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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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은 부모 돌봄의 책임이 며느리에서 딸에게로 이전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며느리는 딸이든 여성이 전담한다는 게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께한 추억이나 애정이 없는 시부모를 며느리가 의무적으로 돌봐야 했던 나쁜 관습이 사라져 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2000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은숙 박사의 학위 논문을 보면 2003년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고령자가 희망하는 바람직한 돌봄자 1위는 배우자, 2위는 딸, 3위는 아들이었다. 며느리는 이 순위에 없었다.
한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보 - P216

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 결과 독립생활이 어려운 부모(또는 배우자)를 돌보는 가족 중 큰며느리의 비율이 2011년 12.3%에서 2020년 10.7%로, 작은며느리는 3.8%에서 1.8%로 줄었다. 같은 기간 딸은 10.3%에서 18.8%로 크게 늘었다. 10여 년 전에는 주 수발자가 배우자·며느리·아들·딸 순이었는데, 2020년에는 배우자·딸·아들·며느리 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비혼 딸들
특히 자녀 가운데 비혼인 딸이 있으면 그가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비혼 딸에 대해 "결혼 적령기가 지나면 개호(돌봄) 적령기가 온다"라는 속설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일본에서 독신인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실상을 다룬 르포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의 저자 야마무라 모토키는 이를 "초고령 사회에서 만혼화와 비혼화가 진행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초고령자인 부모의 자녀가 결혼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꾸리지 않았을 경우 부모의 돌봄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강요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진해서 부모 돌봄 - P217

사실 비혼이 원가족의 남아도는 노동력처럼 인식되고, 결혼한 형제자매가 떠난 자리에서 온갖 집안일과 부모 간병을 도맡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유구하다. 리베카 트레이스터Rebecca Traister의 『싱글 레이디스』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목사 조지 버냅은 "부부가 세상에 나가 인생의 쾌락을 즐길 때 독신 여성들은 즐거움과 무지에 빠진 구성원들이 잊어버린 집안일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고, 고통과 질병과 죽음의 침상 곁을 지켜야 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저자가 이 구절 인용 끝에 적어둔 것처럼, 정말 ‘으악!‘이다. - P218

부모와 함께 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부모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점점 커진다는 걸 느낀다. 어머니가 아프지만 상대적으로 건강한 아버지는 돌봄에 무심하다. 이주원은 "나이 들면 서로 돌봐줄 사람이 필 - P221

요하니 결혼하라는 말은 철저히 남성 입장에 선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보면 남편이 있다고 해서 내가 아플 때 돌봐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 돌봄을 분담할 필요성을 가족에게 제기했고, 논의 끝에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 돌봄을 나눠서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1번 보호자로는 비혼인 그가 호명된다. 그는 "자기 가족을 이룬 사람은 그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비혼은 계속 원가족에 묶인 사람 취급을 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했다. - P222

비혼 딸의 부모 돌봄을 연구한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는 논문"에서 "가족 중 누군가는 돌봄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홀가분하게 개인의 선택과 결정으로 돌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비혼 딸" - P225

이라 자타에 의해 비혼 여성이 돌봄 역할을 받아들이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박 돌봄이 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스러운 돌봄의 늪이 된다"라고 진단했다. 그의 연구에서 비혼 여성들은 수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독박 돌봄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돌봄과 병행할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돌봄 제공자의 경제생활은 어려워지고, 그들 자신의 노후는 방치된다.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에서도 저자는 부모 돌봄을 떠맡은 솔로들의 가장 큰 문제로 고립감을 꼽았다. ‘패러사이트 싱글‘, 즉 부모에게 기생충처럼 얹혀살면서 살림을 축낸다는 부정적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것과 부모를 돌보면서 겪는 갈등이 중첩되는데, 여기에 사회생활이 단절되면서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고통까지 더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돌봄 부담으로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고, 한번 그만둔 일에는 좀처럼 복귀하기 어렵다. - P226

돌봄을 정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의 사회화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돌봄의 사적인 영역이 있다. 아무리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가족의 누군가가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남는다. 몸과 정신의 상태 변화를 관찰하고 의사, 간병인과 소통하는 일에서부터 병원을 고르고 옮기고 시설을 알아보는 사무적인 일까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상당한 시간을 쓰고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나는 아무리 미화해도 돌봄은 진이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부모 돌봄은 아이 돌봄과 달리 끝나는 기한을 알 수 없고, 생명의 성장 대신 소멸을 향해 가는 긴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라 심리적으로도 버겁다. 좋고 나쁨으로 양분되지 않는 복잡한 마음을 납덩이처럼 안고 사는 게 일상이 된다. 딸이든 아들이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누가 되었든 그 책임을 한 사람이 혼자 짊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P227

돌봄을 마치 여성의 일인 듯 여기는 통념은 오랜 세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성별 분업화의 결과다. 설령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더 돌봄 친화적이라는 기상천외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여성이 돌봄을 전담해서는 안 된다. 돌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기본 조건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당면해야 하는 일을 특정 성별이 전담하고 다른 성별은 ‘무임승차‘해 온 오래된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연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김현미는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에서 북유럽 등에서 논의되는 1인 ‘일-돌봄 시민worker-carer 모델‘을 소개했다. 이 모델에서는 일 패러다임과 돌봄 패러다임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 - P228

다. 누구나 일하다가 1~3년간 돌봄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 기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절대 엉뚱한 데 배치하거나 해고하지 않는다. 당연히 돌봄은 남자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규정도 강화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생활을 일에 온통 헌납하지 않고,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필요할 때 돌볼 수 있도록 일과 시간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취약하고 서로에게 기대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 P229

선배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태를 존엄이 훼손된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이 생리 현상과 위생에 좌우되는, 그렇게 하찮은 가치인가?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중증환자, 노인, 장애인들이 배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에서는 존엄이 다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두가 중도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그 중도 장애 안에는 불편한 몸뿐만 아니라 불편한 머리와 마음,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에 대한 공포의 대안으로 안락사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그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없는 - P233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생 사상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우생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발병이후 ‘기-승-전-스위스‘를 들먹여 오던 것에 대해 살짝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안락사를 원한다고 거침없이 말해온 내 마음속에는 인지증이나 다른 질병 등으로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린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보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인지능력의 상실은 자아의 상실, 곧 삶을 잃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버지를 보니 그렇지 않았다. 영구적 뇌 손상이 확정되고 가족들도 아버지의 의식을 현실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포기할 무렵, 아버지의 두서없는 말과 행동에 깃든 희미한 질서가 눈에 띄었다. 자기 삶의 역사에 대한 일관된 서술은 잃어버렸을지언정 몸에 밴 습관과 특징들은 그대로였다. 아버지답게 끊임없이 사람들의 밥을 챙겼고, 일방적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병실 밖에 호랑이가 있다고 안절부절못하는 황당한 걱정에도 자식들에 대한 염려가 묻어났다. 내가 좋아했던 유머 감각, 참기 힘들었던 고집불통은 아버지의 고장 난 - P234

뇌가 만들어 낸 기묘한 세계 안에서도 여전했다.
책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 공동 저자 이지은은 오랫동안 치매 돌봄의 현장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발견을 소개하며 "자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어떤 것들은 치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전의 삶의 흔적들을 가진 몸의 사소한 행동들이 사실은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몸은 그저 손상된 뇌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의 인류학자 저넬 테일러Janelle Taylor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겪으며 깨달은 통찰이 실려 있다. 딸을 알아보지 못해도 친근한 방문객으로 맞이하고 체화된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어머니를 대하며 테일러는 "앞뒤가 맞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어지는 어머니와의 대화 속에서 대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아니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제스처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 P235

돌봄의 제스처"라고 말한다.
존엄은 그렇게 이어지는 삶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이전과 같은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졌지만 서로 어긋나는 문답으로라도, 끄덕이는 고갯짓이나 눈빛, 손을 잡고 살짝 힘을 주는 것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아버지의 혼란에 맞추어 반응하고 뜬금없는 ‘아무 말‘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아버지와 함께 웃거나 슬퍼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런 상호작용이 아버지의 현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 P236

그런데 호스피스병동을 미리 알아두려고 검색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에게는 생애 말기에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도 법 제정 이후 6년이 지나도록 호스피스 이용 가능 질환이 이렇게 제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학회에 따르면 그마저도 인프라가 부족해, 대상이 되는 환자 중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22년 6월에는 말기 환자의 의사 조력 자살을 가능하게 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도 의사 조력 자살 또는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하지만, 호스피스에 대한 접근성이 현재와 같은 수준인 상태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도입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호 - P237

스피스의 인프라 부족과 이용 가능한 질병의 제한을 그대로 둔 채 의사 조력 자살을 도입한다면, 죽음의 부익부 빈익빈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접근성이 지금처럼 협소한 상태로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 P238

지은숙 박사는 나이 들어 죽음을 앞둔 솔로인 나를 누가 대리해 줄 것인가의 문제는 "계급 문제"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개인이 이 문제의 대책을 세울 때 경제적·사회적 계급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재산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솔로는 양녀를 들이거나 도와주는 사람을 구해요. 공식적인 양녀의 지위가 있어서, 자원이 많은 솔로는 대부분 양녀를 두고 업적과 재산을 관리하게 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의탁하죠. 한국은 그런 게 활발하지 않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있는 솔로는 어떤 식으로든 대책 마련이 가능해요." - P240

죽음을 앞둔 삶의 마지막 시기에 누가 나를 대리하 - P241

며 뒷정리를 해줄지 하는 문제가 지 박사의 말대로 계급 문제인 건 맞지만, 나는 한국 사회의 완고한 가족 중심적 제도의 문제도 크다고 본다. 앞에서 살펴봤듯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어떤 치료, 입원, 수술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대상으로 거의 늘 가족을 요구한다. 아무리 환자와 친밀하고 환자에게 중요한 사람이어도 그가 가족이 아니면 배제되기 쉽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는 어떤가. 몇 년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위한 필수교육을 받다가 씁쓸해졌던 대목이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연명 의료를 결정할 의사능력이 없을 때 환자를 대신해 의사결정을 하려면 배우자와 1촌 이내의 직계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없으면 2촌 이내의 직계가족, 형제자매 등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만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정해두었다. 같이 교육을 받던 이는 "가족이 없으면 죽기도 어렵구나" 하고 한탄했다.
또 현재의 후견인제도나 신탁은 인정받기 까다롭고, 권리가 제한되어 있거나 자산이 없는 사람에게는 접근 불가능해서 별 효용이 없다. 뒤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1인 가구가 의지할 수 있는 인생 마지막의 대리인 또는 - P242

후견인의 문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입법과 정책적 개입이 절실한 사안이다. - P243

우에노 지즈코는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서 죽는 게 뭐가 나쁘냐면서 고독사 대신 "재택사"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에서 "자기 집에서 살면서 방문 간병, 방문 간호, 방문 의료 3종 세 - P246

