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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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이라는 책을 읽다가 만난 구절에서, 작가는 에밀리 디킨슨과 이웃하여 살았다면 가까운 친구가 되었을 거라고 했다. 시대의 격차나 개인적인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영혼은 몇몇 지점에서 겹쳐지기에 아무런 노력 없이도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친구가 된다는 것.

나의 마음을 내어주고 상대방의 진심에 한발 다가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백 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시가 궁금해졌다.

에밀리 디킨슨의 새로운 책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어 두 손에 받아보았고, 드디어 그녀의 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고통은 날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하는지

살아 있는 것은 힘이다

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충분히 전지전능하다

시 선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간결하다는 것, 딱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은유와 비유를 잔뜩 늘어놓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가 책 속 여기저기에 있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담아두어도 느껴지는 '힘'이 있었다.

'에밀리 디킨슨'

내가 아는 에밀리 디킨슨은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여자 시인 중 한 명이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것과 매일 시를 썼으며 꽃을 곁에 두는 삶을 살았다. 예민한 성격이라 친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을 읽기 전 그녀의 시집을 읽어본 기억은 없지만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보았던 '에밀리 디킨슨'이름을 기억한다.

글을 쓰는 누군가가 경의를 표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노라 말하는 것을 책에서 자주 봐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던 이름을.

아직은 읽어본 적 없지만 지난해에 알게 되어 읽게 된 크리스티앙 보뱅의 새로운 책 <흰옷을 입은 여인>도 에밀리 디킨슨을 향한 작가의 애정과 경의가 담겨있는 책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고 존경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고독도 고통도 진실해서 좋다고 말한 에밀리는 자신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시를 쓰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이 아니라, 내가 중심인 삶을 살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을 선택한 에밀리 디킨슨의 삶.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작아지는 스스로가 미워 보일 때가 많은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고 싶다고 마음먹어본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가닿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 삶의 가운데 책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치는 모든 슬픔을 면밀하게 측정한다

내 슬픔에 비해 그 슬픔이 더 무거운지

더 가벼운지 궁금하다

그 슬픔이 오래 묵은 슬픔인지

아니면 이제 막 시작된 슬픔인지 궁금하다

내 슬픔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말할 수 없다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다

사는 게 아픈 일인지

노력해야만 하는 일인지 궁금하다

둘 중 선택할 수 있다면

죽는 쪽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인내한 사람들 중 몇몇은

마침내 미소를 되찾기도 한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아

곧 꺼질 등불을 닮은 미소를 짓는다

에밀리 디킨슨은 무명 시인의 삶을 살았다.

그녀의 수많은 시들은 그녀가 죽고 나서 세상에 알려졌고 사람들은 무명의 삶을 살아온 그녀의 하루와 일생을 멋대로 재단하기 시작했다.

영화로, 책으로, 시집으로 대중 앞에 선 그녀의 삶이 어떤 부분이 맞고 틀린 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시를 쓰던 순간만은 오래 내 마음에도 담은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시는 제목이 따로 없고, 숫자나 시의 첫 구절이 제목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독특하긴 하다.

나는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시를 쓴 사람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 편인데 에밀리 디킨슨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책도 읽어보고 조금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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