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사랑과 돌봄에 관한 퀴어한 참조
캔디(윤다림) 지음 / 들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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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날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자도, 가족도, 친인척도 아닌 ‘그냥 친구‘니까. 그래서 이후 나는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친구‘라 답했던 일을 내내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호자의 자격은 무엇인가?‘ - P33

다시 거슬러가 생각해보면 나는 썩 좋은 보호자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치료 과정에 함께했지만, 치료 방향을 제시하거나 어떻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환자가 하고 싶다면 하는 것이 후회가 없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력사는 워낙 고집이 강한 사람이니까, 괜히 그런 문제를 두고 대립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면 나는 두려웠던 게 아닐까? 내가 주장하고 선택한 방법으로 치료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원망을 듣게 될까봐?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가 원하는 당근 주스를 만들고 레몬즙을 짜냈다. 환자의 질병을 낫게 해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적극적으로 따르고 소극적으로 주장했다. 력사는 이제 환자니까 서울에 올라와 있어야 한다고 강권했을 뿐,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병원에 다니고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 P43

토론하지 않았다. 막연히 병원을 신뢰했던 것이라고, 력사의 결정을 믿었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두려워서 회피했던 것 같다. - P44

력사에게 말했다. 이제는 요양병원을 나와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그래도 력사는 듣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에게 요양병원은 마지막 선택,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력사에게 요양병원에서 퇴원한다는 것은 곧 그 선택이 실패했음을, 더 이상 삶에 남은 희망이 없음을 의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와 친구들은 끈질기게 마음을 다해 력사를 설득했고, 결국 력사는 요양병원에서 퇴 - P47

원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이 력사가 세상을 떠나기 삼 주 전의 일이다. - P48

그리고 그 모든 것과 별개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죽어가고 있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한 인간으로 대하고, 여전히 소중한 친구이며 가족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그 목소리들이 환자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력사의 마지막 순간 우리 친구들은 줌(zoom)으로 모였다. 그때 그들이 건네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력사가 존엄을 가진 한인간으로서 사망할 수 있게 했다. 정말로 큰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각자 생각하는 존엄과 품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자기 신체를 통제하는 것, 어떤 이에게는 효능감과 유능감, 어떤 이에게는 또 다른 것이겠지. 이것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처한 상황마다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한 가지는, 이 존엄이라고 하는 것을 나 혼자 만들어낼 수는 - P70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삶이 존엄할 수 있도록 바라봐주고 말 걸어주는, 기댈 수 있는 옆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 P71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내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서 력사는 친구들로부터 환송받으며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병원은 간호·간병을 엄격히 관리하고 제한했고, 보호자는 최대 한 명만 상주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는 어디든 내가 함께였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번 보호자의 권리는 력사의 어머니가 가져가셨다.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자식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어머니께 힘들면 언제든 교대해드릴 수 있다고 거듭거듭 말씀드리고, 매일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며 병동에 들어갈 수 있기를, 가서 력사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력사는 이미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따금 전화 통화를 할 때조차 력사가 엄마랑 24시간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용건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눈치가 보여 둘만의 이야기 같은 건 거의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과 력사의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이때부터 나는 - P79

갈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공간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매일 전전긍긍했다. 화도 났다. 내가 력사의 배우자였다면, 저 병동에 보호자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나였을 텐데. 어머니께서도 비록 자식의 죽음이 슬프지만, 자신이 아니라 력사의 배우자가 보호자로 동행하는 게 맞다고 동의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배우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었고, 력사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도 않았기에 어머니는 우리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다.
다행히 력사는 호스피스 병동에 오래 있고 싶어 하지 않았고 력사의 막내 이모가 집을 내주신 덕분에 첫 번째 호스피스 생활은 길지 않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두고두고 나의 권리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력사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호스피스 임종실에 들어가던 날, 응급실을 통해 력사를 입원시키는데 보호자 한 명만 동행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어머니께서 자연스럽게 함께 들어가셨다. 그렇게 력사와 - P80

어머니를 응급실에 들여보내고, 병원 로비에 앉아 한•참 울었다. 이젠 정말로 마지막일 것만 같은데, 나는 력사와 함께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너무나 무력했고, 두렵고 또 두려웠다. 력사를 떠나보내는 것만도 두려운데, 력사에게 잘 가라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멀리서 사망 소식을 듣게ㅍ될까 봐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친구들이 찾아와 넋 놓고 있는 나를 근처 숙소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아닌 밤을 보낸 다음 날, 력사의 어머니에게 연락이왔다.
"내가 간호사 선생님께 말해서 너도 같이 있어도된다고 허락받았어. 얼른 와!"
하늘의 도움인지 인간의 측은지심인지 아니면 그간 동고동락한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 때문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력사에게 갈 수 있으니 되었다. 나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 P81