트를 추가하면 충분히 혼자 살고 혼자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간병보험(개호보험)은 전담 케어 매니저가 돌봄 플랜을 짜고, 요양보호사·간호사·의사의 가정 방문 서비스를 포함한 통원 서비스를 포괄 제공하고 있어서 이 제도에 기대어 자기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한국에서보다 수월해 보인다. 한국에도 장기요양보험이 있지만 재택 간병에 활용하기에 턱없이 불충분하다. 요양보호사 서비스와 요양용품 대여·구매, 주간보호시설과 요양원 이용이 전부다. 전담 케어 매니저가 없어서 각각의 서비스를 교차해 이용하려면 각자 알아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의사의 가정 방문 서비스도 현재 일부 시범지역을 제외하고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는 집에서 죽으면 의사의 사망 선고를 받을 수 없어서 경찰에 변사 사건 신고를 해야 한다. 어떨 때는 국내의 장기요양보험은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을 시설에 보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보험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재택근무‘처럼 ‘재택사‘라고 부르면 고독사의 불길하고 처연한 기운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가능하면 살던 집에서 죽기를 바라지만, 그렇 - P247

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꼭 나에게 불행한 일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도 어쩌다 혼자 죽는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도 누가 지켜보지 않을 때 혼자 죽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을 때 고립되지 않고 생의 마지막까지 인간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는 "누구는 집에서(시설에서도) 빈틈없는 돌봄을 받으며 임종하고, 다른 누구는 집에(시설에서도) 고립되어 사망한다. 생애 말기 돌봄이 환자와 돌봄 제공자의 ‘삶의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집안에서 여성이 도맡아 온 생애 말기 돌봄은, 이제 주로 여성인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에게 이전되고 여전히 전문성이 필요 없는 허드렛일로 간주된다. 국내의 생애 말기 돌봄 시장은 거의 조선족 중노년 여성 간병인이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돌봄이 이렇게 ‘젠더화, 시장화‘되고, 장기요양제도가 있어도 여전히 미흡한 상황에서 존엄한 돌봄과 인생의 마무리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와 어떤 간병인을 만나는가 하는 운에 좌우된다. 송병기는 이를 각자도생에 빗대어 "각자도사各自圖死"라 불렀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 P248

능력껏 알아서 잘 죽을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비참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는 단지 1인 가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죽음의 풍경이다. - P249

"공간비비가 마을회관 같은 역할을 하면서 가까이에 모여 살고 함께 활동하는 현재의 방식이 중년 때까지는 가능하겠죠. 그런데 우리가 더 나이 들어 공간비비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비혼으로 늙는 것이 어떤 경험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노년에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노인 공동체주택을 떠올렸지요. 가족 같은 개념으로 같이 살면서 병구완해 주는 걸 상상한 게 아니라, 노인이 되어서도 내가 나로서 잘 살 수 - P251

있는 물리적인 공간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뭔가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인 거죠." - P252

그는 거주를 함께하는 공동체, 그것도 노년의 공동체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느슨한 공동체인 비비를 해오면서 알게 된 "견디는 힘"에 대한 신뢰 덕택이라고 했다.

"서로서로 견디는 힘만 있으면 다른 건 헤쳐나갈 수 있어요. 누군가를 견디지 않고 가능한,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관계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런데 좋으니까 견디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좋으니까 그만큼 어떤 부분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거죠. 누군가가 나를 감당해 주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 P257

이혜옥은 "내 인생에 크게 지장이 없다면 거슬리는 것을 봐도 못 본 척 그냥 넘어가 주는 게 나이 들면서 생긴 기술"이라고 거들었다.

"거슬린다고 말해봤자 싸움밖에 안 되잖아요. 남을 어떻게 이겨먹어요. 참는 것과 포기하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나이에 혼자 살아서 뭐 하겠나, 그래도 혼자보다 셋이 나으니 지나가자, 하는 거죠. 저 친구가 나와 다르다는 거를 무심히 보면 되거든요. 그걸 무심히 보면 다툼이 안 일어나요." - P262

"우리가 이제 70이에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계획이에요. 직장 다닐 때 쓰는 보고서 100% 실행하는 거 없잖아요. 마찬가지죠. 이 마당도 처음엔 텃밭이었는데 지금은 잔디밭이 되어 여기서 놀고 있잖아요.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정말로 계획이 없어요. 그냥 뭐 ‘한번 해보자‘ 같은 당장의 희망 사항만 있는 거죠. 여기서 노는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그냥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옛날에 시골 동네 세 할머니가 우리에게 잘해줬는데 우리도 남한테 잘하자, 뭐 그런 작은 기억만 남으면 되는 거죠.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고, 뭐든 닥치면 하고,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뿐이에요." (심재식) - P266

‘싱글리즘 Singlism‘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루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뜻한다.
벨라 드파울루는 결혼한 부부에게 우위를 두고 혼자 사는 사람을 낮추어 보는 싱글리즘이 단지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법률·제도 등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서 일상에서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싱글들도 피해 갈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열거한 구조적 싱글리즘의 리스트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이를테면 결혼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고 그들만 보호하는 모든 법률은 싱글리즘에 해당한다. 결혼한 사람들만 보험, 통신 서비스, 패키지 여행, 멤버십, 대여 서비스, 문화예술시설 등에서 할인을 받고 싱글은 정가를 내야 한다면? 싱글리즘이다.
결혼한 사람만 배우자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터에서 휴가를 쓸 수 있고, 싱글은 가까운 친구나 형제자매를 돌보기 위한 휴가를 쓸 수 없다면? 싱글리즘이다. - P271

병원에서 싱글에게 보호자로서 법적 가족의 동행을 요구한다면? 건강보험이 커플보다 싱글에게 더 비싸다면? 싱글리즘이다.
전·월세를 구할 때 집주인이 결혼한 사람만 선호한다면? 싱글이 살 만한 충분한 주거공간이 없다면? 싱글리즘이다.
대학 강의나 교과서가 결혼이나 가족을 다루면서 싱글은 다루지 않는다면? 학자들이 결혼과 전통적 가족, 낭만적 애정 관계는 연구하면서 싱글의 우정이나 싱글이 선택한 가족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싱글리즘이다.
벨라 드파울루는 "이 모든 구조화된 싱글리즘은 싱글의 삶이 커플의 삶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메시지를 주입한다"라고 지적했다. "싱글은 커플과 같은 정도로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받고 시장에서 대우받을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법률로 보호되는 배우자만큼 중요하지 않기에 돌보고 애도할 시간을 허락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 커플들이 누리는 할인이나 혜택 없이 싱글은 모든 비용을 다 내야 마땅하다는 메시지" 말이다.
오랜 세월 사회구조에 스며들어 관행이 되어버린 구조적 싱글리즘은 한국 사회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이 - P272

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일들이다. 구조적 싱글리즘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사회적 표준이고, 인간의 행복은 이 표준 경로를 통해서만 구현된다는 오래되고 낡은 믿음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는 골조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도 여러 유형의 싱글리즘을 이야기했는데, 가장 많이 거론한 것은 앞에서 다뤘던 주거 문제, 그리고 병원에서의 보호자와 돌봄 문제였다. - P273

1인 가구와 다인 가구의 세율 격차보다 되레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인 가구의 각종 공제 항목이 법적 가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살면서 혈연가족보다 더 긴밀하게 서로를 부양하며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비혼 동거 가구나 생활공동체는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지금은 소득세의 인 - P280

적공제 대상도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에 한정되어 있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도 가입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 법적 가족으로 제한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주택청약에서 부양가족 수 가점을 계산할 때도 같은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등재된 직계존비속만을 대상으로 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 김순남의 책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 국세청이 세금공제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경제적인 상호협조 관계의 범위가 넓어서 실질적 돌봄의 관계망도 포함된다고 한다. 즉, "배우자를 정의하는 데도 제도적 결혼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자녀의 경우에도 생물학적인 자녀, 입양한 자녀, 의붓자녀, 실질적으로 자녀 관계인 대상까지 폭넓게 포함"하며 "실제 삶에서의 다양한 상호의존 관계망이 주거 비용이나 생활비 지출 증빙 등을 통해 제도적 관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81

사실 내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 주로 떠올리는 요소들은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삶의 지향은 어떠한지 같은 조각들이다. 혼자 사는 문제를 나 자신의 정체성에 포함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떤 특질에 대한 자의식이 약한 상태로 살아오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제도가 나를 그 특질로 정의하면, 내가 원치 않아도 그 특질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큰 조각이 되어버리는 듯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점이 그러했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 뒤를 이었다. - P284

현행법에는 유언과 관계없이 유족이 일정한 유산을 상속할 권리를 정해둔 유류분제도가 있다. 부모를 여의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솔로가 함께 살던 친구에게 재산을 주겠다고 유언을 남겨도 형제자매가 권리를 주장하면 유류분제도에 따라 3분의 1을 줘야 한다.
정부는 이 조항이 1인 가구가 늘고 형제자매가 각자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보고, 유류분 조항에서 형제자매를 삭제하는 민법개정안을 2022년 4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 민법개정안에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도 친양자를 입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이 글을 쓰는 2023년 1월 현재 해당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 개정안이 확정되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변화의 필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루어진 셈이다. - P289

박인주의 말마따나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순서를 정해두었는데, 배우자·자녀·부모·형제자매 등 법적 가족에 집중되어 있어서 혈연관계와 법적 관계를 서류로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연고 장례를 지원해 온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등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보건복지부는 2020년 지침을 수정했다. 사실혼 관계, 친구, 지역공동체 등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2022년에는 제삼자가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려 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심의를 거치게 했던 규정도 삭제했다. 이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조카·며느리 같은 친족, 장기간 혹은 지속적으로 동거·부양·돌봄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개선된 방침이 법 개정이 아니라 행정부 지침 변경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 P290

앞서 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오는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해서만 연명의료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을 알게 된 경험을 소개했다. 국내법은 혈족만이 그런 권리를 갖는게 마땅하다고 정해놓았지만, 미국·영국·일본 등의 경우 환자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대리인의 범위를 혈연관계에 놓인 법적 가족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김순남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미국 ‘연명의 - P293

료결정법‘에 대한 연구를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미국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대리인은 법적 혈연가족이 아니어도 친구, 가까운 친척, 존경하는 지인 등 환자가 지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서면 신청으로 대리인 변경도 가능하다. 대리인은 환자의 의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담당 의사와 의료에 관한 사항을 의논할 수 있으며, 검사·시술·치료 등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뉴욕주의 대리인 지정 서식에는 대리인에게 위임하고 싶지 않은 결정의 상세 내용, 결정을 위임하는 기간 또는 요건, 대리인이 결정할 때 따라주기를 원하는 사항을 명시할 수있다고 한다. - P294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위해 일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생활동반자법 제정뿐 아니라 ‘내가 지정한 1인‘이 가족으로 인정되도록 하는 제도적 변화를 촉구해 왔다. 생활동반자와 동성결혼 등 법적으로 관계를 등록하는 제도가 필요한 사람들만큼이나 혼자서 살아가고 있고 계속 그렇게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순남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따르면 ‘내가 지정한 1인‘이란 의료결정권과 연명의료결정권은 물론이고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강제입원 등의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규정된 해외재난 시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 등에서 법적 가족이나 동거인뿐 아니라 ‘내가 지정한 1인‘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 P299

