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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한비야.
나는 그토록 꿈꾸던 대학입학과 함께 그녀를 알게 됐다.
바람의 딸 시리즈 책과 중국견문록이란 책을 통해 자유롭게 사는 영혼(?)에 대한 풋풋한 상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안정된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언어, 환경을 스스로의 노력과 경험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그녀의 삶.
스무 살의 나는 그녀의 삶이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책 속에서 본 그녀의 모습을 좇기에는 현실 속 내 꿈이 무엇인지 찾기에 더 급급했다. 그 후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한비야는 끊임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새로운 삶의 지표를 세웠다. 그리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과 지금 내가 잡고 있는 <그건 사랑이었네> 에세이를 펴냈다.
<그건 사랑이었네>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그녀의 삶을 감탄해본다.
물론 청춘이라는 두 글자로 세상을 호기로 바라보던 그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말이다.
그녀는 지금도 삶을 배워가고 있다. 월드비전이라는 곳에서 긴급구호를 통해 전 세계 가난하고 힘없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돕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 한비야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됐다.
강하고 씩씩하고 말이 조금 빠른, 웃음이 많은 그녀의 일상과 일, 생각, 지인 등을.
그녀 역시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책을 좋아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아프고 약한 사람들을 보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거는 이미 수정 불가능하고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현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아닌가.
그러니 그 시간을 되도록 짭잘하고 알차게 살고 싶은 거다.
마음껏 누리며 즐겁게 살고 싶은 거다.
한비야의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힘(?)을 엿보게 된다. 무거운 것을 힘껏 들어올리고,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미소를 선물하는 힘을 말이다.
이런 그녀의 힘(?)의 근원에는 지나간 과거 대신, 오늘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
지나가버린 미래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현재는 원하는 대로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란 걸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매일 불평하고 도전하기 두려워하고, 불만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미운 사람에 대한 험담만 잔뜩 토로하면서 내 자신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실패의 아픔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오늘을 보았다.
오지마을에서 아픈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미소를 짓게 해주는 그녀의 하루를.
10원이 없어 가축이 먹는 물을 마시고 죽어가는 수 만 명의 아이들의 안타까운 삶까지도.
얇은 천에 한 번만 걸러내어 10원 짜리 정화약만 넣으면 충분히 깨끗해지는 물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되는 사람들의 일상. 물 때문에 각종 병에 노출되어야만 하는 가난하고 고단한 세계 이웃들의 삶을.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원한다면 배우고 싶은 것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고, 입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을 영위할 수 있는 내 삶.
하루에도 수백 번 외쳐대는 불만들과 한숨이 그들의 삶과 조우하면서 초연해졌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길을 택한 후 잔뜩 긴장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지금 당신과 똑같은 처지이고 똑같은 마음이라고.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 둘이 각자의 새로운 문을 힘차게 두드리자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테니 당신도 나를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마침내 각자가 두드리던 문이 활짝 열리면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 두드려주며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자고.
한비야.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글들은 내게 늘 변화와 자극을 끝없이 남긴다.
그런 자극들은 비록 내가 그녀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그녀를 응원하는 이유다.
하루라는 시간을 두 번 사는 것처럼 늘 바쁘고 정신없는 그녀의 삶이 부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어 두렵지만 그녀의 조언처럼 '열심히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고 마음 먹는다.
책을 통해 자극 받고 0.1%의 작은 수치지만 조금씩 변화되는 내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글이 좋다. 각종 유식하고 어렵기만 한 문구가 가득한 글이 아닌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글들이.
조금은 낯설고 힘들어 보이는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가 부럽다.
늘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쉬지 않는 그녀를 만나면 꼭 '짜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녀는 쉼 없이 스스로의 삶과 글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리 없는 ‘화이팅’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