6월 9일 저녁, 친구들이 연락해 와 력사와 함께 줌 미팅을 하자고 했다. 나는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력사는 그냥 자고만 있다고, 아무 반응도 할 수 없다고, 그냥 안 하는 게 낫다고. 친구는 그래도 단호했다. "누가 반응해주길 바란다니. 그래도 력사가 우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며 력사에게 이어폰이나 꽂아주라고 했다.
그렇게 열린 회의실 제목은 ‘줌으로 ASMR_력사에게‘, 그 소개에는 "력사는 계속 잠을 자고 있어요. 그러나 들을지도 몰라요, 친구들의 목소리를 력사에게 꼭 들려주고픈 친구들의 말을 나지막하게 나누어요. - P86

력사 곁에 있는 캔디가 력사에게 이어폰을 꽂아주고 호스피스실에서 함께 들을 거예요"라고 적어두었다. 속속들이 모인 친구들은 력사에게 안심하라고 이야기하며 편지를 읽어주기도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우리가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력사에게 건네주는 마음들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날 늦은 시간 나도 어머님이 잠드신 틈을 타서 력사에게 소근소근 귓속말을 건넸다.
"너를 만나는 동안 나는 정말로 행복했어. 너와 함께한 시간들은 언제까지나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거야.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마. 사랑해."
답변도 미동도 없는 력사였지만, 분명 내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은 이토록 차분하고 처절했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왜 난 그깟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눈치 보고 숨죽여가며 해야 하는 걸까. 서글펐다. 이건 행운인가, 불행인가. 그냥, 지금 주어진 상황에 그저 감사하면 되는 걸까. 한순간도 평온할 새 없이 끝이 오고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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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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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어디로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떠난 곳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방향을 찾거나 바꾸었다는 그 길을 걸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그 길은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평화로운 안전하고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꾸역꾸역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40일 후 그 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 많던 화살표가 일제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내가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다.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화살표 같은 존재들이 이젠 내 곁에 없다는 것도, 나는 화살표 없이 살아본 적이 없고 살아갈 능력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그때 절절하게 깨달았다. - P12

글쓰기는 사랑했던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는데, 나의 글쓰기가 정말로 그랬던 것이다. 나는 떠나는 그 기차를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몇 번째 칸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느 정류장에서 누가 타고 내렸는지, 그것이 우리의 방향을 어떻게 조금씩 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밤새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쓴 한 시절 우리의 역사는 내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서 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이 나로부터 영원히 떠나가고 있었지만 전혀 아깝지도, 미련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듯 후련했다. 이제 다른 기차를 타야 하는 것이다. 어떤 기차를 타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없었지만 똑같은 기차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 - P16

는 더 이상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 P17

도서관에서 특강을 하던 그가 유럽에서 공부했다면 나 - P21

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했다. 그것은 평생을 방구석과 집안과 시설에 갇혀서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것은 21세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21세기를 전혀 다르게 겪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전의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우물 밖 세상에 대해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우물 밖 사람 역시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듯 보였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세계를 몰랐으니 그도 나의 세계를 모르는 게 공평하다고. 그러니까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 더 거대하고 더 유구한 우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우물들이 있을 뿐이라고. 그날 나는 나의 우물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장애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 - P22

자, 세월호참사의 피해자 같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세상은 거기에 없었다. 나의 우물은, 한 시절 나의 우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없지? 어떻게 이렇게 없을 수가있지?‘ 하며 신문을 넘기다가 금세 나는 또 그것을 의아해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들에서 매일 들으며 살았던 소리들, 나를 힘들게 하고 때론 도망치고 싶게 했던 사람들의 한숨이나 신음, 비명이나 절규 같은 소리는 노들을 그만두자마자 마치 방음설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방의 문을 꾸욱 닫고 나왔을 때처럼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세상엔 재밌고 신나는 것투성이었다. 노들은 먼지처럼 미미해서 보이지 않았다. 빛나고 화려한 무언가를 위해 기꺼이 쓸어버려도 좋은 어떤 것이 아니라 무엇이 쓸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 같았다. - P23

연말정산 철마다 그를 찾았다. 그리고 작년 겨울 그가 결국 말하고 말았다.
"나가고 싶어."
시설 측은 가족의 허락을 받아오라고 했다. 가족은 물론 반대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가고 싶다는 그에게 나는 열번 스무 번 고쳐 물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요?"
사실 그는 가족의 허락 없이도 퇴소할 수 있고 주거와 정착금도 받을 수 있다. 시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이 벽관의 문이 오래전에 풀렸다는 걸 갇힌 사람들만 모른다. 그러니 질문은 실상 나를 향한 것이다. 벽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앙상한 어머니를 밀칠 자신이 있는지. 문을 열면 곧장 나를 덮쳐올 그를 업고 얼마간 전력 질주할 체력이 있는지. 그의 손에 술이 아닌 다른 것을 쥐게 할 대안이 있는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피했다.
"잘 지내고 있는 사람 흔들지 마세요."
애원은 점점 호통으로 변했다. 닫힌 문 너머에 어머니의 - P35