통계청의 「2021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가족이 아닌 친구나 애인과 함께 사는 비非친족 가구원이 2021년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통계청은 일반 가구 가운데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가구를 비친족 가구로 정의하는데, 2016년까지만 해도 26만여 가구에 그쳤던 비친족 가구가 5년 만인 2021년에는 2배 가까이 늘어 47만여 가구가 되었다. 결혼하지 않았고 법적인 가족을 구성하지 않았어도 생계와 돌봄을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사이인 사람들이 이미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제도는 여전히 법적 가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현실에 뒤처져 있다. 병원에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기거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해도 함께 사는 이가 혈연가족이 아니면 무연고자가 되고, 서로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는 남이 된다. 소득세의 인적공제도 법적 가족에게만 적용되고, 주택 공급도 부부와 법적 가족을 상정해 이루어진다.
가족에 대한 현행법 규정을 살펴보면 협소하기 짝이 없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 직계혈족의 배우자, - P302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정의한다.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한다.
두 법 모두 가족을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2세대의 핵가족으로 협소하게 바라보는데, 현실에서 이런 가족은 전체 가구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그 나머지는 현행법의 기준을 엄격히 들이대면 가족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예컨대 위탁 가정에서 위탁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도 민법에 따르면 가족이 아니다. 부양이나 상속처럼 가족 관계의 다른 양상을 정의하는 조문들이 민법 각각의 조항에 다 있어서 사실 이 가족 조항은 없어도 무방하다. 되레 가족을 협소하게 정의해 놓은 이 조항은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가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토대가 된다.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1,400여 개의 한국현행법 조항 중 ‘가족‘을 언급하는 조항 240개가 민법 제779조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 조항을 중심으로 주거·의료·돌봄·연금·상속·재난 시 보호 등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 P303

생활동반자법은 일부 기독교계의 ‘동성혼 합법화‘ 반대 주장에 밀려 법안 발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에이징 솔로를 인터뷰하면서 성적 지향을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밝힌 에이징 솔로도 생활동반자법이 있으면 이용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일부 기독교계의 주장과 달리 이 법이 성 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든 아니든, 성애적 관계에 기반하든 아니든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돌보는 관계라면 생활동반자가 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을 소개한 책 『외롭지 않을 권리』의 저자 황두영은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 해체‘ 운운하면서 반대하는데 생활동반자법은 "보수적인 법"이라고 썼다. "기존의 경직된 가족제도를 떠난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이고 "가족을 이루라고 장려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성애적 관계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생활·돌봄을 함께하는 관계를 이미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해외 사례들이 있다. - P306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현재의 결혼은 전적으로 배타적인 성행위를 한다고 간주하는 합의에 기반한 제도인데, 성행위보다는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돌봄이 가족을 이루는 결합의 요건으로 더합리적인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이 제 - P307

도의 틀 안팎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서로 돌보는 사이라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개념이 가족의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더 타당하지 않은가.
생활동반자처럼 2인 관계뿐만 아니라 다수가 돌봄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경우도 제도적 지원을 받을수 있어야 한다. - P308

"생활동반자법뿐만 아니라 생활공동체 지원법까지 포함해서 새로운 가족 구성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해요. 생활동반자는 결혼과 유사하니까 입법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안 되는 걸 보면, 그보다 확장된 생활공동체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건 더 어려울 것 같기는 해요. 그렇지만 돌봄의 측면에서 본다면 1명이 다른 1명을 오롯이 책임지는 것보다 생활공동체에서 여럿이 함께 책임질 수 있다면 돌봄이 더 가벼워지지 않겠어요? 가족 같은 정도의 결속력과 의무를 가져야만 서로의 보호자가 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가족의 방임도 꽤 많고 법적으로 복잡해서 그렇지 가족이 깨지기도 하잖아요. 그보다는 오히려 개인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제도가 생긴다면 돌봄의 관계가 훨씬 더 유연하고 개인이 짊어지는 짐이나 죄책감의 무게도 덜하지 않을까요?" - P309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중요도는 왜 이렇게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까. 가족의 어깨 위에 놓인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막중할수록 결혼과 출산의 비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협소하게 정의된 가족의 중요도가 커질수록, 가족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꺾이기 마련이다. 원가족의 풍부한 지원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족이 사회보장과 복지의 기본 단위인 한, 이미 부유한 가족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가족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렇게 가족 계급사회가 가속화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질 것이다.
가족이 짊어진 짐을 덜어내고 사회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사회복지학자 김진석은 - P311

책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에서 현재의 ‘국가-가족-개인‘ 복지국가에서 중간의 ‘가족‘을 뺀 ‘국가-개인‘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국가-가족-개인 모델은 가족-개인 사이에 부양과 돌봄이라는 가족 기능을 전제하고, 그 기능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에만 국가가 보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국가-개인 모델은 개인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개입이 가족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에게 직접 작용하는 방식이다.
김진석은 "가족이 있어야만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구현할 기회와 수단을 보장받는다면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개인의 실현이라 볼 수 없다"라고 짚었다. - P312

각자 독특한 에이징 솔로와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나는 종종 ‘홀로이면서 함께Alone Together‘라는 말을 떠올렸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는 모두 자신의 가족을 구성하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혼자 나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삶이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홀로이면서 함께‘인 조건을 만들었다.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만 - P315

들기도 하고, 친구랑 같이 살거나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원가족이나 친밀한 파트너, 때로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내가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연결망을 만들었다. 혼자 나이 들면 비참해지고 외로워진다는 예언은 혼자 사는 사람의 증가를 막으려는 사회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에게서 그런 면모는 보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홀로이면서 함께‘는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인생의 화두다. 온전히 ‘홀로‘도 아니고 늘 ‘함께‘도 아닌, ‘홀로이면서 함께‘하기. 단독자로서의 영역을 지키면서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기. 이는 삶을 꾸리고 관계를 맺을 때 늘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방향키와도 같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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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ㅣ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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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두 시간이면 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봉우리였는데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어처구니없게도 낯선 마을로 떨어진 적도 있다.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대피소였는데 낮 시간을 다 보내고 석양이 지기까지 능선 위를 헤맨 적도 있다. ‘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할 수 없다‘는 결말로 이어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산은 나를 낮췄다.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 - P58

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 P59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산을 달릴까. 사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산 앞에서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싶다. 그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동틀 무렵 태양의 붉은 빛을 받으며 달아오르는 대지 위를 달리던 새벽, 가쁜 숨을 고르며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치고 올라 이윽고 당도한 능선 위를 바람처럼 달리던 아침,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잔뜩 뜨거워진 아스팔트길을 헉헉거리며 걷고 뛰던 정오, 그렇게 맞닥뜨린 서늘한 골짜기로 새어 들어오는 석양 사이를 쏜살같이 내리꽂던 오후.
달과 별이 빛나는 밤의 황홀은 또 어떤가. 세상의 모든 것이 까맣게 지워지고 산속에 오직 어둠과 나만이 존재하는 순간. 그 고요함 속을 달리다가 헤드램프 빛에 반사된 야생동물의 번득이는 눈동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줄행랑친 순간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밤의 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오직 어둠과 나만이 존재하는 데서 느껴지는 정제된 기분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아스라한 야경은 내가 돌아갈 삶을 다시 한번 긍정하게 한다. - P79

경사가 거셀수록, 노면이 험할수록, 고도가 높을수록 심장은 빠른 속도로 뛰고 다리는 추를 단 것처럼 무거워진다. 그에 따라 얼굴은 달아오르고 호 - P82

흡은 거칠어진다. 산을 달릴 때 중요한 건 속도만이 아니다. 시작한 곳에서 끝까지 얼마나 지치지 않고 달렸는지도 중요하다. 당장이라도 이 질주를 멈추고 싶다. 중력을 거슬러 산을 달리는 건 아무래도 힘든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쉽지 않아서 좋았다는 걸. 힘들어도, 쉽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오르고 오르다 보면 산등성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모든 것을 용서할 멋진 풍경도 펼쳐질 것이고,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면서 뿌듯해할 것이고, 그러다 길게 잘 뻗은 내리막이라도 만난다면 다시 모든 걸 잊고 달려볼 거란 걸. 힘들고 지겹고 그만하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한테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걸. - P83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고 말한 앨버트 머메리.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는 - P91

머메리즘이란 등정주의를 가리키는 알피니즘이 아니라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오르는 것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를 뜻한다. 그는 산행의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했다. - P92

정상을 향한 마음만으로는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렇게 절박하게 오른 산에서 내려와야만 우리는 다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경험한 산의 시간을 세상에 전하며 무채색의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또렷한 희망과 용기를 건넬 수 있다.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삶을 말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산행은 ‘From Home To Home (집에서 집으로)‘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늘 산과 함께할 수 있는 삶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 아닐까.
그런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산에 올라가고 내려오며 서로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전 처음 본 사람, 곧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도 마치 서로를 알아보는 것처럼.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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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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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나의 글씨를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내가 이미 오래전에 유나에 대한 분노와 유나에게 받은 상처를 버렸다는 걸 - P30

알았다. 나는 그 시절 유나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유나의 말을 단 한 번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었다. 유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유나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러워질 수가 없었다. 나는 유나가 나를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보니 먼저 다가온 쪽은 언제나 유나였다. 친구가 되자고 했던 것도, 도서관에 가자고 했던 것도, 좋아한다고, 더 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표현한 것도 언제나 유나였다.
유나가 무슨 마음으로 내 비밀을 퍼뜨렸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나가 겉과 속이 달라서, 교활해서,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P31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P32

윤이는 정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꿈에서 윤이를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도, 금덕이도 꿈에서 만났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정민은 이해했다. 의식적으로는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은 마음속에서는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위로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는 것을. - P68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가고 우리 가족이 쫓겨나듯 한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나는 차마 너에게 할 수가 없었어. 핀란드어가 기적적으로 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언어의 장벽은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느껴지고, 내 삶의 뿌리를 영구적으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도 말할 수 없었지. 너에게 그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아. 그 대신 나는 한국에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어.
너는 상기된 얼굴로 그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되는 대로 있지도 않은 친구들을 만들어내서 너에게 말했지. 마치 네가 그 많은 친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깔고 말이야. 그게 너에게 상처가 될 걸 알아서 그렇게 말했어. 20년이 지나서야 너에게 나의 진실을 말한다면, 너는 영원히 - P81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호 너는 북반구부터 남반구까지, 이 세상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통틀어서 유일한 나의 친구였어. 한국에서 내가 얼마나 겉돌았는지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았지.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지호야,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친구야. 너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나도 너와 함께 헬싱키로 가고 싶지만 우리 식구들은 곧 쫓겨나듯 한국으로 가야 할 거고 나는 홀로 이 나라에 남아서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자신이 없어. 이곳은 2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도 내게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를 잃는 것이 아파. 나의 무능력과 약함 때문에 이곳에 홀로 설 수 없는 내가 밉고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마치 한국이 이곳보다 내게 훨씬 더 좋은 곳이고, 너 정도는 대체할 친구들이 많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렸어.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 - P82

가족의 한국행이 정해졌지.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변화를 거부하며 사는 것이 겁이 많고 불안이 많은 나에게는 안전한 선택지였으니까.
지호야, 나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었어.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덜 상처받고, 덜 위험한 길만을 골라서 갔지.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아.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 - P83

