주의보>가 발령된 것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게 'OO주의보'라는 말은 일상 같았다. 폭풍 전에는 꼭 바람이 거세게 분다. 그래서 어촌마을에서는 날씨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과 파도의 변화를 숨죽여 바라본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면 태풍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다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높은 파도와 폭풍주의보는 분홍주의보와 닮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발령되는 분홍주의보 역시 눈빛의 흔들림과 심장의 두근거림을 동반하기 때문에.
폭풍 전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핑크빛 봄의 기운이 발령된다. 그래서 나는 ‘분홍주의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분홍주의보>란 책 속엔 단 한 번도 말을 해 본적 없는 소녀가 있다.  

표현하는 것을 모르는 소녀는 사랑에 빠진 후 나처럼 변해간다.
벅차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소리쳐 표현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이별의 두려움에 막연하게 불안해하기도 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 일상 속 작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달콤한 노래는 내게 시작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고, 함께 내딛는 걸음은 내 생각들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아주 높은 계곡을 보고 난 예전에 이렇게 말했어.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나요?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해.
저런 높고 추운 곳에서도 사람들은 손을 꼭 잡고 잠들겠죠?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이라고 느꼈던 소중한 감정의 기억들과 시간을 거슬러 조우했다.
새로워서 낯설었고 벅차서 두려웠던 시간은 책 속 소녀도, 나도 성장시켰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따뜻한 봄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나를 변화시켰던  ‘분홍주의보’의 마술에 빠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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