일상이 있었다. 그것 또한 지켜져야 했으므로 나는 얌전히 돌아섰다. 그에겐 ‘어쩔 수 없다‘ 전하고 다음번 연말정산 철을 기약할 작정이었다. 그때 함께 간 동료가 어머니의 집 문틈으로 편지를 밀어 넣었다.
"허락지 않으셔도 우리는 하겠습니다."
순간 나는 그녀가 벽관의 문을 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온갖 사람들의 평화를 계산하는 동안 그녀는 그 계산에서 빠진 단 한 사람을 보며 그저 신발 끈을 묶었다. 부끄러웠고 부러웠다. 그녀는 멋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수십 명의 탈출을 도와온 그녀는 싸움닭처럼 세상을 들이받으며 시설 바깥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소록도 100주년을 맞아 고흥군이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돌보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노벨평화상에 추천한다고 한다. 한센 병력으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의 섬 소록도는 오랜 세월 차별과 폭력, 단종과 학살이 자행된 인권의 사각지대이자 침묵의 땅이었다. 수녀님과 같은 이들이 있어 갇힌 사람들은 고통을 덜었을 것이나, 덕분에 그 고통은 100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지속 가능함은 분명 어떤 평화에 기여했을 것이나, 그것은 실상 갇힌 사람들이 아니라 가둔 사람들, 소록도가 아니라 소록도에서 바라본 - P36

육지의 것이 아니었던가. 오래전에 깨어지는 게 더 좋았을 ‘당신들의 평화‘ 말이다. (2016. 1. 25) - P37

2001년 처음 노들장애인야학의 문을 두드렸던 나는 살면서 장애인을 거의 본 적 없는 평범한 비장애인이었다. 야학 교사인 나는 방황하던 대학 졸업반이었고, 또래인 야학 학생들은 초등학교는커녕 변변한 외출도 해본 적 없는 중증장애인들이었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세상이란 저멀리 따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일주일에 한 번쯤 ‘봉사‘하러 다녀오면 되는 줄 알았으나, 내 생각이 틀렸다. 학생들은 지나가듯 말했다.
"나도 대학가고 싶어."
"나도 연애하고 싶어."
"나도 돈 벌고 싶어."
거기엔 모두 ‘너처럼‘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한가한 소리를 일순간 팽팽하게 당기는 말, 저항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밧줄 같은 말, 그것은 주술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 P81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의 구질구질함을 이해한 자는 그 구질구질함에 순교한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누리던 그마저의 편리도 내려놓고 창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름답다. - P102

박종필의 앎은 앓음이었다. 그는 다큐를 찍어 명예를 얻었지만 우정을 나눈 형들은 객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부채감과 자괴감으로 크게 앓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그 앓음이 박종필의 삶을 결정지을 만큼 대단했으리란 걸, 다큐를 보며 알았다. 이후 20년 동안 그는 장애, 빈민 현장의 영상활동가로 살았다. - P106

장애여성을 위한 글쓰기 교육에서 강의를 했다. 나는 당사자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며 내가 만났던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마 조금 울먹였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자 한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은 감수성이 뛰어나신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러워진 내가 손사래를 치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순간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비장애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당사자니까...."
그녀의 말엔 조금의 비아냥도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이 처연해졌다. 한동안 그 말이 내 몸속을 돌아다니며 잊힌 기억들을 툭툭 건드리고 다녔다.
노동절 집회 도중 체포된 남편에게 구속 영장이 신청된 날이었다. 너무 무서웠는데 무섭다는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남편이 구속될 위기에 처한 아내에게 형사가 보인 멸시와 푸대접이 비현실적일 만큼 적나라해서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들은 남편을 가두거나 가두지 않을 권력을 쥐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납작 엎드리는 일뿐이라는 걸. 불타는 분노는 우리를 도우러 온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몫이었다. 처음으로 ‘비 - P123

참‘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다 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 P124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한때 남성들이 자신이 여성혐오의 잠재적 가해자임을 선언하는 장면에 나를 대입하면 식은땀이 난다. 나는 장애인차별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확실한 가해자이며, 이 시스템의 분명한 수혜자이다. 비장애인인 내가 이 지면에 장애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그 증거다.
‘장애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진 않은가 신경이 쓰였으나, 이 지면의 새로운 필자에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이 있어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세상의 변화는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닥쳐온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작되며, 그것은 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살아가는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비로소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성찰할 때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글쓰기 교육에서 만났던 그 장애여성으로부터 배웠으므로, 당사자의 말하기, 그 어려운 일을 그녀가 이미 해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2018.1.8) - P125

박경석은 꿈이 외항선을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마도로스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983년, 스물넷의 나이에 행글라이딩을 하다 사고로 장애를 입습니다. 그후 그는 5년을 집에서 보냈습니다. ‘허리 아래 괴물같이 달라붙은‘ 하반신처럼 삶이 무감각했습니다. 그는 죽기로 결심합니다. 슬퍼할 어머니를 위해 집이 아닌 곳에서 죽기로 하죠. 고향인 대구가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대구까지 갈 방법이 없습니다. 택시를 불러야 했지만 그에겐 택시비도 없었죠. 마침 그의 형이 성경을 백번읽으면 용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죽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감각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죠. - P126