한참을 헤맸어, 지호야.
어디선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 소리에 기대어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그곳에 숲의 끝이 있었지.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 틈에서 너의 얼굴을 봤어. 나를 발견해서 안심하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달리 너는 화가 나 보였어. 너는 볼일을 보고 내가 기다리는 자리에 갔지만 그곳에 내가 없었다고 했지. 내가, 너와의 약속을 어기고 먼저 숲을 떠나려 한 거 아니냐고 했어. 그래도 넌 내가 걱정되어 오두막으로 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를 같이 찾아 나서자고 말했다고 했지.
"난 그 자리에 있었어." - P86

넌 고개를 저으며 옅게 웃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 너의 얼굴은 나의 그런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었어. 나는 네가 상처받았다는 걸 알았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너를 기다렸어." 그 말만 되풀이하는 나를 너는 믿어주지 않았어.
나는 너를 끝까지 믿었어. 네가 나를 그 자리에 버려두고 먼저 떠났다고 믿지 않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는 그날의 일에 대한 의문이 싹텄지. 어째서 그때의 나는 네가 나를 버리고 갔으리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네가 나를 바로 의심한 것과는 다르게.
어쩌면 모든 건 숲의 일이었는지도 모르지. 해가 지기 시작한 숲은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우니까 우리는 그저 서로 어긋났던 것뿐일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해. 그날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 P87

그 어두운 곳에 앉아 유진은 자기가 마지막으로 울어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어림해봤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유진의 친구들은 종종 유진을 감정이 없는 인간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남들처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끔은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고, 가끔은 머릿속이 따끔거리기도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마음이란 건 하도 걸어 물집투성이가 된 발바닥 같았다. 예쁜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이 아니라. - P104

해주의 가족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배울 만큼 배운 애가 왜 종교를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그런 곳에 다닐 시간이 있으면 운동을 하든지 책을 읽든지 뭔가 자기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 P106

활동을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해주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믿음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해주는 자기 뜻대로 중요한 결정을 해본 일이 별로 없었다. 부모가 다니라는 학원을 다녔고 읽으라는 책을 읽었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바람대로 교대에 갔다. 앞으로의 일들도 뻔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는 둘 정도를 낳을 것이었다. 그 또한 부모가 세운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내면만큼은 그분들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다는 걸 해주는 믿음을 얻으며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도 내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해주는 조용한 성전에 앉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채반 같은 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인정하게 된 것도.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떠서 담으려고 해도 채반 같은 마음에는 조금의 물도 머무를 수 없었다. 신을 받아들였다는 건・・・・・・ 무려 신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건 채반에 더는 물을 붓지 않고 깊은 물속에 채반을 던지는 일 - P107

같았다. 그건 입을 열어서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해주에게 믿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었다. - P108

코너를 돌자 눈앞에 지하철 출입구가 보였다. 연희는 문득 문동이 자신의 뜻을 끝까지 오해하리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문동이 한국에서 중국인을 혐오하는 교사를 만났다는 기억을 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너의 노력을 돕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고, 사실 너는 그 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학생이었다는 진심을 말하고 싶었다. 왜 - P131

좋은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가 될 수 없는지 연희는 초조한 슬픔을 느꼈다.
"있잖아. 나도 조사 틀려. 은는이랑 이가는 나도 헷갈려서......."
"다 왔네요."
"잠시 커피라도 할래? 저기서?"
"이제 가봐야 해요."
"주소라도 줄래? 책 보내줄게."
"아니에요. 집에 있어요. 오늘 까먹고 안 들고 와서."
"읽었구나."
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동은 연희가 다른 말을 할 새도 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뒤를 돌아 걸어갔다. 연희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문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동의 이름을 부르고, 전화번호라도 묻고 싶었지만 문동에게는 모두 변명조의 제스처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코너를 돌아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동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문동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연희는 누군가를 기다리 - P134

는 사람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 P135

내가 대답하는 동안 서경 언니는 민성이 아주머니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이 무시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야, 내려와.
언니는 내게 소리쳤고 나는 아주머니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인사를 하고 언니를 따라갔다.
그런 일이 그 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언니는 민성 아주머니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왜 그래?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언니에게 묻자 언니가 답했다.
엄마 아빠가 조심하라고 했어.
뭘.
전라도 사람 조심하라고 했다고. 저 아줌마도 전라도 사람이래.
언니는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하고서 화제를 돌렸다. 나는 엄마 아빠와 서경 언니의 부모님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전라도가, 전라도가, 그렇게 시작하는 말들을. 나는 전라도가 우 - P142

리나라의 어느 부분인지도 몰랐고 세상 사람들이 태어난 지역에 의해서 구별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내게는 작은 우리 동네가 내 세계의 전부였기에 어른들의 그런 말들은 기본적인 수준에서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어른들이 조심하라고 하는 사람은 조심하고 봐야 했다. 나는 그다음부터 민성 아주머니를 마주치면 피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보게 되면 얼굴을 보지 않고 작게 묵례만 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나는 작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어른들이 민성이 아주머니를 꺼리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파트에서 그 이후로도 10년을 더 살았다. 민성이 아주머니네가 언제 그곳을 떠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파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나를 보며 애써 웃어주는 민성이 아주머니를 멀뚱히 바라보며 지나갈 때, 나는 힘이 있는 어른들의 세계에 속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까지 했다. - P143

아저씨는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분이었다. 그 사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러 번 사업을 부도낸 아버지에게 돈을 꿔주기도 했고, 열두 살의 내가 빙판길에 미끄러져서 깁스를 하고 입원했을 때 선뜻 병원비를 내주기도 했다. 엄마는 이번 통화에서도 내가 입원했을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에게는 감동이었을 그때가 내게는 지우고 싶은 순간이었다는 걸 엄마는 끝내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상기되어 이야기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입원해 있을 때 서경 언니 가족이 문병을 왔다. 아저씨는 자기가 보약을 가지고 왔다고 보온병을 내밀었고 아주머니는 스테인리스 대접에 보온병에 담긴 음식을 쏟아냈다.
우리 한별이, 이거 먹고 금방 낫자.
아저씨는 재미있는 일이라는 듯이 크게 웃으며 내게 대접을 - P150

건넸다. 그 대접에는 붉은 기름이 둥둥 뜬 고깃국이 담겨 있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아주머니가 그 고깃국에 도시락에 담아온 밥을 말고 숟가락을 내게 건넸다.
개장국이야. 약 된다 생각하고 먹어.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저씨가 너 생각해서 사 오신 거야.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야지.
엄마가 숟가락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내 등을 두드렸다. 꼭 아저씨가 보는 앞에서 먹어야 한다는 무언의 재촉이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개장국을 숟가락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소리 내어 웃던 아저씨,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던 서경 언니와 혹여나 내가 이 일에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그 한 그릇을 다 먹으면서도 울지 않았다.

그때 참 살기 좋지 않았니?
엄마의 질문에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151

점장님, 기억나세요? 처음 제가 당신에게 모나게 대했던 날. 제가 아르바이트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요. 어떤 중년 남자가 저에게 야, 너, 하며 저를 부르고 반말로 주문을 했었죠. 저는 입술을 깨물고 난감하게 서서 그 상황을 견디고 있었어요. 대답 큰 소리로 못 하나,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당신이 제 뒤에서 나타나서 웃는 얼굴로 말했어요.
손님, 제가 주문 받겠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당신은 저를 보고 자리를 피하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저는 시뻘게진 얼굴로 자리를 떠났고 당신은 내내 상냥한 표정으로 남자의 말에 응대했어요. 마감할 시간이 되어서, 당신이 제게 다가와 말했죠. 미나 씨, 아까 당황했죠. 우리 아르바이트생들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고 아들인데. 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인데 손님이 그러면 안 되지. 그런 사람 많지 않고 간혹 있는데 오늘 운이 없었어. 어딜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저 귀한 자식 아닌데요.
저는 퉁명스럽게 당신의 말에 대꾸했어요.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말이 나와버렸어요. 처음부터 저는 당 - P155

신의 그 상냥함이, 저를 향한 친절함이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그냥 제가 견디고 지나가면 될 일을 굳이 와서 도와주는 것도 고맙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절 도와준 일에 대해 생색이라도 내듯이 와서 제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던 거죠. 귀한 자식이니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할 근거가 가정에서 받는 대우에 있다면, 그럼 저는 누구보다도 함부로 대해져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점장님, 저는 그 말이 싫었어요. 귀한 딸, 귀한 아들.

우리는 일을 마치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어요. 언제였는지…… 3호선과 환승 구간이 짧아서 우리가 자주 타곤 하던 3-4번 플랫폼 앞에 그런 공익광고가 붙었잖아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얼굴에 상처가 난 아이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어요.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고요. 그 아이의 얼굴 아래로 ‘지금 맞는 아이가 자라서 폭력 어른이 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쓰여 있었지요. 저는 그 광고를 보면 기분이 가라앉아 당신에게 다른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자고 이야기하 - P156

곤 했어요.
어느 날인가 1-1 쪽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는 저에게 당신이 물었어요. 미나 씨, 피곤해요. 거기로 가면 환승할 때 더 걸어야 하는데. 왜 자꾸 그쪽으로 가자고 해요. 저는 손가락으로 광고를 가리키며 그 광고를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다른 쪽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수긍했고, 그 광고가 없어질 때까지 제가 요구하지 않아도 1-1 쪽으로 걸어갔어요.
우리는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었어요. 하루 종일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일이 끝나고 나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같이 지하철을 타는 날도 많았어요. 그 광고판을 가리키며 보기가 힘들어 더 걷자고 했던 건 무리한 요구였죠. 우리는 그 광고에 대해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사실 어떤 이야기를 나눈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 광고를 만든 사람의 순진한 마음에 대해 저는 생각했어요. 그런 광고로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의 마음요. 그 불성실하고 게으른 아이디어요. 아동학대 가해자들에게 그런 식의 말로 어떤 성찰이나 반성을 불러올 수 있 - P157

으리라고 믿는 안일함을요. 저는 그 광고를 보면서 학대받는 아이들 중 대체 몇 명이나 그 광고를 보았을까 싶어 마음이 내려앉았어요.
학대하는 어른들은 학대의 이유를 아이에게 돌리죠. 너 때문이라고, 네가 이렇게 폭언을 듣고 매 맞는 이유는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해요. 자신이 비열한 인간이어서 아이를 때린다고 말하는 학대자는 없을 테죠. 자기 잘못 때문에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 광고를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일지, 광고 문구를 만들고 게시한 사람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그 광고를 보며 너의 미래는 지옥의 연장일 거라고 장담하는 어떤 목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어요. 너는 어른들에게 학대당하고 있어. 그런 너의 미래야 뻔하지. 넌나중에 그 어른들 같은 사람이 될 거야. 그런 메시지를 공익광고라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상. 가해자들에게 온전한 벌을 내릴 수도, 아이를 보호할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천하에 광고하는 세상. - P158

맞고 자란 애들이 나중에 자기 자식 때린다더라.
그 말은 내가 오래도록 느낀 두려움이었죠.
나는 사는 게 무서웠어요. - P159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계피 사탕 같은 것을 건네는 모습을 떠올려봤어요. 그 무리에 끼기 위해서 틈을 찾으려 노력하는 할머니의 모습을요. 그게 잘되지 않아 낙담하고, 낙담한 채로도 멀어지지 못한 채 그 무리를 곁눈질했을 할머니의 모습을요. 할머니 왜 그래. 왜 그러고 살아.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짜증이 나서 소리치는 저를 할머니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어요.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오늘 마감을 하고, 레스토랑의 셔터를 내리면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쫓겨나듯 서울을 빠져나가야 했던 당신의 사정에 대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을 때,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너무 쉽게 당신 탓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이에요. 나도 그랬어요. 맞아도 웃고, 오히려 나를 때린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걱정해주기도 했었어요. 심지어 그로부터 위로를 받기를 원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저는 입을 열 수 없 - P163