1994년 박경석은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던 청춘들과 어울리며 정을 나누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비장애인이던 대부분의 교사들은 때가 되면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습니다.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던, 하늘을 날고 싶었던 그는 항구처럼, 공항처럼 그 자리에 남아 떠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자신의 닉네임을 ‘어깨꿈‘으로 정한 것이. 어차피 깨진 꿈이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그 뼈저린 포기가 그를 구원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1년 2월 6일 지하철 서울역 플랫폼.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선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이 떨어져 죽은 일에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애인이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하철이 30분간 멈추자, 30년간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절망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병신 새끼들." 선량한 시민들이 잔인한 말을 쏟아냅니다. 그때 박경석이 이렇게 외칩니다.
"좋습니다. 우린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이고 싶습니다. 병신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 - P127

줍시다."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작은 불씨가 탁, 하고 켜졌습니다.
그리고 13년이 지나 2014년 4월 20일이 되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검찰의 공소장 맨 첫 페이지에 있는 바로 그날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동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도착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있었습니다. 그곳엔 우리가 함께 탈 수 있는 버스가 단 한대도 없었습니다. ‘차선을 넘었다‘는 말은 이상합니다. 길은 끊겨 있었으니까요.
박경석 대표가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터미널까지 오는 데 17년이 걸렸는데, 대구까지 가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까요. ‘장애인과 함께 버스를 탑시다‘라는 말을 하는 데 그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습니다. ‘고작, 버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그가 싸워온 건 평생 자신을 옥죄던 굴레였고, 그 싸움이 그를 살게 했으므로, 저는 이 문장이 어쩐지 숭고하게느껴집니다. 누군가의 평생이 있어야만 평범한 사람들의 - P128

작은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위로입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2018.2.5) - P129

초등학교 시절 혜영은 오전에는 동생의 교실에 있다가 동생의 수업이 끝나면 자기 반으로 가 수업을 들었다. 혜영이 중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동생은 시설로 보내졌다. 언니의 삶을 위해서, 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언니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이유로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남아 있는 삶 역시 온전히 그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언니 혜영은 말한다.
"혜정이와 같이 살기 위해서는 두 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는 나의 시간이고 하나는 혜정이 언니의 시간이다. 혜정이를 시설로 보낸 대가로 얻어진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진짜 나의 시간을 찾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한동안 다시 ‘혜정이 언니의 시간‘을 살 - P143

기로 한다.
(...)
혜영의 친구가 물었다. 안정된 삶에 대한 욕망 같은 거없어? 혜영이 대답하길, 나는 이게 안정된 상태야.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아침에 5분만 더 자겠다는 동생을 보면서 방문 닫고 나올 때가 진짜 행복하다고.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자신이 겪어본 가장 평화로운 경험이라고. 그 말은 다시 영화 속 내레이션으로 이어진다.
"혜정이를 돌봐야했던 어린 시절, 나는 자유로워지고 - P144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혜정이가 시설로 사라졌을 때 내게 찾아온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그저 혜정이의 빈자리가 마음속에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나에게 이 영화를 한마디로 줄이라면 ‘마음속 동그란 빈자리‘라고 말하겠다. - P145

친구가 글쓰기 강좌를 듣고 싶어 했다.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고 전동휠체어를 탔다. 신촌의 한 빌딩 내에 있는 문화센터를 추천해주며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 것은 기대조차 하지 않으며 충분히 참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를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낮게 설치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아니 두 대쯤 얻어맞은 느낌이었는데, 한대는 그녀가 강좌 하나를 듣기 위해 저녁 내내 오줌을 참는 일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었고, 또 한 대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고려 사항 목록에서 무려 화장실을 뺀 자리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넣는다는 점이었다. 버튼의 높이 같은 것은 얼마나 사소한지, 나는 심장이 조금 아픈 느낌이었다. - P146

신길역 계단 위에 섰다. 한경덕 씨를 낭떠러지로 밀어낸 버튼은 사고 후 원래 있던 위치에서 1미터쯤 계단 반대쪽으로 옮겨져 있다. 전쟁에서도, 교통사고에서도 살아남은 한 위대한 생명이 고작 이 작은 버튼에 닿으려다 무너졌다는 사실에 심장이 아프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버튼의 높이나 위치를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호출버튼 누르기.
그것이 한경덕 씨가 지상에서 한 마지막 행동이지만 아직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2018.7.23) - P148

《나, 함께 산다》는 시설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태반의 구술자가 언어장애가 있거나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이 기록의 진정 기록할 만한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 작업을 제안했다면 대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각이 안 나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구술자들에게 가장 취약한 것이 언어능력, 그러니까 ‘이야기 하기‘이니까. 그것이 바로 그들의 장애니까 말이다.
기록자 서중원은 용감하게도(!) 이 제안을 기쁘게 수락한다. ‘살아 있음을 멋지게 항변하는 이들‘을 만날 기회라 여겼다. 그러나 동경심에 가득 차 그녀가 놓친 것이 있으니, 자신이 장애인을 거의 만나본 적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흔한 패키지여행 한 번 가보지 않았던 사람의 ‘오지 탐험기‘라고 할까. 그리하여 애초 1년을 염두에 두었던 여행이 2년을 넘겼던 까닭은 ‘여행 내내 자신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부서진 것 중 가장 낭패인 것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 그러니까 표준어의 - P149

체계 안에선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 P150

그동안은 엄숙하고 비장한 증언들만이 시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시설 바깥으로 나오고 있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다. 더듬는 말, 맥락을 알 수 없는 말, 뭉개지고 덩어리진 말, 까끌까끌한 말. ‘언어의 수용소‘가 있다면 필시 갇히고야 말았을 ‘추하고 열등하고 쓸모없는‘ 말들. 나는 어쩐지 어떤 견고했던 둑이 무너진 것 같은 해방감이 든다. 더 많은 짐작과 오해 속에 공동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함께 이야기를 지어나가는 것이다. 돌아갈 길이 ‘부서져야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지도 없이 떠난 어느 기록자의 여행이 또 하나의 지도가 되었다. 부러워서 가슴이 조금 아프다. (2018.8.20) - P151

어느 고등학교의 졸업식에 갔다. 주인공들을 보기 위해 하객들 사이를 기를 쓰며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나 마 - P173

침내 강당의 중앙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졸업생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엔 250개의 빈자리만 있었다. 울고 싶었던 것도 같고 웃고 싶었던 것도 같다. 나는 그것을 보려고 아침부터 먼 길을 온 참이었다. 식이 끝난 후 교실로 갔을 때, 그날 처음 만난 한 여성이 오늘 당신의 아들이 졸업을 했으니 짜장면을 사겠다고 했다.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서 가게 된 북경반점에는 한바탕 눈물을 흘린 부모들이 해사해진 얼굴로 삼삼오오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슬프고 아름다운 의식이었다. - P174

세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세상에 대해 읽고 쓴다는 일이 말할 수 없이 부당하게 느껴진다. 부끄러움을 견디면서 쓴다. (2019. 6. 10) - P192

언젠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낳았을 때 좋았어요?"라고 내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대답했다.
"아니, 무서웠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낯선 존재가 무섭도록 좋았다. 나에게 동물이란 갇혀 있거나 묶여 있거나 살점으로만 존재했다. - P203

하나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본 적 없었다. 나는 간절히 카라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남편에게 같이 살자고 말했던 순간처럼 뭉클한 기분이 되었다.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혁명 같은 그런 앎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나는 동물적으로 알았다.
(...)
카라를 만났으므로, 머리로만 알던 것, 미루고 미루어오던 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도 동물이란 감각을 일깨우는 것.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잊지 않을 것. 나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살아보기로 했다. (2019.9.2) - P204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은 광장에서 미경 씨의 머리를 밀어주며 "죄송해요"라고 말했던 여성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 P213

명색이 고통을 기록하는 활동가인데, 두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후에야 내가 듣고자 했던 고통엔 오직 인간의 자리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뉴스에선 그물에 갇힌 채 가스를 주입당해 살해되는 돼지들이 매일같이 보도되었다. 살려달라고 뛰쳐나온 돼지들을 인간들이 삽으로 내리쳤다. 뉴스 앵커들 - P220

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의 피해만 걱정했고, 정치인들은 돼지 농가를 살려야 한다며 돼지 인형을 머리에 쓴 채 삼겹살을 구워 먹는 행사를 했다. 그들 사이엔 손석희나 심상정처럼 내가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짐승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러나 요즘의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좋은 비장애인이나 좋은 이성애자가 되고 싶다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이제 나는 좋은 동물이 되고 싶어졌다. 40년을 살면서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생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019.12.23) - P221

갇힌 존재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언제나 꽃님 씨가 떠오른다. 꽃님 씨는 서른여덟에 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 3년 만에 그곳을 벗어났다. 그 후 10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 2천만 원을 탈시설 운동에 써달라며 기부했다. 2016년의 일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 지면에도 쓴 적(「혹독하게 자유로운」)이 있는데, 이것은 그 뒷이야기쯤 된다.
그해 2월 꽃님 씨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노들야학 학생이었고 나는 교사였다. 그날 그가 갑자기 발표했다. 2천만 원을 모았고 노들야학에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감동적이었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먹던 밥이 얹힐 지경으로 당황했고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어떤 권력관계가 뒤집히는 순간이랄까. 말하자면 ‘소외된 이웃‘이 거액 후원자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상처 준 말이나 행동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 많아서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고많은 교사 중에 굳이 나를 부른 건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말이다. 이것은 이미 5년 전에 예고된 일이었지만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전 어느 날, 꽃님 씨에게 이런 이야길 들 - P241

었다.
"학교에 다닌 적 없어. 취학통지서도 못 받았어. 주민들록이 안 되어 있었거든. 나는 이름도 없었어. 가족들은 내를 그냥 갓난아, 하고 불렀지. 스무 살에 처음 주민등록을 했는데 그때 내가 내 이름을 지은 거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름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첫 선물인데 그는 그것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선물을 준 것이었다. 이상하게 전설 같고 어딘가 멋있는 이야기였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돈을 모으고 있어. 시설 나온 지 10년 되는 날까지 2천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야. 그걸 야학에 줄게.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꽃님 씨는 야학 제일의 자린고비였다. 가게에 걸린 옷 하나를 마음에 두고 며칠을 끙끙 앓던 그에게 그렇게 궁상스럽게 살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던 게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됐어, 언니 옷이나 사 입어요."
하지만 그가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웃음을 거두었다. - P242