었어요. 저는 제가 겪은 일들을 증언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내 고통은 사람들의 눈에 명백하고 순수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덜 아프고 싶어 몸부림친 일들이 내 고통이 타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증거가 될 테니까. - P164

부모는 꾸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유난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꾸꾸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닭에게 이름을 붙이고 항상 쓰다듬어줬다고, 그런 이유로 이제 닭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대체 어떤 부분이 그렇게 웃긴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를 받느니 꾸꾸에대한 이야기를 비밀에 부치는 편이 나으리라고 판단했다. - P184

현주는 비밀스럽게 작업했지만 남자 친구에게는 자기 작품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주는 미리에게 남자 친구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해준다고 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그림을 많이 봐온 사람이어서 믿을 만하다고 했다. 그 믿을 만한 비평이라는 것이 현주가 지닌 장점을 깎아내리고비틀어 모멸감을 주는 것인지 그때의 미리는 알지 못했다.
미리는 애초에 그 남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주와 만나고 있으면 쉴 새 없이 현주에게 전화를 해서 누구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도 싫었고 미리 앞에서 농담조로 현주를 깎 - P204

아내리듯이 말할 때는 표정 관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농담인 것처럼, 가벼운 이야기인 것처럼 현주의 그림을 보며 말한다고 했다. 이런 그림을 너만 그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 정도 수준의 작품들이야 찾아보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당장에 팔리기야 하겠지. 근데 그 이상이 있어?
현주가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을 때 그는 미소 지으며 자주 이렇게 말했다. 현주 너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
현주는 그게 별일이 아닌 것처럼 미리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는 현주에게 의부증 기질이 있다고, 현주가 자신에게 집착하고 자신을 통제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리는 왜 그가 현주에 대한 거짓 소문을 지어 퍼뜨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주 너는 복잡하고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고, 넌 그저 그런 여자라고, 아니, 그저 그런 여자여야 한다고. 현주의 모든 역사를 지우고, 개성을 지우고, 그녀만의 특별함을 지우려는 말. 그 - P205

는 ‘남자 하나에 목매는 여자‘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현주의 특별함을 가리려 한 것이었다. 그가 퍼트린 가십으로 덧칠된 현주는 더 이상 고유한 한 인간도, 작가도 아니었다. - P206

현주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현주라는 사람이 보였다. 현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으로 그런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미리는 빈 캔버스 앞에 초조하게 앉아 있던 시간을 떠올렸다. 미리는 그 초조함과 막막함을 극복할 수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미리는 그림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기말 작품 준비를 하던 날 중 하루였다. 한참을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하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고 - P209

고가도로에 차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라디에이터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왔고 복도에서 웃으면서 신발을 끌고 걸어가는 남자애들의 소리가 들렸다. 미리는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더는 그 상태를 견딜 수 없었고 억지로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관두기로 마음먹자 오랜 시간 자기 가슴을 단단하게 죄어오던 사슬에서 풀려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미리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학교를 졸업해야 했으므로 그렸고,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므로 그렸다. 심심할 때 드로잉북에 크로키를 하기도 했다. 승무원이 되고 난 다음에도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미리는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일을 소중하게 남겨둘 수 있었다. - P210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미리는 장례식에만 잠시 들렀다 두바이로 돌아왔다. 그 일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말로 자기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미리는 어머니의 죽음을 한동안 현주에게 전하지 않았었다. 두 달쯤 지나서 지나가듯이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자 현주는 미리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떻게 그 시간 동안 자신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별일 아닌 것처럼 그 일을 말할 수 있는지 자기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주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미리가 요양원에 있던 미리의 어머니를 고작 1년에 한 번 방문했던 것도 잔인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래도 너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야. 받은 건 생각하지 않고 나쁜 기억만 골라서 어머니를 판단하는 거, 어른 - P211

스럽지 않은 일이야. 냉정하게 말하는 현주를 보면서 미리는 현주를 공격하고 싶어졌고 현주의 남자 친구에 대해, 현주의 자신감 없는 작업 태도에 대해 빈정거렸다. 미리가 그렇듯이 현주 역시 누구보다도 미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더 번질 수도 있었지만 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P212

미리는 늘 자신의 문제로부터 도망쳤고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자신의 분노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도망쳤고 최대한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 미리는 일에 몰두했다. 동료들은 그녀가 일중독자에 가깝다고 말했는데 그건 일견 사실이었다. 일이 좋기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면 공허함을 느꼈고 불안해졌으니까. 하지만 현주와 그렇게 싸운 이후에는 일에 몰입할 수가 없었고 자주 악몽을 꿨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누가 차가운 칼을 꽂은 것처럼 머리와 눈이 자주 아팠다. 실컷 도망쳤는데 그 끝에 다다라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 P213

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그건 마법의 문장이었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마음속에 서러움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너처럼 유복한 생활을 하는 애는 절대 알 수 없다. 어머니 - P214

에게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미리가 밥을 먹을 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잠에서 깨어날 때 미리를 골똘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빛이 있었다. 어쩌면 다정하게까지 들릴 수 있는 말투로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가 너 같은 애를 좋아하겠어. - P215

아프지 않았을 때의 어머니는 미리에 대한 적의를 세련되게 가공하여 보여줬다. 집요한 괴롭힘이었지만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미리에게 다정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잃어버리고, 의식을 놓아버리자 어머니는 더는 그 감정을 미리에게 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미리에 대한 어머니의 염오는 그토록 순수한 것이었다. 그 모습이 미리의 눈에는 차라리 자유로워 보였다. - P216

대학교 2학년 때, 미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서 현주에게 말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지만 현주에게 마음이 열려서 그랬다.
어떤 엄마가 자기 자식을 싫어하겠니.
현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미리는 말문이 막혀서, 웃으면서 자기가 애초에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듯이 자기 말을 수습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주가 말을 이었다.
네가 어머니 진심을 어떻게 알겠어. 성격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어머니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 수는 있지. 그래도 미리야,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
그래. - P219

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현주처럼 말했고 그 말들의 합창은 미리를 예민한 사람이 되게 했다. 미리는 어머니의 말투, 표정, 몸짓에서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그 당연한 진실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주인의 식탁 밑에서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개처럼 노력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작은 증거라도 찾으면 그 자그마한 것을 잡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라도 그런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고 싶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습관이 되어서 그녀는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에 민감한 어른이 됐다.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려준 건 현주 - P220

였다. 현주와 함께 있을 때면 미리는 안전함을 느꼈다. 현주는 미리에게 미리의 존재 이외의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현주가 미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현주는 미리가 조건 없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기에 미리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불쾌함까지 느끼는 것 같았다.
현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미리는 벽에 부딪힌 기분을 느꼈다. 왜 자신의 마음을 현주가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왜 그토록 현주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도 미리는 한 번씩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고 현주는 그런 미리의 이야기를 어린애의 투정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리는 어느 순간현주로부터 자신의 한 부분을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 최악의 인정 욕구는 자기 아픔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 P221

어머니를 보러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갔던 날, 미리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그린 그림 세 장을 가져갔다. 평소에 어머니는 미리의 그림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미리는 그것이 어머니가 자신을 인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 - P226

도 어머니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미리는 요양보호사에게 그림을 건네고 병실 앞 복도에서 어머니가 자기 그림을 보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침대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그 그림을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찢어 구겨버리고 바닥에 던져서 발로 밟았다. 자신의 모습을 찢고 구기고 발로 밟는 어머니. 그것이 미리가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미리를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어머니의 자유의지였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미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미리는 어머니를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때로는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삶은 선택할 수 없었다. 이런 삶이 자신의 것이었을까. 미리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미리는 자기 의지로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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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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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미혼, 중년은 이혼, 노년은 사별."
많은 경우 사실이라 해도 빈약한 설명이다. 특히 중년이 그렇다고 느꼈다. 40세 이상의 중년 1인 가구 중 결혼을 당위로 여기지 않는 비혼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뭉뚱그려도 되나. 더 께름칙하게 느꼈던 건 이 허술한 공식이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설명을 결혼의 반대편에만 묶어둔다는 것이다. 결혼을 중심에 두고 그것의 대척점인 주변부에 혼자 사는 삶을 놓은 뒤, 결혼 바깥의 삶이 괜찮은가 아닌가를 측정한다. 결혼의 편에 서서 혼자 사는 삶을 바라보며 취약하다고 단정 짓는다. 마치 결혼이 표준이자 정상이고, 비혼은 일탈이자 비정상인 것처럼.
되레 현실은 거꾸로 아닌가. 비율만 놓고 보면 성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혼자 살기는 다수이자 주류가 되었다. 2015년 무렵부터 한국의 주된 가구 형태가 - P8

된 1인 가구는 2021년 기준 716만 6,000가구로 전체의 33.4%에 이르렀다.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29.3%)보다 많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로 흔한 삶의 유형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비정상, 소수, 비주류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내의 1인 가구 담론에서는 중년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인 가구를 다룬 정책과 담론은 주로 청년을 중심에 둔 ‘당당한 싱글‘이거나, 노인을 중심에 둔 ‘돌봄이 필요한 싱글‘ 위주다. 중년 1인 가구가 등장할 때는 이혼 또는 ‘기러기 아빠‘로 혼자가 되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남성의 사례로 다루어지거나,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여겨진다. 아마 1인 가구 중 이미지가 가장 부정적인 세대는 중년이 아닐까 싶다. - P9

중년 1인 가구, 홀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 솔로Aging Solo‘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노인 1인 가구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인 상 - P11

태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생애 전환을 겪게 될 대규모 집단이 등장했다.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초고령 사회에, 솔로의 조건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아무리 요즘 자녀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도 노년에 자립이 어려워지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자녀에게 의존하는데, 자녀가 없는 에이징 솔로가 늘어나면 노년과 생의 막바지 풍경도 크게 바뀔 것이다.
에이징 솔로는 결혼에 대한 주위의 압력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졌고, 혼자인 삶을 오랫동안 꾸려온 사람들이다. 혼자 사는 성인도 경제적 독립, 주거, 친밀한 관계 맺기, 정서적 안정, 노년의 준비 등 모든 사람이 겪는 생애 과제들을 마주한다.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없는 일이다. - P12

중년여성의 어려움으로 ‘빈둥지증후군‘을 이야기하고 잘 늙어가는 방법으로 ‘배우자와의 관계 재정립‘을 말하는 사회에서, 혼자 사는 내가 참조할 만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에이징 솔로의 삶에 ‘없는‘ 것 말고 ‘있는‘ 것, 그들이 경험하는 여정과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방식, 새로이 만들어 가는 관계들이 궁금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취급받는 에이징 솔로의 삶을 가시화하고 싶었다.
款혼자 사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대다수가 1인 가구지만,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비혼의 중년은 에이징 솔로에 포함했다. - P13

그러나 혼자 살기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갖는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한 삶의 방식과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제대로 논의되고 있는가?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관련 담론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당사자가 내어놓는 이야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위기‘이자 공동체가 무너지는 징후처럼 다루어진다. 그런 담론 안에서 자신의 삶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 P15

세대 간 차이는 비혼 담론의 변화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지은숙 박사가 한국 비혼 담론의 흐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비혼 1세대는 "1970년대 이후 출생하여 민주화운동 속에서 비판적 사회의식을 길러왔고, 가부장제와 소유 중심의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공동체적 지향으로 살면서 주로 생활정치와 복지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제를 형성해온 사람들이다.
2015년 이후에는 "미투운동,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등을 거치면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이 등장"했고 그 속에서 "비혼을 남성과 가부장제를 타격하는 정치적 행동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탄생했다. 비혼 2세대가 주도하는 이러한 흐름이 등장하면서 비혼의 대중화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 P59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이기심과 페미니즘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과 가부장 문화에 있다. - P73

비혼·비출산 여성은 자신의 아이만 없을 뿐이지, 사회에 무관심하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다. 되레 사회 참여에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사회봉사단체 등 자발적 결사체에 참여하는 정도를 비교해 보면 남성은 기혼자의 참여가 높고 비혼자는 그렇지 않지만, 여성은 거꾸로 비혼자의 사회 참여가 높고 기혼자의 참여는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꾸리지 않은 남성은 주관적 삶의 질뿐 아니라 공동체와 결속하는 정도도 낮아진다. 그만큼 자신을 희생하고 뒷받침해 주는 여성의 존재가 남성에게 중요하고, 가족이라는 일차적 사회관계가 ‘관계 자원‘으로서 남성에게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여성에게 아내와 엄마 역할이라는 부담은 공동체 참여를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 P76

‘혼자 살면 젊을 때나 좋지 나이 들어 외롭다‘라는 말은 ‘혼자 살면 아플 때 서럽다‘와 함께 ‘혼삶‘의 입구에 - P80

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오래되고 불길한 2대 경고다. 이 경고를 뒤집으면 사람들은 외로울까 두렵고, 아플 때 돌봄 문제가 걱정되어서 가족을 꾸린다는 말도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두 문제를 가족 밖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혼삶‘에 외로움과 아픔을 덧칠한다. - P81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때에 친한 친구들은 다들 결혼해 아이를 키우느라고 만날 수가 없었어요. 고통을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너무 외로웠죠. 그런데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때와 관계를 맺고 싶을 때를 제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어요. 가끔 외롭더라도, 싫은 사람과 같이 있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좋아요. 물론 외로움이 정말 문제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전염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막 너무 즐겁지는 않지만 그냥 혼자 - P82

있는 감정 상태에 사람들이 외로움이라고 딱지를 붙이니까, 이게 외로운 거구나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봐요." - P83

1사회적 고독과 고립, 소외를 해결하고 유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1인 가구의 증가가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도 주목하고 대응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두 현상을 뒤섞어 1인 가구의 증가가 사회적 고립의 주원인인 양호도하는 것은 진단이 잘못됐을뿐더러 데이터로도 입증되지 않는다. 어떤 문제든 부정확한 진단과 과도하게 단순화된 서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은 없었다. - P90

병원이 보호자로 법적 가족을 당연하다는 듯이요구해서 법적 근거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의료법에는 병원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수술 동의서나 입원 동의서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다. 응급 상황에도 항상 법정대리인이나 보호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입원할 때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병원의 관행도 법적 효력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 개선 권고에 따라 연대보증인을 세우는 관행을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이 관행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민이 - P96

간병원들이 많다.
수술할 때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는 관행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는 이미 2007년 대한병원협회에 공문을 보내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가 없다고 환자의 수술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면 의료법의 진료 거부 행위에 해당해 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직계가족인 보호자를 찾고 동의서를 요구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의료사고가 나거나 수술비를 청구할 때 분쟁이 날 것에 대한 병원 측의 우려 때문이다. 사회건강연구소는 2019년 펴낸 연구 보고서 「의료현장에서의 보호자 개념은 다양한 가족을 포함하고 있는가?」에서 "병원의 과도한 ‘보호자 찾기‘는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환자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의료현장의 편의성‘ 중심 사고"라고 짚었다.
이 관행 때문에 1인 가구, 동성 커플 등 소위 ‘정상 가족‘의 틀을 벗어난 사람은 실제 일상을 함께하는 이가 실질적 보호자가 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 보고서는 "이는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 조건이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뜻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P97

걱정은 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돌봄의 문제는 절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팀K‘를 소개하면서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는 싱글에게는 가족을 대신할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없다면 노력해서 만들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먼저 해본 사람들이 "절친한 친구가 많을 필요도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한 말에 은근한 기대를 걸어본다.
그런 돌봄 관계망들은 조한진희의 말마따나 "혈연 관계나 친밀한 관계 등으로 배타적 경계를 나누지 않고도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작은 씨앗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 씨앗들이 여기저기에 뿌려지는 광경을 보고 싶다. - P107

"(...) 어떤 일로 힘들 땐, 가령 상사의 말도 안 되는 지시로 화가 났거나 프로젝트 진행이 굉장히 힘들어졌을 때는 사적으로는 별로 안 친밀하지만 그 상황을 같이 겪고 있는 동료가 그 순간엔 둘도 없이 친한 사이가 되어 공감하면서 신세 한탄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회사에서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며 서로 위로했던 동료 중엔 제가 회사를 그만둔 뒤 멀어지거나 연락이 끊긴 사람이 많죠. 그렇다고 삶의 어떤 국면에서 가진 그 순간의 친밀함이 피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순간의 친밀감을 여러 사람과 이어가면서 살아가는것 도 삶의 한 가지 방식 아닌가요?"

사람마다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전부 다른 것을 두고 남지원은 "친밀감은 식욕과 비슷한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충족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양은 있을지 몰라도 - P119

어떤 종류의 친밀감을 원하는지는 기질과 경험의 차이에 따라 다르고 색깔도, 총량도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클 거고, 결혼해 봤거나 낭만적 사랑에 근거한 친밀한 관계를 맺어본 사람은 그것을 원했던 적이 있으니 그리움, 결핍 같은 게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걸 원한 적이 없어서 그 삶을 몰라요. 제게 필요한 친밀감은 원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채워지죠. 제가 겪어보지 않은 관계를 아쉬워하지 않기 때문에 낭만적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 옷장에는 제 스타일의 옷들이 있는 거죠. 내가 입어보지 않은 옷을 두고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미니스커트도 입어볼걸 그랬다‘ 같은 식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거든요." - P120

친밀한 관계가 주로 낭만적 사랑에만 국한된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가 지나치게 강력한 바람에 그것이 아닌 다른 친밀한 관계의 사례와 대안에 관한 이야기가 빈약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문화의 산물에 가깝다. 낭만적 사랑은 18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들이 사랑을 낭만화하면서 태어났고, 문학을 통해 확산했다. 그런데도 낭만적 사랑을 통해서만 사람이 온전해진다는 신화가 강고해서 다른 유형의 사랑의 중요성이 쉽게 간과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삶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낭만적 사랑보다 과소평가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정에서도 이른바 ‘베프(베스트 프렌드)‘나 ‘솔메이트‘ 등 ‘온리 원‘을 추구하는 경향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 역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가 끼친 강력한 영향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에이징 솔로가 친밀감을 추구하는 방식은 "식욕이 사람마다 다르듯" 저마다 달랐다. 원가족과 긴밀한 사람도 있고, 친구·공동체·스스로 만든 모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하며 친밀감을 충족하는 사람들도 - P122

있다.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며 살아간다. 솔로도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관계를 원치 않을 뿐이다.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보다 각기 다른 친밀한 관계를 여럿 갖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더 높여준다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슬퍼서 위로가 필요할 때, 행복한 일을 같이 나누고 싶을 때, 불안을 누그러뜨려야 할 때 등등 서로 다른 감정을 나눌 각각의 관계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그 모든 감정을 아주 가까운 소수의 관계에서만 나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정한 감정을 다룰 특정한 관계를 그냥 관계relationships 대신 감정 관계emotionships라 불렀는데, 그런 감정 관계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더 높여준다고 했다. - P123

서울시에 사는 25~42세의 고학력 비혼 1인 가구 여성 14명을 심층면접한 김민지의 연구에서 원가족과 얼마나 가까운지와 별개로 비혼 여성이 생각하는 가족의 기준은 여전히 "원가족과 그들이 사는 공간"이었다.
연구자는 이들이 "가부장적인 정상가족에 비판적이고 혼자 살기를 통해 정상가족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대안적인 친밀성의 모델이 문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가족 형성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정상가족의 추구 사이를 오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 P134

가족이 아닌 친밀한 관계를 말할 때 ‘가족 같은 사이‘,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처럼 계속 가족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는 사고방식도 새로운 관계의 상상과 확산을 어렵게 한다.
비혼 연구자인 지은숙 박사는 "공동체나 새로운 주거 형식, 새로운 연대의 방법을 생각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근대가족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해서 300년 정도 유지되어 온 근대가족 프레임이 정서적 애착을 중심에 둔 삶의 모델이 되어버렸어요. 서양의 근대가족 모델은 커플 중심인 반면, 한국에선 자녀가 있어야 세트가 완성돼요. 특히 여성은 자녀와의 밀착감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 P135

오히려 커플 중심 관계는 선택지가 다양할 수 있어서 변화가 빠른데, 한국의 경우 자녀 중심인 근대가족 모델의 대체 불가능성이 너무 강력해서 변동도 느리죠. 비혼인 제 친구들에게서도 나이 들수록 부모에 대한 친밀성의 농도가 더 짙어지는 모습을 봐요. 자기의 역사, 존재를 확인하는 데 가장 많이 의지하고 평생 가장 오래 알아온 존재가 부모니까요. 저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이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는 비혼 여성이 나이 들수록 부모와 더 밀착되는 현상을 "수렁"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이 밀착된 관계가 솔로의 부모 돌봄 독박을 합리화하는 도덕적 핑계로 쓰이기도 하니 수렁이라 할 만도 하다. 뒤에서 에이징 솔로의 부모 돌봄 독박을 따로 살펴보겠지만, 기혼인 형제자매가 부모 돌봄을 솔로에게 떠넘기는 일도 잦은 한편, 본인 스스로 부모 돌봄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도리라고 여기는 에이징 솔로도 많다. - P136

가족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기보다 전략적으로 가족 관계를 활용하는 에이징 솔로도 있다. 혼자가 된 여성 노인이 친척, 자매와 가까운 곳에서 살거나 함께 사는 것이 그런 경우라 할 것이다. 앞서 자신의 노후를 챙기겠다는 조카를 나무랐던 정세연 같은 솔로가 있는가 하면, 인터뷰를 사양했던 한 60대 초반의 비혼 여성은 자신의 집에서 서른이 넘은 조카와 함께 산다. 그는 조카에게 노후를 의탁하고 사후에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솔로들이 기혼자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넓은 의미의 가족에게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는 방법으로 노후를 대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성장 과정 내내 가족 안의 가부장적 폭력에 시달렸고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주와 반격으로 - P138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가족은 끊어내야 하는 구속이자 극복해야 할 상처다. 에이징 솔로와 가족의 관계는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려운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져 있는 셈이다. - P139

친구의 수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연구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공동체의 규모가 어디에서나 150명에 수렴한다는 ‘던바의 수‘다. 이 수 안에는 여러 층위의 친구들이 포함된다. 원 안에 더 작은 원을 잇달아 그리듯 50명의 ‘좋은 친구들(파티 친구들)‘, 15명의 ‘친한 친구들(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술집에 같이 가는 친구들)‘, 5명 가량의 ‘절친한 친구들(기대어 울 수 있는 친구들)‘로 좁아진다. 이 중 맨 안쪽의 원, 즉 5명의 절친한 친구가 나이들수록 집중되는 ‘관계의 핵‘이다." 던바에 따르면 이 ‘핵‘에는 친구, 가족, 반려동물, 푹 빠져 ‘덕질‘하는 가수, 신앙심이 두텁다면 각자가 믿는 신 등이 모두 포함된다. 어떤 대상이든 감정적 친밀감을 품고 자신의 내면에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대상이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 친구가 없어" 하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숫자는 잊어도 좋을 것이다. 남지원처럼 영성에 기대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넓고 묽은 우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여동생처럼 좁고 진한 우정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친구가 충분한지 아니면 더 필요한지 스 - P150

스로 진단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리사 프랑코Marisa Franco는 "당신의 정체성 중 일부가 억눌려 있다고 느끼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라고 조언한다.