"이거 비밀이야.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너하고 나하고 끝이야. 너한테 말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흔들릴까봐서야. 이렇게 말해두면 흔들릴 때마다 도움이 되겠지."
어느덧 5년이 흘러 무수히 흔들렸을 그가 굳건한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꽃님 씨가 말했다.
"그 돈, 지금 이 방에 숨겨져 있어. 내가 매달 수급비 50만 원에서 20만 원씩을 빼서 현금으로 모았거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조선시대야? 왜 돈을 집에다 보관해요!"
꽃님 씨가 항변했다.
"통장에 넣으면 재산으로 잡혀서 수급권 탈락해."
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 그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다.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었고 누워서 생활했다.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남겨진 밤이면 옆집에서 다투는 소리만 들려도 저러다 불이라도 지를까 걱정돼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꽃님 씨가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현금 2천만원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외친 것이다.
"불이 나면 어쩌려고요! 도둑이 들면 어쩌려고요!"
그제야 그가 살아낸 10년이 얼마나 위대하고 위태로운 - P243

것인지, 그가 모은 2천만 원이 얼마나 치열한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2천만 원을 받아 가장 가까운 은행으로 걸어갔다. 스쳐 가는 모든 사람이 강도처럼 느껴져 가슴 속 돈봉투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한번이라도 꽃님 씨를 이 돈뭉치처럼 귀하게 여긴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 나게 부끄러워서, 이것은 꽃님 씨의 복수가 분명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 복수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만 목이 메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거리에서 싸웠잖아. 그 싸움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는데 집에 누워 있는 게 항상 미안했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싸운 거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서 배웠다. (2020. 5.11) - P244

야학에 대한 설명을 마친 그는 며칠 뒤에 집회가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했지만 짐짓 태연한 척 물었다.
"구호가 뭔가요?"
"버스를 타자 입니다."
나는 풉, 하고 웃었다. 뭔가에 대한 패러디라고 생각한것이다. 그가 전혀 웃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챘다. 자세를 고쳐 앉아 물었다.
"버스를 왜 타죠?"
"장애인은 탈 수 없으니까요."
나는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지하철 타면 되잖아요."
그는 가르쳐야 할 게 아주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구호를 들은 날이었다. 허공에 붕뜬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탈 수 없다는 그 버 - P245

스를 타고서였다. 집회엔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이상한 학교에 계속 갈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며칠 후 그날의 집회를 영상으로 보았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백 명도 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쇠사슬로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묶어 8-1번 버스를 에워싸고 있었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그들이 바깥에서 외치는 동안 버스 안에서는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자신의 손목과 버스의 운전대에 수갑을 채우고선 버스가 움직일 수 없도록 막고 있었다. 기어이 버스를 함께 타겠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수백 명의 비장애인 경찰들이 체포하기 시작했다.
충격적이었고 몹시 가슴이 뛰었다. 그 순간 내가 장애인에 대해 가졌던 어떤 관념들이 와장창 깨지는 것을 느꼈다. 며칠 후 야학에 갔다가 영상 속에서 수갑을 차고 시위하던 그 장애인을 만났다.
"노들야학 교장 박경석입니다."
그의 두툼한 손이 내 손을 잡던 순간, 내 안에서 또 뭔가가 무너졌다. 휠체어를 탄 교장이라니, 불법 시위를 주도하는 교장이라니. 세계에 대한 이해가 급격히 바뀌는 나날이었다. 나는 바다를 한 번도 못 봤다는 사람. 언니의 결혼 - P246

식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신입 교사 교육을 받았다. 그때 내 손엔 장애인의 이동권 실태를 알려주는 자료집이 들려 있었지만, 정말로 나를 가르친 건 8할이 우리가 동그랗게 둘러앉은 그 관계였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해 겨울 임용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이 아니라 야학으로 갔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이기지 않은 채로 교사가 되었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장애인의 열악한 현실 그 자체가아니라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 옆에 서자 세계가 온통 문제투성이로 보여서 나는 정말로 충격받았다. 내가 타고 온 버스도, 지하철도, 내가 다닌 학교도 모두 문제였다. 나는 마치 중력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건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적응하는 세계에서 저항하는 세계로, 냉소나 냉담보다는 희망을 더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공동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에 가장 좋은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나자신일 것이다. 중력이 다른 세계에선 다른 근육과 다른 감각을 쓰면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노들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 - P247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말했다.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더 이상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말에 힘껏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과 같은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말할 때, 노들은 그저 차별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러나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같은 구호는 수십년간 집 안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 외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버스란 그저 해가 뜨고 달이 지는 풍경의 일부일 뿐 자신이 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항하는 인간들이 ‘발명‘해낸 말이다. 그 저항이란 해와 달의 질서에 맞서는 일처럼 아득한 것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기어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마지막에 누군가 살아남아야 한다면 바로 그들이 아닌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건 좋은 사회의 증거가 아니라 그 사회의 수명이 다했다는 징조인 것이다. (2020.6.8) - P248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재난을 나는 그가 전한 소식을 통해 배웠다. 대구의 활동가들은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매일매일 출근해 하루를 함께 보냈다. 손을 씻도록, 마스크를 쓰도록, 외출을 자제하도록, 답답함을 풀 수 있도록,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도록 도왔다. 코로나 시대 - P250

에 역행하는 이 엄청난 밀접접촉은 3개월이나 지속되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강력한 연결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재난 시 사회적 돌봄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이 사회를 향해 촉구했다. 뉴스에선 그들을 ‘의인‘이라 칭송했지만, 그들이 한 가장 의로운 일은 재난 현장에 뛰어든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재난을 탄생시킨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호트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책 없는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더 큰 재난임을 알린 것 말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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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ㅣ 아르테 S 5
강혜영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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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 - P14

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 P15

몸에 대해서라면 좀 무식, 무지, 무관심한 쪽이다. ‘쪽이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하고 싶지만 지금도 어느 면에서는 그러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는 꼭지만 달린 주제에 너무나 브래지어가 하고 싶어 공갈 브라를 하고 다녔다는데, 그런 심리 1도 이해 못 하는 나는 티셔츠 속으로 빤빤하게 떨어지는 가슴이 좋아 고무줄로 된 벨트를 가슴에 차고 다녔다. 무려 2년 동안이나. 엄마에게 들켰다가는 억지로 레이스 달린 - P68

아토피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부적절한‘, ‘이상한‘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부적절하고 이상한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부적절하고 이상한 사람처럼 여기며 약 10년을 흘려보냈다. 20대가 된 나는 여전히 약을 끊지 못하고 1등급의 스테로이드 연고를 쓰고 있었다. 스테로이드 중독에 의한 부작용은 다양하다. 안면홍조가 생겼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날 정도로 피부가 예민해졌으며 에일리언 같다, 피부가 기름종이 같다는 소리를 들었을 - P35

나는 내 몸을 사랑하는가, 내 몸을 긍정하는가에 관해 오래 생각했다.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오래 보류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을, 내 피부를 사랑하거나 긍정하지 못한다. 그럼 나는 실패한 걸까? 사랑하거나 혐오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오랫동안 내 몸을 혐오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사랑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라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애초에 우리 삶이 그렇게 쉽게 온점을 찍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려 노력하다 보니 매일 실패하는 나를 발견했다. 피부를 위해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지 못하고 마시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다음 날 악화된 피부를 보며 또 나와 내 피부를 혐오했다. ‘내 피부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미션은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절대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는 산이었다. 내 생각은 ‘내 피부를 사랑한다, 사랑 - P41

하지 않는다.‘ 두 가지에만 매몰되어 있었으니 어떤 노력을 해도 결국 내 피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지금은 나를 향한 사랑이 불가능하다거나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몸에 대한 애정은 매일 바뀐다고 볼 수 있다.
내 피부, 내 몸을 사랑한다는 건 사실 자존감의 문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내 몸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이 자존감은 높거나 낮거나의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쪽에만 멈춰 있는 고정된 형태도 아니다. 어제 술을 마셨다면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날이 되고, 오늘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내 몸을 사랑하는 날이 된다. 언제든지 나는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자책할 이유도없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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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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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 P95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 - P102

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뜨거운 고름 같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그녀는 눈을 부릅뜬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 P103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P114

내가 함께 올라탄 트럭이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두차례 길을 잘못 들었고, 겨우 도착한 예비군 훈련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총을 가져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 P115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계엄군이 십분 안에 도청에 다다를 거라는 무전이 들어왔을 때, 김진수는 자신이 맡은 창을 등지고 서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죽을 거지만, 여기 있는 어린 학생들은 그래선 안된다.
마치 자신이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이나 마흔쯤 되는 사내인 것처럼 그는 말했습니다.
항복해야 돼. 만약 모두 죽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총을 버리고 즉시 항복해. 살아남을 길을 찾아. - P116

*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 P117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방금 전까지 눈을 마주치며 대화했던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피를 곁눈으로 보며, 누가 죽고 누가 남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복도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습니다. 그들이 매직으로 내 등에 무엇인가 글씨를 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극렬분자. 총기 소지. 그렇게 썼다는 것을 상무대 유치장에서 다른 사람이 알려주었습니다. - P118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 P118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P119

두살 많은 외사촌형을 따라 시민군에 들어갔는데, 형은 마지막 새벽 YMCA에서 죽고 혼자 잡혀왔다고 했습니다. 카, 카스테라가 제, 제, 제일 머, 먹고 싶어요. 사, 사이다하고 가, 같이. 외사촌이 죽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는, 뭐가 먹고 싶으냐는 말에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대답했습니다. 눈을 문지르지 않는 그 아이의 왼 주먹, 꽉 움켜쥔 그 손가락들 사이에 약솜이 끼워져 있는 것을 나는 묵묵히 바라봤습니다. - P120