각각의 친구는 우리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끄집어낸다. 다양한 친구 그룹과 함께하면서 골프를 사랑하는 자신의 이런 면, 꽃을 사랑하는 저런 면 등 다양한 자신의 특성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당신의 정체성이 위축되고, 당신 스스로 당신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유형의 친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 P151

비비가 30대에 처음 만나 50대가 되어 여성 노인 주거 공동체를 준비하기까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들은 함께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살면서 같이 정체성을 다듬고, 달라지는 생애주기를 함께 겪으며 삶의 파도를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출산, 자녀의 취학, 졸업, 취업에 맞추어 부부의 생애주기가 변하듯 말이다. 가족 같으면서도 가족 같은 성격에 국한되지 않는 비비의 특징에 대해 마을은 다른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족이란 말 말고 다른 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단어가 없는 게 아쉬워요. - P165

가족에 비교하자면 가족보다 더 긴밀한 게 비비인데. 혈연적인 의미를 떼놓고 봐서는 사실 어느 부분에서는 가족 같은 게 분명해요. 그런데 가족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한정적인 것 같아요. 가족이라 칭하기엔 친구 같고, 친구 같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족 같고, 또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동지적인 측면이 있잖아요. 미래를 같이 준비해 가는 사람이니까. 저에게는 가족보다는 훨씬 더 큰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비비를 중심으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원가족에게 잘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여기(비비)를 기반으로 상상하고 있는 거죠."

서로의 꼴을 봐주는 공동체

이들은 비비가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겪어가며 긴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힘으로 "공부와 돌봄과 여행"을, 그중에서도 "공부와 돌봄의 결합"을 꼽는다.

"비비의 한 친구가 암 투병을 하게 됐는데 - P166

그때부터 아픈 몸으로 사는 것을 주제로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친구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하는 공부였죠. 사실 가족이 병에 걸리면 공부를 해가면서까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텐데, 공동체 구성원이 아프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아픈 친구가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는 범위와 경험이 우리와 다른데, 아프지 않은 다른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수술받고 나온다‘와 같이 단순하게 생각하다 보니 아픈 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몰랐던 거죠. 모르면 아픈 친구에게 점점 더 공감하기 어렵고 ‘정상‘을 자꾸 요구하게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병원에 같이 가고 돌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같이 공부하기로 한 거예요. 시간이 좀 지난 뒤엔 다른 친구가 부모 돌봄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도 부모 돌봄을 같이 고민하면서 공부하고 이걸 담론으로 만들 방법을 생각해 보고 하는 식이었죠. 각자의 생애 경험이 그냥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되고, 함께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만들면서 - P167

지내왔다고 할까요." (마을)

마을의 이야기를 들으며 몸이 서서히 데워지듯 잔잔한 감동이 차올랐다. 비비에서는 누군가 아프면 중도하차하고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가는 게 아니라, 같이 멈춰 서서 아픈 친구의 일상을 이해하려 공부하며 애쓰고 서로 돌본다. 누군가 부모를 돌보는 부담이 늘어나면 공동체에서 빠지는 게 아니라 ‘부모 돌봄 자조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한다. 그렇게 서로를 부축하고 서로에게 기댄다.
봄봄은 "비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임으로서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비는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안전한 관계, 안전한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서로의 꼴을 봐주고 사는 공동체"라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요약했다. - P168

그런 점에서 "폐 끼치고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건 정말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주얼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마을도 "특히나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못하는 말이 ‘도와줘‘라는 말"이라며 거들었다.

"비비를 운영하면서도 우리가 늘 도우면 도왔지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청하는 입장에 처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 말을 - P169

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하면서 살아오지 않아서 그렇지, 도와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거죠. 그런 게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성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니까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받을 줄은 알아야 해요.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군가 손을 내밀고 나를 도와주려 할 때 감사하게 받을 줄 아는 것도 공동체 정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나는 꽤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1인분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혼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삶을 의미하는 거라면 독립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태도라는 생각이 요즘에야 든다.
얼마 전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다가 작가 이반지하가 "내가 정말 1인분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사회가 필요 없다"라고 단호히 쓴 부분도 생각났다. - P170

우리는 순간순간 어떨 때는 0.8인분,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내 깜냥으로 1.5인분을 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렇게 얽혀서 사는 것이지, 지금 당장 내가 1인분인가 아닌가 꼭 그렇게 따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관계에 따라서 내 역할도 계속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면 비비 구성원들의 말마따나 "서로 꼴을 봐주고", "폐 끼침을 주고받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꼭 연습해야 한다고, 비비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후 계획 1번으로 마음에 새긴 일이다. - P171

"예전엔 일터의 스트레스가 집까지 고스란히 묻어 와서 먼지처럼 쌓이는 느낌이었는데, 텃밭에 모여 흙이랑 풀을 만지고 잡초를 뽑고 있으면 그 자체가 힐링이더라고요. 비가 오면 비 온다고 좋아하고, 가물면 가물었다고 - P173

걱정하고. 그렇게 우리가 같이 텃밭을 돌봤어요. 같이 김장도 하고 서로 일상을 파고드는 경험을 하면서 우정이 깊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뿌리내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셋 다 온전한 성인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기분이었는데, 이 3평짜리 텃밭에서 뿌리내린다는 느낌을 갖게 된 거죠." - P174

"친구들과의 관계가 텃밭에서 물리적 공간과의 관계 맺기로 이어지고, 이 경험이 마을에서 익숙한 얼굴들과 맺는 느슨한 관계로 확장되면서 마을에 비빌 언덕이 하나둘씩 늘어났어요. 비혼 여성이 안전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방범용 CCTV가 많은 동네가 아니라, 골목골목 익숙한 얼굴들이 많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가 단단해지고 마을에 뿌리내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바뀌어 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2022년 7월에 코로나에 확진됐는데 집에 비타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텃밭을 같이 가꾸는 친구가 광명에 사는데 자기 집의 - P175

비타민을 다 싸 들고 은평구까지 와서 우리 집 문에 걸어놓고 갔어요. 다른 친구도 택배로 뭘 잔뜩 보내고요.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아냐, 괜찮아, 오지 마‘ 했을 텐데 이번엔 친구가 온다고 하니까 ‘그래, 와줘‘라고 대답했어요. 제게는 그게 큰 변화예요. 제가 기댈 수 있게 된 거죠. 우리가 여행 친구에 그쳤더라면 그런 말들을 하기 어려웠을 텐데, 텃밭을 같이 돌보면서 우정이 깊어졌고, 어느 시점에는 각자의 집을 돌면서 친구가 해주는 걸 그냥 다 받아먹고 와도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괜찮아, 오지 마"가 "그래, 와줘"로 바뀌었다는 말. 나는 이 말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자율과 독립을 가치 선반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고 살아오던 사람이 굳건하게 믿는 상대에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순하게 기대는 말,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어도 가능한 사랑의 고백처럼 들려서였다. 아직 "괜찮아, 오지 마" 세계의 거주자인 나도 언젠가는 "그래, 와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게 될까.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징검다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 그가, 문득 부러워졌다. - P176

월소득 200만 원이 넘으면 OECD 기준 중산층에 해당한다. OECD는 중산층을 "소득이 중위소득의 4분의 3보다 크고, 2배보다는 작은 사람"으로 정의한다. 즉, 아주 넉넉하지도 않고 몹시 어렵지도 않은, 보통의 경 - P191

제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 기준을 적용해 30여 년에 걸친 중산층의 변동을 계산한 민간연구소 랩2050 이원재 전 대표에 따르면 2022년 1분기를 기준으로 봤을 때, 1인 가구가 월 200만~540만 원(4인 가구는 400만~1,000만 원)을 벌면 중산층에 해당한다. 금액의 범위가 좀 넓다는 느낌이 드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내가 만난 19명의 에이징 솔로 중 3분의 2가량은 이 기준으로 중산층 범위에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은 소득에 좌우되지 않았다. 훨씬 중요한 기준은 주거 안정성이었다.
뒤에서 주거 문제를 따로 살펴보겠지만, 소형 아파트를 가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장기간 주거가 가능한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살거나 전세이더라도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한 사람들이 집 없는 고소득자보다 미래에 대해 훨씬 안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질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다. - P192

노후의 빈곤은 1인 가구의 미래를 넘어서는 문제 - P193

다.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에서 가장 높다. 노인이 받을 수 있는 공적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녀가 있는 노인의 상당수는 장기간 자녀의 값비싼 교육 비용을 부담해 왔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 중에서도 비수도권에서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이 가장 가난하다. 젊어서부터 혼자 살아온 여성 노인보다 생애 내내 가족 뒤치다꺼리만 하느라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기혼 여성이 배우자와 사별한 뒤 더 큰 곤란에 처하기 쉽다. 평생토록 자기 자신을 위한 소득과 자산을 축적할 수 없다가 혼자가 된 여성 노인의 가난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고난으로 이어진다. ‘혼삶‘에 나이·성별·가난이 이중 삼중의 덫이 되는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우리를 받쳐주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정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본다면 가난한 독거노인이 될지 모른다는 에이징 솔로의 불안도 다독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P194

거의 모든 한국인이 꿈꾸는 ‘내 집 마련‘은 다수의 1인 가구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통계청의 「2022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는 월세가 42.3%로 가장 많았고 자가가 34.3%, 전세 17.5% 순서였다. 전체 가구의 자가 소유 비중이 57%인 것에 비해, 1인 가구의 자가 소유 비중은 낮은 편이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의 경우 19명 중 5명이 자가 소유자이니 1인 가구 평균보다도 살짝 낮다.
1인 가구의 3명 중 1명이 자가 소유자라는 전체 통 - P197

계도 성별을 구분해 들여다보면 그림이 사뭇 달라진다. 지은숙 박사는 서울시가 2017년 발간한 성인지 통계로 40~50대 비혼 여성의 주거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지표를 추정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별에 따른 주택 점유 형태를 보면 여성 가구주는 월세, 자가, 전세 순으로 많지만, 남성 가구주는 자가, 전세, 월세 순이었고 자가가 50%를 넘었다. 또 여성 가구주는 20~50대에 월세 형태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60대 이상일 경우에만 자가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반면, 남성의 경우 20대만 월세 거주 비중이 가장 높고, 30대에는 전세, 40~60대에 이르면 자가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거 형태상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중은 여성 가구주보다 남성 가구주의 경우가 훨씬 높았다. 이렇듯 주거 상황에서 드러나는 젠더 격차는 일차적으로는 성별 간의 생애 소득 격차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 가구주 중에 1인 가구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주거 빈곤이 젠더 - P198

간의 주거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분석과 앞에 인용한 통계청의 전체 통계를 종합해 보면, 결국 자가를 소유한 1인 가구는 대부분 남성이거나 남편과 사별한 60대 이상 여성일 가능성이 크고,다수의 40~50대 여성 1인 가구는 주거 빈곤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 박사는 "1인 가구라는 가족 형태에서 오는 차별, 성차별, 그리고 나이차별이 중첩되어 주거 사다리가 이미 끊어진 한국에서 ‘끊긴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 중년의 1인 가구 비혼 여성이 놓여 있다"라고 진단했다. - P199

어디서 사느냐 하는 문제는 비단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비는 2010년부터 계속 비혼 여성들과 만나면서 각자가 가진 삶의 주요한 고민을 마주해 왔는데 "많은 경우 그 삶의 종착역이자 해법은 안정된 주거"라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주거권은 내 소유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 가지 요건을 갖춘 권리였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 서로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이웃. - P207

그리고 내가 갑작스럽게 이동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집.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내용의 권리"가 비혼 여성이 바라는 주거권이라고 설명했다.
주거 안정성과 연결이 비혼 여성 주거권의 핵심이라는 뜻인데, 에이징 솔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구나 이웃과 가까이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원하는 형태와 방식은 모두 달랐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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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반지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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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정신만이 혼자 세상을 감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반드시 육체를 적당히 혹사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함께 세상에 맞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집 근처 (꺅) 게이 스피닝과 (욱) 부치 웨이트 학원을 차례로 체험하고 나자, 절대로 이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기존 사회의 전형과 틀을 답습한, 너무 열려 있거나 전복적이지 않은 에너지였다. 대안적이지 않은 시간이 목말랐다. 그러니까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정상적인 분위기의 꽉 막힌 운동 사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 P16

영상 속 그는 주먹을 날릴 때 팔만 뻗지 말고 허리와 엉덩이를 동시에 비틀어 온몸의 힘과 무게를 주먹에 실어줘야 상대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자신만의 무기를 정성 들여 세공해왔던 그는 그 소중한 주먹을 고작 자기 아내의 얼굴을 때리는 데 사용했다. 코뼈가 산산이 부서진 아내는 이후 평생을 비염과 코골이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한 TV 프로그램의 캡처 이미지와 함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노트북을 잠시 덮었다.
그렇게 퀴어와 페미니즘을 거세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에 대해 잠시만 명상. - P19

다시 노트북을 열어
구독을 취소.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디지털 복싱의 바다에 다시 한번 뛰어든다. 다시는 운동선수를 깊게 검색하지 말자 다짐한다.
모양만 보자, 모양만.
자꾸만 심연의 페미니즘이 여성 복서를 검색하게 한다.
핵심만 보자, 핵심만.
어쨌든 지금 그냥 막 잘 때리는 방법만을 배우고저 한다. 그 너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간주해내고저 한다.

그러다 결국 깊은 깨달음에 다다른다.
나,
복서 될 수 없다.
나,
조금도 맞고 싶지 않다.
나,
오로지 패고만 싶다. - P20

세상은 예술을 응원할 리가 없었다. 성과를 가져와 누리고 싶을지는 몰라도 예술의, 예술가의 시간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시간관념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머리, 몸, 감정을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시간 대비 성과를 쭉쭉 뽑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사회의 - P29

노동과 시간의 개념은 예술의 그것과는 좀 다른 결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셈 안으로 예술이 기꺼이 욱여들어가지 않는다.
세련되고 멋진 세상이 요구하는 적절한 방향으로 몸과 머리를 써 그 대단한 돈을 벌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나는 바로 작업에 뛰어들지 못하고 숨을 돌리고 싶어하는 나를 원망했다. 세상 사장님들이 요구하는 효율만큼 창작을 해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돈도 예술도 놓치지 않은 채, 나 자신을 충분히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일생에서 몇 번 정도 세상과 닿아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횟수가 아니라 면적이라면 어느만큼일까 생각도 해본다. 다른 삶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고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나의 예술이 그들과 정말로 만나고 있나 생각해본다. 접촉면은 사실 기대보다 넓지 않을 수도, 양쪽 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아주 잠깐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삶의 시간 대부분을, 연결되지 못한 채 열렬히 닿고 싶어하는 그 애매하고 서투른, 벤자민 버튼식의 부적절한 상태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택하려는, 혹은 오래전부터 주어져버린 삶이라는 직업은 그런 모양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 - P30

지만 그것은 스물몇 살에게는 참으로 아득한 생각이었다. 아주 슬프고 답답하고 아득한 생각.
처음 카페에서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읽은 지 10여 년이 지났다. 카페는 사라졌고, 나는 아직 예술가로 살아 있다. 시간은 여전히 부딪친다. - P32

사장님이나 다른 알바분들의 대타가 필요한 때는 주로 오늘같은 명절이나 휴가철이었다. 모두가 아는 크고 작은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꽤 핫한 인력이 되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정상이었다면, 모두의 가족이 때맞춰 정상적으로 지탱되는 일은 불가능 - P34

했을 것이다. 365일 24시간 편의점이 닫히지 않게 유지하면서, 각 정상 가정의 존폐를 주관하는 되게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여기 이 비정상이셨다 이 말이다.
정상 가정들은 비정상 가장의 서포트 없이는 가족 행사 하나 말끔히 치러낼 줄 모르는 족속들이었다. 올해도 추석이 다가오자 정상들은 비정상의 스케줄부터 먼저 체크하려 들었다. 나는 약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본다. 왜 이렇게 일과 가정을 양립 못하고 이러실까. - P35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반갑다.

산뜻하고 따뜻한 봄 같은 반가움은 아니다. 분명 멀리멀리 떠나왔지만 여전히 같은 맛을 내는 프랜차이즈 햄버거와의 재회같은 반가움이다. 맛있다. 맛없다 등의 감상 영역은 지난 지 오래인채 그냥 그 맛. 그냥 바로 그 맛. 몸속 어디에 묵혀둔 잊지 않고 있던 감각이 자극된 반가움. 그것이 바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만사가 힘들어진다. - P36

세상은 죽고 싶은 사람을 위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곧 참는 생각이 된다. 오줌을 싸갈기듯 저질러버리고 싶지만 꾹 참는 생각이 된다. 온통 살아 있는 것에 둘러싸여 매 순간 얼른 화제를 돌려보려는 의지가 된다. 한편, 그런데, 그건 그렇고, 그나저나 그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디선가 배운 대로 죽고 싶다는 말을 애써 다르게 표현도 해본다. 지쳤다. 때려치우고 싶다. 배고프다. 피곤하다, 아니 사실은 재가 죽어야지 등등. 이렇게 죽고 싶다를 변주할 수 있으면 어물쩍 살아진다. 다룰 수 있게 된 듯 느껴진다.

살아있는 상태를 잊어야 자연스럽게 살아진다.

죽고 싶어지면 살아 있는 상태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삶이 어색해진다. 문득 내가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 지금 내가 ‘살‘이구나, 이게 아니면 죽음이겠구나. 그렇게 그 어떤 것보다도 ‘살아 있다‘는 개념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홱 패대기치고 싶어진다. 그것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 싸구려이다. - P37

순도 백프로의 다이아처럼 오롯이 한 가지로 빼곡하다기보다 아주 많은, 낮은 픽셀의 불순물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 옆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구질구질한 바람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다. 꾀죄죄한 고온의 수치심도 끼여 있다.

맛의 속성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그때 그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알고 보니 그 맛은 정말 많은 가맹점을 가지고 있어서 삶의 골목 여기저기에 지어져 있었다. 아, 이게 여기도 있었구나 하며 무심코 들어가 사 먹고는, 그래 내가 알던 그 맛이네, 한다. 그 맛을 음미하면, 그 맛은 있다고 해야 할지 편안하다고 해야 할지 그리웠다고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가끔 다른 이에게도 그 햄버거 얘길 하고 그도 그걸 먹어봤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같은 햄버거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P38

매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바쁜 퀴어들에게 어른이 귀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툭하면 고작 5년, 10년 터울의 윗세대 혹은 그 이전 세대를 소환하며 그들에게 퀴어른 노릇을 바라거나 그냥 덜컥 맡겼다. 세상에 조금 먼저 와 살아남은 그들에게 분명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 믿었다. 사회와 친족이 철저히 감당을 실패한 원망과 하소연받이 역할을 떠넘겼고, 태초부터 맡겨놓은 지지를 뻔뻔히 요구하는 와중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생색을 내는 것 같으면 가차없이 재수없어하기를 잊지 않았다. 분명 누구에게나 위험하고 어려운 자리에 적어도 나보단 앞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그들의 옆구리를 습관처럼 찔러댔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너무나 온당하고 그럴 법한 일이었다. 어느 커뮤니티에나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세대와 마음의 역동이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생토록 온당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잊는 듯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시민 대접을 해주지 않는 사회에 인간 대접을 해달라 몇 년을 외치다 뒤를 돌면, 어느새 나보다 그닥 어리지도 특출나게 귀엽지도 않은 퀴어놈들이 - P45

떼로 몰려나와 어르신 어르신 하며 인간성과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와 인내를 요구한다. 마땅히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할 곳에선 끊임없이 철부지 어린애 취급을 받고, 아직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싶은 곳에선 갑자기 실제 나이의 몇 배나 되는 선조 노릇을 요구받는다. 한마디로 퀴어른이란 참으로 좃같은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건넛상에 앉아 성성한 흰머리를 얹고 꼿꼿이 소맥을 자시고 계신 주름진 분들께 자꾸만 마음을기대는 일을 참아낼 수 없다. 그 한줌의 이들에게,
"아, 제발 쫌 죽지 말고 늙기만 하세요!!!"
라고 외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오늘만은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이들을 모조리 찾아내 되도 않는 애교와 어리광을 권력처럼 부려대고 싶어진다. 당신들의 죽음은 영원히 이르다며, 해준 것도 없는 주제 특유의 뻔뻔한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다른 건넛상에서 울음소리로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피자가 살려낸 이들을 본다. 피자가 있어 피자의 장례에 올만큼 늙어낸 사람들을 본다. - P46

촘촘히 벽에 붙어가는 검은 리본의 행렬, 그리고 거기에 적힌 정의로운 이름들을 보며 나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이들과 절대로 위대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나누고 난 후, 나는 이 모든 사람들 틈에서 언제쯤 죽어도 될지 눈치 게임을 시작해본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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