그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 P126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 P130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 P133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P135

어용노조를 큰 표차로 꺾고 뽑힌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들이 끌고 가던 날, 2교대를 하려고 기숙사를 나와 출근하던 여공들 수백명이 사람의 벽을 만들었다. 많아야 스물한두살, 대부분이 십대인 여자애들이었다. 제대로 된 구호도 노래도 없었다. 잡아가지마요. 잡아가면 안돼요. 소리치는 그녀들을 향해 각목을 든 구사대가 달려들었다. 헬멧과 방패로 중무장한 경찰 백여명을, 차창마다 철망이 쳐진 전경차들을 당신은 보았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무장했을까, 얼핏 생각했다. 우린 싸움을 못하고 무기도 없는데.
성희 언니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은 그때였다. 옷을 벗어. 우리 다 - P155

같이 옷을 벗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들은 옷을 벗었다. 잡아가지 마요, 소리치며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흔들었다. 그녀들이 지닌 가장 은밀한 것, 모든 사람들이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 처녀들의 벗은 몸을 그들이 만질 수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브래지어 차림의 여자애들을 흙바닥에 끌고 갔다. 등허리의 맨살이 모래에 긁혀 피가 흘렀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속옷이 찢겼다. 안돼, 잡아가면 안돼. 고막이 터질 듯 쨍쨍한 울부짖음 사이로, 그들은 수십명의 노조원들을 곤봉과 각목으로 때려 닭장차에 집어넣었다. - P156

양장점 주인이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영암의 동생네로 내려가버린 화창한 봄날이었다. 낮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서름서름 거리를 걷던 당신의 눈에 그 시내버스가 들어왔다. 계엄 해제. 노동삼권 보장. 차창 아래 길게 걸어놓은 흰 현수막에 파란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작업복 차림의 전남방직 여공 수십명이 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햇빛을 못 봐 데친 버섯같이 얼굴이 창백한 여자애들이 나무 막대들을 들고, 차창 밖으로 팔을 내밀어 차체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기억하는 쨍쨍한 목소리, 무슨 새나 어린 짐승들이 한꺼번에 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좋다 좋다
같이 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 P158

기에 서 있는 대학병원 건물을 당신은 올려다본다. 쨍쨍 울리는 여자애들의 노랫소리가 이 밤으로부터 아득히 먼 버스에서 울려오는 것을 듣는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먼저 가신임들을 위해 다 같이 묵념합시다, 먼저 가신 임들을 따라 끝까지 싸웁시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귀하니까. - P160

성희 언니가 소모임에 신입 회원을 받자고 해서 당신이 말을 꺼내봤던 아이였다. 당신처럼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나이를 속이고 공장에 들어온, 키가 자그마하고 웃음이 송글송글하던 그애는 거절했다. 저는 조합 활동 적극적으로 못해요. 해고되면 안되거든요. 동생 학비도 보내야 하고, 언젠가 저도 공부를 할 거니까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장파열로 당신이 입원해 있었을 때였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다 잠깐 문병 온 동료가 말했다.
……사방에 흩어진 우리 신발을, 정미가 전부 모아서 노조 사무실에 갖다놨다. 쪼그만 게 그렇게 서럽게 울더란다.
연행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벗겨진 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열여섯살 난 그애는 무엇이 자신을 울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신들을 가슴에 안고 이층 노조 사무실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방으로 걸어올라갔을 것이다.
그날 오후 회진을 온 말쑥한 얼굴의 의사와 레지던트와 인턴들을 당신은 유심히 올려다봤다. 그애는 그들 같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그때 생각했다. 동생을 대학 졸업시키면 이십대 중반이 될 것이고, 그때부터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해도…… 아니, 그애는 그때까지 공장에서 버티지도 못할 것이다. 그애는 자주 코피를 쏟았고 깊은 기침을 했다. 발육이 덜 돼 열무처럼 가는 종아리로 - P164

방직기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기둥에 기대서서 의식을 잃듯 깜박 졸았다. 어떻게 이렇게 시끄러워요? 아무 말도 안 들려요. 처음 일을 배우던 날엔 방직기 소음에 놀라, 겁에 질린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당신에게 외쳤다. - P165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 - P166

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 P167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 P173

스스로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쪽이었다. 경찰의 발에 아랫배를 밟혔을 때 노조를 떠났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성희 언니를 따라 얼마간 노동운동에 몸담았지만, 성희 언니와 달리 온건한 실무만을 맡았다. 그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격이 다른 단체로 옮겨왔고, 깊이 상처 입히는 길이란 것을 알면서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 지금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에 담긴 휴대용 녹음기와 테이프를, 결국 월요일 아침 우체국에 들러 윤에게 반송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 P175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 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 P207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 - P212

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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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적 힘의 비밀 ㅣ 움직씨 만화방 3
앨리슨 벡델 지음, 안서진 옮김 / 움직씨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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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건 나쁘건.

그래도 나라는 사람은 내가 태어난 시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곤 해.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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